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윤증현 "`보호무역 강화땐 대공황... 위기대응 못하는 국내현실 답답"

자유경제원 / 2016-08-02 / 조회: 7,886       서울경제

수요부족·공급과잉...전세계 구조적 장기침체 늪 빠져
국내 1~3위 조선사 , 다 살리려다간 셋 다 망할수도
AI 중심 4차 산업혁명 심각한 일자리 문제 일으킬 것
교육시스템 정비하고 노동시장 유연성 키워 대비해야
OECD 평균이 26%...장기적인 인상계획 세워 놔야
법인세는 올릴 때 아냐...비과세 감면 폐지로도 충분
박근혜정부, 4대개혁 진정한 전략·열정 있는지 의문
꿈이 없는 사회...국민잠재력 끌어모을 리더십 필요

  • =세종=임세원 기자
  • 2016-08-01 17:02:56

윤증현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현재 우리나라를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등장하는 꿈이 없는 시대, ‘난세(亂世)’라고 단언했다. “국회·법원·행정부·언론은 물론 기업·시민단체까지 우리 국민들이 마음 둘 곳이 하나도 없다”고 한탄했다. 우리나라가 총체적 위기에 빠졌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윤경제연구소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윤 전 장관은 우리나라를 둘러싼 복잡한 상황을 하나하나 날카롭게 짚어냈다. 당장 우리 경제 현안인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국내 1~3위 조선사를 다 살리면 셋 다 망할 수도 있다”며 “자발적 구조조정이 안 된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의 공공·노동·교육·금융 등 4대 개혁에 대해서는 “제대로 되는 게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을 통해 국가 운영의 효율성을 높인다면 4대 개혁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등 세계적 변화의 흐름에 대한 생각도 털어놓았다. “브렉시트가 보호무역주의로 번진다면 지난 1930년대 대공황처럼 세계 경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는 “1~3차 산업과 달리 심각한 일자리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며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교육 시스템을 정비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법적 인프라를 갖춰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윤 전 장관은 “우리 국민은 국력을 모을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이것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모아줄 리더십이 정말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대담=이학인 경제부장 leejk@sedaily.com

-현 경제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세계 경제가 수요부족과 공급과잉 상황입니다. 우리의 조선·철강·석유화학·건설업종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지금 전 세계가 구조적인 장기침체에 빠졌다고 봐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8년이 지났습니다. 전 세계 경제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어요. 오로지 미국만 복원력을 보여 금리를 인상하는 것이지요. 미국은 구조조정의 잠재역량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래도 미국 혼자 갈 수가 없으니 한 번 인상한 후 못하고 있어요.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는 주요 근거는 실업률입니다. 미국이 한때 실업률 9~10%까지 올랐다가 지금은 5%대인데도 다른 나라 때문에 추가로 못 올리고 있지요. 미국도 구조적 장기침체의 영향 아래에 있는 겁니다. 여기에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한 게 큰 문제입니다. 

-4차 혁명에 대한 기대보다 걱정이 큰 것 같습니다. 

△4차 산업의 핵심이 인공지능인데 인공지능이 로봇산업·사물인터넷·자율차량·3D프린팅에 결합하는 것입니다. 알파고를 보세요. 옛날에는 디지털이 사람의 추론이나 연산 능력, 감정을 못 넘었는데 이제는 아닙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4차 산업혁명의 여파로 앞으로 5년 동안 선진 15개국에서 약 5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전망했습니다.

올 1월 다보스 포럼에서 독일 경제학자 클라우스 슈바프와 빌 게이츠 간에 논쟁이 있었어요. 슈바프는 “기술의 발전 속도와 범위를 조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일자리가 다 없어지면 인간의 삶의 질은 어떻게 되느냐”고 했죠. 반면 게이츠는 “1~3차 산업혁명 때도 같은 걱정을 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삶의 질은 발전한다”고 반박했습니다. 나는 슈바프의 말이 맞다고 생각해요. 일자리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앞서가는 서비스 산업이 바로 택배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드론에 인공지능을 장착하면 제일 먼저 타격을 입을 데가 택배직원 같은 단순 노동직입니다. 드론에 착신지 주소만 입력하면 알아서 갖다 주죠. 차가 막히면 드론이 빌딩 사이로 날아가면서 수신지에 문자를 보냅니다 ‘지금 택배 가니까 창문을 여세요’라고. 창문으로 서류를 탁탁 갖다 줄 겁니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려면 가장 먼저 교육 시스템이 정비돼야 해요. 노동시장 유연성도 확보돼야 하고 법적 인프라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참 걱정입니다.

-대외환경이 불안정합니다. 

△최근 나온 브렉시트가 영국 하나로 끝나면 영향은 제한적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는 함의가 커요. 예를 들면 국경을 넘나드는 맨파워, 그를 통해 일어나는 보호무역주의가 지구상 세그먼테이션(segmentation), 즉 칸막이가 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세계적 흐름이 마이너리티(minority)의 분노 표출, 난민 사태,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의 부상 등입니다. 1930년대 대공황 때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해서 세계가 어려워졌어요. 일부에서는 개방의 대표적인 나라가 영국인데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나간 것 아니냐, EU 규제가 너무 심하다, 영국은 오히려 자유와 개방을 추진하는 것이다라는데 제가 보기는 무리가 있어요. 브렉시트로 개방이 촉진될 것이라는 말도 나는 안 믿어요. 

-국내 사정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인데요. 

△한마디로 말하면 토머스 홉스의 말처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입니다. 전부 너 죽고 나 살자밖에 모르는 것 같아요. 우리 사회를 보면 한 군데도 성한 게 없습니다. 국회, 법원, 행정부, 그리고 4부를 자처하는 미디어는 어떤가요. 기업은, 시민단체는 어떤가요. 선진국으로 가려면 성숙한 시민 의식이 필요한데 고칠 게 많습니다. 어느 하나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분야가 없어요.

사마천은 사기에서 꿈이 없는 사회, 국민이 꿈을 가질 수 없고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사회, 신뢰가 전혀 없는 사회를 난세라고 했어요. 지금이 딱 여기에 맞는 거예요. 국민들이 꿈이 있습니까. 

요새 나라 걱정하는 사람이 늘어가요. 내년 말이 되면 대선을 치를 텐데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이 있나요. 이런 데서 경제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3당 체제의 국회가 19대보다 나은 국회가 될 수 있으리라 봅니까? 누구도 희망을 안 갖죠. 시작도 하기 전에 전부 분배, 나눠주는 것만 얘기합니다. 여력만 있으면 나눠줘야지요. 그런데 그 원천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를 안 해요. 뭘 갖고 나눠줄 건지. 정치인이 국민을 걱정해야 하는데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잖아요.

-최근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강연이 화제가 됐습니다. 

△원로가 할 일이지요. 한은이 중앙은행으로 나름의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외부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것도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고 있어요. 다른 나라 중앙은행은 물가나 금융 안정을 넘어서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갖고 고용창출과 성장률을 뒷받침합니다. 한은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예요. 원칙을 고수하느냐, 아니면 상황을 수용할 것이냐. 한은은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을 만날 안 된다고 하니까 나라가 망하든, 실업자가 생기든 관계없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지금은 물가상승 압력이 크지 않아요. 이럴 때 중앙은행이 나서주면 국민의 신뢰를 받습니다. 제가 강연한 직후에 한은이 금리를 내렸더군요. 

최근에 놀란 게 세계적 화학기업인 다우케미컬과 듀폰이 합병했습니다. 이 인수합병(M&A)은 세계 제1위 화학회사인 독일 바스프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죠. 철강도 공급과잉인데 세계 철강업계 2위인 신일본제철이 미국 US스틸에 맞서려고 계속해서 M&A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국내 1·2위 조선사가 세계 1·2위입니다. 국내 1·2·3위 조선사를 다 살리려면 셋 다 망합니다. (금감원 강연에서) 한 개나 두 개 이하로 줄여야 한다고 길을 제시했어요. 자기들끼리 주고받아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자발적 합병이 안 돼요. 그럼 정부라도 나서야지 누가 합니까. 

국토교통부·산업통상자원부·고용노동부가 산업재편 그림을 그리고 자금은 어떻게 대고, 실업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 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무부처는 본래 자기 소관 산업을 줄이지 않으려고 해요. 부총리가 각 부처를 견제해야 해요. 지금은 순서가 거꾸로 돼서 자본확충펀드를 만들어 한은이 출자하니 마니로 논쟁하고. 이것은 제일 마지막에 나올 부분이에요. 

-박근혜 정부의 4대 개혁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4대 개혁을 하겠다는 진정한 전략과 열정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꼭 남의 이야기 하는 것처럼 말하잖아요. 4대 개혁 중에 제대로 되는 것이 있나요. 교육개혁을 보면 자유학기제 하나만 했고. 금융은 이해관계자 간 부딪치지 않을 것만 하니까 본질적인 것은 못 건드리고 있어요. 공공개혁은 공무원연금 개혁 잘한 겁니까? 아닙니다. 시늉만 한 거지. 성과연봉제 도입 결과도 보세요. 공무원노조에서 해달라는 것 정부가 다 해줘서 노조가 표정관리를 했다는 거 아니에요. 노동개혁은 어떻고요. 

우선 타깃을 잡아야 해요.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그리고 국민을 설득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 어떤 전략과 전술을 채택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고요. 지금 최저임금이나 공무원연금 개혁 풀 때 전략과 전술은 입장이 정반대인 당사자끼리 알아서 합의하라는 건데 예전에 하던 방식 그대로예요. 시간만 끌지 합의가 안 됩니다.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수권 받아 책임지고 노동개혁안 만들어서 대통령이 이걸 이끌고 각 부처 장관이 야전사령관이 돼서 집권 여당과 협의하고 야당과 국민을 설득해야 합니다.

-증세 논란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복지를 확충시키기 위해 증세는 불가피합니다. 증세 없는 복지를 얘기하는데 여기서부터 국민의 신뢰를 잃는 거예요. 2000년 이후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18 ~19%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26%예요. 그런데 조세부담률을 1% 올리려면 정권 바뀝니다. 세수가 7조~8조원 더 걷힐 거예요. 난리 안 나겠어요. 여기에 우리는 북유럽과 달리 국방비 부담이 전체 정부 지출의 10%가 넘는 제약요소가 있어요. 그래도 조세부담률을 20%로 가져가야 한다고 봐요. 장기계획을 세워놓고 해야 합니다. 

법인세는 올려야 할 때가 아니에요. 이건 해외 투자를 끌어들이고 국내 기업이 나가는 것을 막는 글로벌 세금이거든요. 다만 법인세는 각종 비과세·감면이 많아요. 법인 실효세율이 16~17%인데 비과세·감면을 없애면 실제 법인세 명목세율 2%포인트 올리는 것과 같아요. 

소득세는 전체 근로자 중 48%가 안 내고 있습니다. 48%가 조금씩이라도 내야 해요. 부가가치세는 도입 당시처럼 이중 세율로 만드는 방법이 있어요. 생필품은 낮은 세율이지만 나머지 제품 가운데 가격이 높으면 높은 부가세율을 매기는 거죠. 일반 소비재 10%를 매기고 부자들이 사는 고가품은 세율을 높이면 됩니다. 상속·증여세는 떨어뜨려야 합니다. 주민세까지 합치면 세율이 50% 넘는데 가진 자를 적대시하면 누가 소비합니까. 

-대통령 임기가 1년반 정도 남았습니다. 어디에 집중해야 할까요. 

△경기 사이클에 따른 어려움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거든요. 남은 1년간 구조조정의 기본 틀을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보기에는 우리나라 지배구조가 바뀌어야 합니다. 시장에서 자율적인 게 바람직하지만 작동하지 않으니까 누군가 밀어붙일 주체가 있어야 해요. 국회에서 개헌한다고 하는데 겁이 납니다. 국가 운영의 효율성보다 국회 권능이 강화되는 쪽으로 이뤄지지 않을까. 국회의 권능이 지금 약합니까. 모든 일이 국회로 통할 정도로 만능이에요. 공공 부문 거버넌스는 민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대통령이 전 국민의 중의를 모아 국가 거버넌스 기본 축인 헌법을 바꿔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하면 굉장히 큰 개혁과제를 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우리 경제에 희망적인 부분은 없을까요.

△희망적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참 신기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국민소득 2만달러를 달성했을까 의아스러울 정도예요. 외국에서 살다 온 사람들은 이렇게 편리하게 인프라가 잘돼 있는 것을 우리만 모른다고 해요. 

사회 투명성이 높아진 것, 신용카드 많이 쓰고 스마트폰 소유 비중이 높은 것, 문맹률이 0%에 가까운 것도 희망적이죠. 해외에서 서울 수도권 일대를 테스트베드(test bed)라고 합니다. 해외 출판사가 두세 개 언어로 출판할 때는 꼭 한국어로 낸다고 해요. 

국민들의 비판의식과 견제의식이 높은 것도 장점입니다. 도덕의식·공동체 의식이 약해서 그렇지 국민들의 기본 수준은 높아요. 여기서 한 단계 오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아직은 희망을 버릴 건 아닙니다. 한국인은 여전히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하죠. 그래서 사회갈등이 심합니다. 그러나 배도 안 아픈 사회는 희망이 없어요. 그게 변화의 동력이에요. 노력하거나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잘되는 사람을 밑으로 잡아당기면 문제죠. 그래서 긍정적인 에너지로 모아줄 리더십이 정말 중요합니다. /정리=이연선·임세원기자 why@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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