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전태일을 이용하나…노동계 영웅만들기 그것이 알고 싶다

자유경제원 / 2016-11-12 / 조회: 9,601       미디어펜
전태일에 관해서 존중해야 할 부분과 정도
 
청년 전태일에 대해서는 인정 할 것은 그가 약자를 동정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일신의 안일이나 행복보다 자기 주변의 어린 여공들의 생활을 불쌍하게 보고, 이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에 항의를 했다는 정의심은 인정해야 한다. 물론 그가 한 행동은 논란의 여지가 있더라도, 그의 나이를 고려할 때 동기 자체는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의 분신이 노동운동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기 때문에 노동계가 그를 매우 영웅시한다는 것은 이해가 된다. 노동조합을 이익집단이 아니라 정의구현의 도구로 보는 자들은 전태일을 영웅시하려고 하는 점도 이해가 된다. 따라서 노동운동사에서는 전태일이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처지가 개선된 것이 노동운동의 덕분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 사회 전체에서 전태일의 업적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산업혁명 당시의 노동자 생활상

1960년대 후반에 한국의 노동자들이 낮은 임금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고, 근로조건이 매우 열악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시대에 그런 아픔을 겪은 이유를 자본가의 착취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본가와 결탁한 공무원과 정부가 고의적으로 근로기준법을 어겼기 때문에 노동자가 착취당했다는 견해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따라서 전태일 사건은 그의 올바른 상황 인식에서 시작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있다. 당시 근로조건이 나쁘고 임금수준이 낮았던 것은 한국 경제의 발전단계가 그 수준밖에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강조하는 근로기준법은 당시 한국 사회가 지킬 수 없는 법이었다. 그것을 단순히 법을 지키라는데 뭐가 나쁘냐는 식으로 인식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인식이었다. 젊은 전태일은 그렇게 주장할 수 있지만, 그의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그 동시대인들을 모두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이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당시 저개발국가의 국민이 겪는 서러움이었다는 것이다.

  
▲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태일을 각 교과서에 싣고 띄우는 노동계의 의도는 당시 악덕 기업/기업가 및 정치가를 비판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현재 사회마저도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사회라고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사진=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스틸컷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노동자들이 착취당하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고발했다.1) 

“9세부터 10세까지의 아이들이 새벽 2, 3, 4시에 그들의 불결한 잠자리에서 끌려나와 겨우 입에 풀칠만이라도 하기 위해 밤 10, 11, 12시까지 노동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는데 그들의 팔다리는 말라비틀어지고 신체는 왜소해지며 얼굴은 창백해지고, 그들의 인간성은 완전히 목석처럼 무감각상태로 굳어져버려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그린하우스는 스토크-온-트렌트나 월스탠턴의 도자기 제조지역의 평균수명이 특히 짧다고 밝히고 있다. 스토크 지방에서는 20세 이상의 성인남자 인구의 36.6%, 월스탠턴에서는 그 30.4%가 도자기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이 연령에 속하는 성인남자 중 폐병으로 인한 사망자 총수의 반 수 이상[스토크 지방에서]과 약 2/5(월스탠턴 지방에서)가 도자기공이다.

위원회의 위원인 화이트(1863년)가 심문한 증인들 중 270명은 18세 미만, 50명은 10세 미만이었고, 10명은 겨우 8세, 5명은 겨우 6세였다. 노동일의 길이는 12시간으로부터 14, 15시간 사이였고, 야간노동이 진행되며, 식사는 그 시간이 불규칙할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경우 인(燐)독이 가득찬 작업장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농업노동자들은 사나운 기후에서 하루 13~14시간의 노동을 그리고 또 일요일에도 4시간의 추가노동까지 해야 한다.

런던에서는 철도사고의 원인은 철도 노동자들의 부주의다. 10~12년 전에는 그들의 노동은 하루에 8시간밖에 계속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5~6년 동안 노동시간이 14시간, 18시간, 20시간으로까지 늘어났고, 또 행락철과 같이 특히 여행객이 몰릴 때에는 노동이 가끔 중단없이 40~50시간 계속된다.”

위의 예는 자본론에서 마르크스가 고발하는 내용의 일부일 뿐이다. 사실 산업혁명 당시 영국의 자본주의는 착취와 무질서로 얼룩져있었다. 인간이 인간을 노예로 사고 파는 것이 용인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가혹한 노동으로 착취를 당했으며, 잔인한 형법이 가난한 사람들을 옥죄고 있었다. 광산과 공장의 근로조건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산업혁명 초기에는 유아와 부녀자들이 공장에서 주로 일했는데, 유아의 경우 심지어 만 4세부터 일을 시켰다. 노동시간은 정해진 것이 없어서, 새벽부터 황혼까지(dawn to dust) 일을 했는데, 노동자는 비인간적인 기계장치의 톱니바퀴와 같이 공장에 편입되어 하루에 자그마치 14시간에서 때로는 16시간까지도 노동해야 했다.2) 

1832년에 영국 의회가 노동실태를 조사한 기록에 의하면 바쁠 때는 새벽 세시부터 저녁 10시까지 무려 19시간을 노동에 시달렸으며, 이 장시간 노동 중에 휴식시간이라고는 아침식사 시간 15분, 저녁식사 시간 30분, 그리고 도중에 술 마시는 시간 15분이 주어졌다. 그 나마 공장청소는 아침 식사시간이나 술 마시는 시간에 하도록 되어 있어서 이 식사시간도 대부분 청소하면서 보냈다.

산업재해가 일어나면 보상은커녕 일자리에서 쫓겨났다.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슬럼의 상황은 더 열악해서, 맨체스터에서 평균수명은 17년이었는데, 이것은 유아 사망률이 50%를 넘는다는 의미이다. 

1839년에 “the wynds"라고 불린 글래스고우(Glasgow)의 노동자 숙소에 관한 영국정부의 지방행정관 보고서에 의하면, 한 방에 15-20명의 남녀가 섞여있는데, 옷을 입은 자도 있고, 벌거벗은 자도 있었으며, 가구라고는 벽난로가 이곳이 사람이 사는 곳임을 알려주는 유일한 단서라고 할 정도였다. 이들의 월급이 적어서 도둑질과 매춘이 이들의 주요한 수입원이라고 했다.3) 노예들의 비참함은 이보다 더했다.4)

  
▲ 초, 중, 고 각급 교과서를 통해서 전태일을 알리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공부하자는 수준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서 마르크스주의적 세계관을 주입시키고, 현재 그리고 미래 한국 사회를 그들의 관점에서 변화시키려고 하는 의도 때문이다./사진=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포스터

근대 초기 시대의 노예노동자

근대시대의 노예라고 하면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만을 생각하는데, 사실 백인들의 계약노예가 먼저 있었다. “유럽에서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으로 정기적으로 항해하는 교통수단은 이런 백인 계약노예들을 수송하는 과정에서 발달했다. 1654~1685년까지 잉글랜드 남서부의 항구도시 브리스틀에서만 10,000명이 대개는 서인디아와 버지니아로 항해하는 배를 탔다. 1683년에는 백인노예들이 버지니아 인구의 1/6을 차지했다. 18세기에 북아메리카 펜실베이니아로 이주한 인구의 2/3가 백인노예들이었다.”

백인계약 노예들 이외에 죄수들도 역시 백인노동력의 또 다른 공급원이었다. “잉글랜드의 가혹한 봉건법이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는 무려 300종이나 되었다. 예컨대, 1실링을 넘는 현금이나 5실링을 넘는 가치를 지닌 물건을 훔친 자, 말이나 양을 훔친 자, 귀족의 사유지에서 토끼를 밀렵한 자는 교수형에 처해질 수 있었다. 

또한 옷을 훔친 자, 낟가리나 곡식창고에 방화한 자. 가축을 불구로 만들거나 도살한 자, 공직자들의 공무집행을 방해한 자, 법률을 오용하거나 남용한 자는 유배형이나 추방형에 처해질 수 있었다. 1664년에는 부랑자, 불량배, 게으름뱅이, 좀도둑, 집시, 무허가 매음굴을 뻔질나게 들락대는 놈팡이 같은 자들을 모조리 식민지로 추방하자는 법안이 잉글랜드 국회에 제출되기도 했다. 

1667년에는 3실링4펜스짜리 물건을 훔친 죄를 범한 아내를 사형 대신 추방형에 처해달라고 애원하는 탄원서가 법원에 제출되기도 했다. 1745년에는 은숟가락과 금회중시계를 훔친 절도범에게 추방형이 선고되었다. 1833년 흑인노예들이 해방된 지 1년 후부터 노동조합운동에 참가한 자는 추방형을 선고받았다. ... 19세기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진행된 초기 식민지개척도 죄수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죄수들을 각별히 경계한 경우는 드물었다. ...죄수의 노동력은 식민정부가 공짜로 수입하여 정착민들에게 베풀 수 있는 사은품이나 마찬가지였다.

1640~1740년 잉글랜드에서 연발한 정치혼란과 미생불안은 계약백인노예의 공급을 증가시켰다. 잉글랜드의 독재자 올리버 크롬웰 Oliver Cromwell(1599~1658)의 군대에게 정복당한 스코틀랜드인들은 이전에 정복된 아일랜드인들과 같은 취급을 받았고 1661년에는 퀘이커교도들이 추방당했고 100파운드를 낼 수 있는 자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버지니아와 뉴잉글랜드를 제외한 해외 각 지의 식민농장들로 추방당했다. 반란에 동참한 자들은 10년간 계약노예로서 복역하라는 판결을 받고 바베이도스 섬으로 보내졌다.

“계약백인노예들은 수송선의 콩나물시루처럼 비좁은 선창에 짐짝처럼 적재되었다. 미텔벨르거는 계약노예들에게 하나씩 배정된 개인침대의 폭은 60센티미터였고 길이는 180센티미터에 불과했다고 기록했다. 그들을 수송하는 선박은 작아서 비좁았고, 장기간 항해했으며, 냉장고도 없는 선박에서 배급되는 음식은 형편없고 비위생적이어서 그것을 먹은 자들은 병에 걸리기 십상이었다. 1659년에는 계약노예 72명이 “말들과 뒤섞인 그들의 영혼마저 질식시키는 열기와 습기를 가득 머금어 찜통 같은” 선창에 갇혀 무려 5주일 반 동안이나 항해를 계속해야 했던 “이 살아있는 무덤에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참상” 이었으며 “그토록 하찮은 이익을 쥐어짜내려고 똑같은 인간들을 그토록 참혹하게 다룰 정도로 인간성이 저열해질 수 있다고는 도저히 믿기 어렵다”고 썼다.

우리보다 산업화가 먼저 일어났던 영국의 산업혁명 당시 모습이나 그 이전 근대 초기 노동자들의 실상이다. 그리고 지금 산업화하고 있는 인도 등 저개발 국가에서는 아직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전태일 당시의 한국 여공들의 근로조건이 열악했던 것은 한국 경제의 발전단계에 비추어서 평가되어야 한다.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약관의 혈기 방자한 젊은 청년이 그런 정의감을 품고 흥분할 수 있는 것이지만, 사회가 계속 그러한 잘못된 인식을 확산시켜서는 안 된다. 

  
▲ 노동자의 처지가 개선된 것이 노동운동의 덕분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 사회 전체에서 전태일의 업적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사진=연합뉴스

마르크스의 세계관과 정의관

마르크스는 역사발전의 동인을 생산성의 향상이라고 인식하고, 그 과정은 혁명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생산성의 향상에 따라서 제도의 옷을 바꾸어 입어야 하는데, 기득권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양보하지 않기 때문에 혁명이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법이나 도덕 등 상부구조는 경제라고 하는 하부구조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브르주아 세력이 만들어둔 법과 같은 상부구조는 혁명에 의해서 타파되어야 한다고 인식했다. 

이렇게 계급투쟁만이 역사변혁의 유일한 방법론으로 인식하고, 계급간 갈등과 증오를 통해서 사회 정의를 구현하려고 하는 세계관으로 무장된 자들은 어떠한 다른 주장도 모두 가진 기득권자들의 변명이라고 일축한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태일을 각 교과서에 싣고 띄우는 노동계의 의도는 당시 악덕 기업/기업가 및 정치가를 비판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현재 사회마저도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사회라고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전태일 문제는 한 시대에 있었던 과거사가 아니라,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세계관의 충돌이다. 

초, 중, 고 각급 교과서를 통해서 전태일을 알리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공부하자는 수준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서 마르크스주의적 세계관을 주입시키고, 현재 그리고 미래 한국 사회를 그들의 관점에서 변화시키려고 하는 의도 때문이라는 것이 지적되어야 한다. 

인터넷을 치면 전태일에 대한 찬양 일색의 자료만 검색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지적들이 균형 있게 검색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런 토론회의 자료들이 계속 확산될 필요가 있다. /김승욱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1) 마르크스 『자본론』(제1권) 308-310.

2) 김종현, 『경제사』, 364

3) Heilbroner, 

4) Robert Heilbroner and William Milberg(2007), Making of Ecnomic Society, 홍기빈 역 (2010), 『자본주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미지북스, 181-190.


(이 글은 7일 자유경제원이 리버티홀에서 주최한 '전태일 생애 바로보기-누가 전태일을 이용하는가' 전태일 분신 46주기 세미나에서 김승욱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가 발표한 토론문 전문입니다.)

[김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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