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경제와 세상]유승민 파동과 사회적경제

자유경제원 / 2015-07-30 / 조회: 4,021       경향신문
[경제와 세상]유승민 파동과 사회적경제
이일영 | 한신대 교수·경제학
유승민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가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졌다. 많은 국민들의 유승민 의원에 대한 한여름 밤의 꿈은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시작되었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정치적으로 선거수단으로 삼아서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이 심판해주셔야 할 것이다.” 연금개혁이나 국회법 개정 같은 이슈는 사라지고 배신자로 찍힌 유 의원이 박 대통령의 맞상대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결국 유 의원은 2주일 만에 물러섰다. 단기적으로는 박 대통령이 승리했지만, 대통령과 친위 그룹의 리더십은 손상되었다. 이제는 여권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집권세력의 능력, 자질, 지도력, 통솔력에 대한 기대는 사라져가고 있다. 유 의원은 후퇴했지만 ‘따뜻한 보수’와 민주공화국의 수호자라는 장기적 브랜드를 축적했다. 그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박 대통령과의 대립 속에서 반사적으로 형성된 것이므로 아직 단단하지는 않다. 그래서 유 의원의 정치적 장래에 대한 궁금증들이 많지만, 그것은 그가 구체적 현실에 뿌리를 내린 판단과 행동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가에 달려 있다.

최근 유 의원의 정책활동과 관련해서 주목받고 있는 것이 작년 4월 그가 대표 발의한 ‘사회적경제 기본법안’이다. 이는 유 의원의 정책 포지션을 구체적으로 나타내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유 의원을 공격하는 구보수 세력이 ‘사회적경제 기본법안’을 쟁점으로 집결하고 있다. 진작부터 자유경제원, 어버이연합 등에서는 사회적경제 기본법안을 비판하는 캠페인을 벌인 바 있다. 최근에는 일부 지식인과 보수 언론에서 유 의원과 사회적경제를 ‘이념적 배신’으로 함께 묶어 공격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유 의원의 입장에서 보면 극우 보수세력과 각을 세우는 것이 정치적으로 꼭 불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가 주장하는 신보수 입장에서는 국가가 지원해 사회적경제를 육성하는 논리가 성립할 수도 있다. 어쨌든 이번 파동을 통해 법안 통과는 어려워졌고, 사회적경제에 대한 집권세력의 거부감이 커졌다고 한다. 사회적경제는 국민들 인식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사회적경제의 본질이 왜곡되고 엉뚱한 이념투쟁과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차제에 한숨 돌리면서 지금까지 추진됐던 법안이 사회적경제의 자생력과 지속적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법안 제안 이유를 보면, 국가가 책임지는 복지와 자유시장경제가 만들어내는 성장을 추구하면서 이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가치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실에서 존재하는 자본주의 혼합경제 시스템의 전형적인 모습을 추구하는 것으로, 극우적 시장만능주의자가 아니라면, 크게 문제 삼을 것은 없다. 이미 사회적경제 조직으로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자활기업, 농어촌공동체회사 등이 다양하게 발현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과 관련된 규칙 제정과 지원·감독을 행하는 정부 기능이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는 것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주요 내용으로 가면 공동체주의나 혼합경제를 지지하는 입장에서도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들이 많다. 법안에 의하면, 국가가 사회적경제 발전을 위한 종합적인 시책을 세우도록 했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사회적경제 발전에 관한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이 기본계획에 따라 주요 시책의 시행계획을 매년 수립·시행하도록 했다. 또 기획재정부 장관은 사회적경제 활성화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한국사회적경제원을 두도록 한다. 새누리당의 법안 내용은 국가기구를 통해 자원을 동원하겠다는 성장지상주의의 발상을 느끼게 한다. 

올봄 여야 합의 과정에서는 협동조합기본법 이전에 설립된 농협과 수협 등 대규모 협동조합들도 기본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했다고 한다. 또 대통령 직속으로 사회적경제위원회를 설치하되 사무국을 기획재정부에 둔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관련 정부 부처 장관, 17개 광역시장과 도지사를 당연직 위원으로 하고 기금도 설치한다고 하니, 무슨 대형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회적경제의 입장에서 보면 자생적 발전을 왜곡시킬 수 있는 과도한 국가 개입은 조심해야 한다. 사회적경제가 고립된 존재는 아니지만 그 본질은 국가와 시장과는 구분되는 결합과 연결의 원리를 지닌 공동체 사회다. 국가 주도의 하향식 계획과 보조금은 사회적경제에 자칫 독약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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