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무차별 이념공세에도…갈수록 ‘국정화 반대’로 모였다

자유경제원 / 2015-11-10 / 조회: 5,221       한겨레

여권 무차별 이념공세에도…갈수록 ‘국정화 반대’로 모였다

등록 :2015-11-02 19:45수정 :2015-11-02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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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2일~11월02일 ‘행정예고 20일’

진보·보수 한목소리 반대에도
정부·여당·극우 극소수만 강행
밀실·왜곡이 반발 키워
학계·시민·학생 등 ‘반대’ 봇물
찬 ‘48→36%’ 반 ‘45→49%’ 역전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통해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겠다.”(박근혜 대통령, 10월27일 국회 시정연설)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 기간인 지난 20일 동안, 한국 사회는 박근혜 대통령의 기대와 달리 국정화 ‘찬성’이 아닌 국정화 ‘반대’로 통합됐다. 독재정권 시대의 유물인 국정 역사교과서의 부활이 역사교육의 문제를 넘어 ‘자유민주주의 위기’를 부를 것이라는 데 진보·보수는 한목소리를 냈다. 현행 검정교과서에 대한 해묵은 이념 공세를 펼치며 국정화의 명분을 찾으려던 청와대와 새누리당, 교육부는 국정화를 찬성하는 극소수의 극우적 인사들과 함께 고립돼갔다.

■ 초기에 국정화 찬성 우세…“국사학자 90% 좌파” 새누리당 무차별 이념 공세가 역풍 불러

교육부가 국정화 행정예고를 공식 발표할 무렵인 지난달 12일, 여론은 국정화 찬성으로 약간 기울어 있었다.(<머니투데이>·리얼미터 공동조사, 찬성 47.6% 반대 44.7%) 하지만 행정예고 직후 국정화 추진을 당론으로 확정한 새누리당이 현행 검정교과서를 ‘좌편향’이라고 공격하면서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달 17일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산악회 발대식에서 “대한민국 국사학자 90%는 좌파로 전환됐다”는 김무성 대표의 발언은 보수 진영이 국정화에 반대하는 다수의 합리적 보수와 국정화에 찬성하는 극소수의 극우 인사들로 갈라지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때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중도 성향의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국정교과서는 2년짜리”라며 국정화에 찬성하는 쪽을 ‘보수’가 아닌 ‘극우’라고 표현했다. 대표적인 뉴라이트 학자인 권희영 교수가 속해 있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속 사학 전공 교수 10명 가운데 8명도 “한중연 모두가 국정화를 찬성한다는 오해가 있다”며 권 교수와 거리를 두는 성명을 냈다.

새누리당이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역사학자들의 저항에 절대 후퇴하지 말아라”), 정치사회학을 전공한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검정교과서는 학생들에게 독극물”) 등 역사학과 무관하거나 극단적인 성향의 인사들을 의원총회와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 불러 그들의 막말에 호응을 보낸 것도 공분을 일으켰다.

■ 학계·교육계·시민 한목소리로 국정화 반대 확산…교육부·국사편찬위원회 밀실·왜곡 행정이 한몫

20일 동안 집필 거부 또는 국정화 반대 의사를 천명한 교수는 170여개 대학 2700여명에 이른다. 행정예고 바로 다음날인 지난달 13일 연세대 사학과 교수들(13명 전원)을 시작으로, 새누리당의 정치적 텃밭이나 다름없는 대구·경북 지역과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역사 전공 교수들을 비롯해 전국의 학교와 지역, 학회 차원의 ‘국정교과서 집필 거부 선언’이 봇물을 이뤘다. “4·19혁명 이후 최대 저항”이라는 학계 내부의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이처럼 뜨거웠던 국정화 반대 움직임은 지난달 30일 역사학계 최대 행사인 ‘전국역사학대회’에서 진보·보수를 아우르는 28개 역사학회가 ‘국정화 철회, 제작 불참’을 선언하는 전례없는 일로 이어졌다.

전국역사교사모임(2000여명), 좋은교사운동(1000여명), 전국교직원노동조합(2만4000여명) 등 2만7000여명에 이르는 교사들도 교육부의 징계 방침에 아랑곳하지 않고 실명과 소속 학교를 드러내며 국정화 반대 성명에 동참했다.

청소년, 대학생, 일반 시민들까지 촛불집회에 나서며 국정화 반대 목소리는 높아져갔다. ‘찬성’ 쪽 활동은 새누리당을 빼고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지난달 16일 ‘국정화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이란 이름으로 교수 102명이 국정화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이들은 소속과 전공을 밝히지 않은 채 이름만 명단에 올렸다. 일부 서명 인사는 ‘이름을 도용당했다’고 주장하는 등 논란만 낳았다.

국정화 책임기관인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가 집필진을 공개하겠다는 행정예고 당시의 약속에 대해 ‘본인 동의가 없으면 공개할 수 없다’고 번복하거나 현행 검정교과서의 서술을 과장·왜곡하는 내용의 홍보자료를 만든 것 역시 반대 여론 확산에 한몫했다.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한국갤럽, 10월30일)에서는 국정화 반대(49%)가 찬성(36%)을 크게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 비밀 TF 발각됐지만 시정연설에서 국정화 강행 천명…청와대도 고립 자초

비밀 태스크포스팀(TF)의 존재가 드러난 일이었다. 이들의 활동 내용을 담은 문건에 ‘BH(청와대) 일일 점검 회의 지원’ 등이 명시돼 있어, 사실상 청와대가 주도하는 국정화를 지원하려 급조된 비밀조직이라는 의혹을 샀다. 교육부는 이 팀이 국정화를 담당하는 교육부 역사교육지원팀을 확대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지만, 이들은 취재진과 야당 의원들이 사무실을 방문하자 문을 걸어 잠그고 문서들을 급하게 파쇄하는 등 활동 내용을 숨기려는 모습을 보였다.

비밀 티에프 운영에 소요된 것으로 추정되는 국정교과서 편찬 관련 예비비 44억원의 사용 내역도 끝내 공개하지 않는 등 교육부는 행정예고 기간 내내 ‘밀실 행정’으로 일관했다.

국정화 반대 여론이 거센 상황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국정화는 비정상화의 정상화”라며 강행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 자리엔 극우단체 회원 80명이 초청됐다.

진명선 엄지원 최우리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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