[보도] "제2의 엘리엇 NO"...상장사, 경영권 방어장치 요구

자유경제원 / 2015-07-16 / 조회: 4,343       ZDnet Korea

"제2의 엘리엇 NO"...상장사, 경영권 방어장치 요구

학계·재계 "투기자본 공격에 韓 기업 무방비" 한 목소리

  • 정현정 기자
  • 입력 : 2015.07.15.14:27
  • 수정 : 2015.07.15.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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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제동을 걸고 나선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사태를 계기로 해외 투기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막기 위한 경영권 방어 수단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학계와 재계를 중심으로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상장회사들 사이에는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그룹에 대한 헤지펀드의 공격 이후 적대적 M&A 우려가 언제든 현실화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상태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차등의결권 제도와 신주인수선택권제도(포이즌필·Poison Pill) 같은 제도 도입이 거론되고 있다.

15일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는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공정한 경영권 경쟁 환경 조성을 위한 상장 회사 호소문’을 발표하고 경영권 방어 수단의 도입이 시급하다며 정부와 국회가 조속히 관련 제도 개선에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양 협회는 호소문에서 “현행 우리나라의 M&A 관련 법제는 전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 봐도 공격자에겐 한 없이 유리하고 방어자에겐 매우 불리한 취약점이 있다”면서 “자기 주식 취득 외에는 경영권 방어자가 활용할 수 있는 방어수단이 거의 없어 1천800여개 상장기업 모두가 막강한 자본력을 가진 투기성 헤지펀드의 경영권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은 지난달 4일 삼성물산 지분 7.12%를 매입 공시한 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공식 문제제기를 하고 나선 상황이다. 엘리엇은 가처분 소송과 여론전으로 삼성을 전방위 압박하면서 삼성물산 보유 주식에 대한 현물 배당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해외 투기자본이 국내 기업을 먹잇감으로 삼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3년 영국 소버린자산운용은 SK 주식 14.99%를 매입해 2대주주에 오른 뒤 2년3개월 동안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최태원 회장 퇴진 등 경영진 교체와 계열사 청산 등을 요구하다가 지분 전량을 매각하며 1조원에 달하는 시세차익과 배당금을 챙겨 떠났다. 지난 2006년에는 ‘기업 사냥꾼’으로 유명한 칼 아이칸이 스틸파트너스와 연합해 KT&T 주식 6.59%를 사들인 뒤 자회사 매각과 주요 자회사 한국인삼공사 기업공개을 요구하는 등 경영 개입을 시도한 사례도 있다. 칼 아이칸은 그 해 말 주식을 매각해 1천500억원을 얻어 떠났다.

이날 기자회견은 상장사들의 위기감이 깊어지고 있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지난 10여년 간 삼성·SK·KT&G 등 굴지의 대기업들이 소버린, 칼 아이칸, 헤르메스 등 투기자본의 공격을 당한 사례를 볼 때 자금력이 훨씬 취약한 중소·중견 기업들은 더 큰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국내 상장회사 중 대주주 지분율이 33% 미만이고 외국인 지분율이 10% 이상인 기업은 134개에 달한다. 1천800여개 상장사 중 7.36%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박진선 샘표식품 대표는 “실제 지난 2006년 우리투자증권이 만든 사모펀드(PEF)가 적대적 M&A를 목적으로 공개매수를 시도해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면서 “대주주 지분을 50% 이상 확보하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자금을 마련하는데 애로가 많고 이는 규모가 작은 소기업 일수록 힘들어 적대적 M&A에 노출되기 쉽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그럼에도 국내 공격권과 방어권 간의 제도적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의 M&A 관련 법제는 IMF 이후 ‘외국인의 국내기업 주식취득한도 폐지’, ‘의무공개매수제도 폐지’ 등 경영권 공격자에 대한 규제는 모두 폐지해온 반면, ‘상호출자제한제도’, ‘계열금융회사의 의결권 제한제도’ 등을 신설해 경영권 방어자에 대한 규제는 더욱 강화시켜 왔다. 자기 주식 취득 외에는 활용할 수 있는 방어수단이 거의 전무한 상태다.

이 때문에 최근 학계와 재계를 중심으로 기업이 안정된 경영권 기반 하에서 정상적인 기업 경영에 전념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필요하다며 신주인수선택권제도나 차등의결권제도와 같은 효율적인 경영권 방어 수단의 도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신주인수선택권제도(포이즌필)는 기존 주주들에게 싼값에 주식을 대량 매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적대적 M&A 공격자에게는 매수 권한을 주지 않도록 해 공격자의 지분을 크게 낮추는 제도다. 도입비용이 따로 발생하지 않고 도입만으로도 예방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방어 수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성이 높고 방어 효과가 크다.

상법에서 강행법규로 규정하고 있는 '1주 1의결권' 제도에 대한 불합리성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미국, 일본, 영국, 스웨덴, 핀란드, 싱가포르 등 선진국들은 1주 1의결권 원칙의 예외를 인정하는 차등의결권주식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회사의 지배권보다는 싼 가격에 주식을 구입해 더 많은 배상을 받기를 선호하는 주주와 경영 참여를 원하는 주주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세계 최대 인터넷 업체인 구글의 경우 창업자인 세르게인 브린과 래리 페이지의 지분율은 21.5%에 불과하지만 의결권 비율은 73.3%에 이른다. 래리페이지는 이를 비판하는 투자자들에게 “차등의결권은 단기 이익을 쫓는 월스트리트식 경영간섭에 제한받지 않고 장기적인 기업전략의 수립 및 경영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이 싫다면 구글에 투자하지 말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즈의 경우 슐츠버그재단이 0.6%의 지분으로 100%의 의결권을 행사하는 이른바 ‘황금주’를 인정해주고 있다.

앞서 지난 14일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 비영리 재단 자유경제원이 개최한 긴급 좌담회에서 김선정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앞으로 해외 투기자본의 상륙이 더욱 빈번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를 막기 위해서는 주주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감성적 대응이 아니라 제도적, 법적 장치를 갖춰야 한다”면서 “우리나라 기업은 국민의 반(反)기업 정서와 맹목적 기업 비판이 투기자본의 응원군 역할을 하고 있어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도 지난달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로 열린 ‘행동주의 펀드의 실상과 재벌정책’ 토론회에서 “금융투기자본이 외치는 스탠다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투기자본들이 마음껏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 반면, 한국 기업들의 손발은 묶여있다”면서 “갑자기 들어와서 주식을 산 사람들 보다는 장기간 회사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에게 의결권을 더 많이 부여하는 차등의결권 제도처럼 기본적인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야 이를 기반으로 장기 투자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아울러 국내 상장사들은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 및 순환출자 금지제도,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행사 제한 제도 등 기존 제도들도 적대적 M&A 상황에 한해 예외적으로 완화해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호출자금지나 신규순환출자 금지제도는 자본충실 강화, 지배권 왜곡 해소, 기업집단의 소유구조 건정성 확보에 목적이 있지만 자본력이 취약한 기업이 투기성 외국자본의 경영권 위협을 받는 경우에도 계열사 등의 도움을 받지 못해 기업집단 전체가 공격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

전문가들은 헤지펀드의 이같은 집요한 공격이 경영권을 흔들어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으로 하여금 이를 방어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 투입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수조원의 국부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 기업들이 투기자본의 요구에 따라 현금자산 배당에 나설 경우 미래경영을 위해 투입돼야 할 자금이 외국계 자본으로 흘러가면서 투자 위축이 불가피해진다는 우려도 점점 커지고 있다.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전무는 “상장 이후 주식 공개매수가 가능해지면 주요 주주의 지분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기업들은 투자 여력이 있어도 경영권을 방어하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가 경제적으로도 큰 손실이 발생한다”면서 “삼성물산의 사례가 최근 주목을 받고 있지만 훨씬 더 상황이 취약한 다른 상장사들은 해외 투기자본이 마음만 먹으면 당장 경영권을 뺏기고 회사가 날아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물산과 엘리엇 사태를 계기로 정치권에서도 관련 제도 개선 논의가 활발히 이뤄질 전망이다. 재계에서도 관련 제도 개선을 위한 움직임에 나설 예정이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는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과 불공정한 제도 개선 등을 골자로 하는 ‘공정한 경영권 경쟁 환경조성을 위한 개선 의견서’와 법률개정안은 국회와 정부에 제출할 예정으로 관련 법률의 개정을 위해 총력을 다한다는 계획이다.

정현정 기자 (iam@zdnet.co.kr)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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