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포격 6년…대한민국 지킨 잊혀져 가는 `전우애`

자유경제원 / 2016-11-21 / 조회: 9,943       미디어펜
2010년 11월 23일은 교양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스마트폰을 쓸어보던 학생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선생님, 전쟁 날 것 같은데요?” 휴전 후 민간인 거주 지역에 대한 첫 포격이었다. 그 즉시 수업을 중단 했다. 빨리 집으로 가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라고 했고 운이 좋으면 다음 주 이 시간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학생들은 좋아하면서도 좀 오버 아니니 수군대며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수업 자료들을 챙기는데 한 남학생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힘 있게 경례를 부쳤다. 몇 년째 학교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진지한 표정은 처음이었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집으로 갔을까 아니면 예비군 사령부건 민방위 본부건 자기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으로 갔을까. 돌아서서 강의실을 나가는 그의 뒷모습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막상 아이들을 보내긴 했지만 실은 나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냥 집에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집으로 가는 남태령 고개 도로는 한적했다. 내가 예민한 것인지 사람들이 둔감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몇 년 후 우연히 당시 현역이었던 사람의 체험담을 읽었다. 충격이었다. 옮긴다.  

“그래서 북한이 포로 도발을 했기 때문에 전군에 아마 진돗개 하나? 암튼 화스트페이스? 암튼 지금은 다 까먹었는데 전시에 준하는 경계태세가 내려졌고 ​아~ 힘들었다. 갑자기 이렇게 상황이 발생되면 힘든 게 그냥 계속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북한 애들이 그렇게 도발을 GOP 외에는 다른 사단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쳐들어올 적도 있지 않을 것 같은데 긴장하고 24시간 전투복 있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힘들다. 어쨌든 ​다시 얘기를 하자면 내가 경계지원을 하던 곳에서는 난리가 났다. 사단장님 오시고 무슨 사령관님 오셔서 나한테 전쟁나면 어떻게 이 군사시설을 경계할 것인지 보고 하라고 하고, 수색작전은 또 어떻게 할 것이고 상급부대 지원 받을 수 있는건 뭐가 있고 질문세례를 퍼 부었다. 그 와중에 애들은 근무 서느라 죽는다고 하고.. 아..​그리고 웃겼던 게 지금에야 말하지만 나는 기계화 부대에서만 근무하다 생뚱맞게 보병중대장으로 가서 보병전술을 잘 몰랐다. 수색작전은 해본 적도 배운 적도 없는데 수색작전 어떻게 할 것인지 브리핑 하라고 하니까 그것도 사단장님(투스타), 누군지는 기억안나지만 원스타에게 브리핑을 했다. 이 브리핑을 하기 위해서 교범 찾아보고 동기들한테 물어보고 ㅋㅋㅋ 아흐.. 힘들었다.”

“​이렇게 상황이 발생되면 잘 챙겨야 될 애들이 이등병, 일병이다. 얘들은 뭘 모른다. 그냥 뭔가 비상이다~ 그러니까 비상이구나~ 하고 실탄 준다~ 하니까 받는다. 이런 친구들 교육을 잘 시켜야 한다. 지금은 어떤 상황이고 우리가 있는 곳에서 적은 어느 방향에 있으니 저쪽을 잘 봐라 그리고 적은 이렇게 행동하니까 이상한 상황이 발생하면 이렇게 보고해라~ 이렇게까지 알려줘도 어리바리한 게 이등병 일병이다~ 서울대고 머고 다 필요없다~ 특히 적이 어느 방향에 있는지 잘~ 아주 잘~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엉뚱한데 보면서 경계작전 하는 일이 없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부대에 있는 친구들도 다 힘들었을 거다. 갑자기 전시가 되면 우리는 어떻게 이동하지? 뭘 먹지? 탄약은 어디서 받지? 어디로 가야되지? 이런 걸 다시 한번 고민해야 되고 잘못된 게 있다면 또 털리고 업무가 더 많아지고..ㅋㅋㅋ 암튼 북한 놈들 한 번 지랄 떨 때마다 너무너무 힘들다..ㅋㅋㅋㅋ”

(출처: 장교군대 이야기- ‘연평도 포격사건 당시 현역군인들은...’ 작성자 MrHan의 즐거운 세상 中)

웃을 일이 아니다. 이렇게 우리의 방위 자세가 허약하다. 이 군인뿐만 아니라 우리는 대부분 전쟁 발발과 동시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 선명하게 행동의 로드맵이 떠오르지 않는다. 전쟁을 안 해 봐서 그렇다. 전쟁이 진짜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절대 가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의 전쟁은 경우의 수에서 완벽하게 제외되어 있다. 역사적으로도 그렇다.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이라는 수사는 만방의 호구라는 얘기다. 맞기만 하고 때릴 줄을 모른다는 이야기다.

개인 간의 완력 다툼이건 나라와 나라 사이의 분쟁이건 전쟁과 싸움의 첫 번째 원칙은 ‘선방’을 날리는 것이다. 우리는 신라 시대에 당나라에 선제공격을 해 본 게 마지막이다. 전쟁과 싸움의 두 번째 원칙은 선방을 허용했다면 1초도 망설이지 말고 바로 맞받아치는 것이다. 역시 우리 역사에 없던 일이다. 그래서 맞으면 겁부터 먹고 본다. 바로 맞대응했을 때 벌어질 일에 대해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일을 상상하는 것조차 두렵다. 이런 겁쟁이 의식이 천 년 이상을 이어져 내려왔다. 가난이 한국인의 DNA라면 겁은 한국인의 행동을 통제하는 원초적인 무의식이다. 

  
▲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에 대한 기습 포격 하루 뒤인 2010년 11월 24일 오후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의 한 주택이 포격으로 인해 완파돼 있다./사진=연합뉴스


공화국 그리고 공화가치라는 것

전쟁은 지킬 것이 있을 때 하는 것이다. 지킬 게 없으면 전쟁을 할 이유가 없다. 지켜야 할 재산이 있을 때 사람은 결사적으로 싸운다. 그러나 이것은 고대, 중세의 이야기다. 근대에 들어서는 재산보다 중요한 것이 등장했다. 그것은 가치다. 공동체의 가치를 지키는 일 그러니까 공화정을 사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되었다.

공화정은 주권을 가진 국민이 직, 간접 선거에 의해 일정한 임기를 가진 국가원수를 뽑는 국가형태다. 그리고 주권을 가진 국민이 선출한 대표자가 국가를 지배하고 국민들 스스로도 대표자가 될 수 있는 제도를 통해서 국민이 자신을 지배하는 국가형태가 공화국이다. 공화국은 대부분 민주주의 원리를 수용하는데 그래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하는 것은 맞지만 공화국으로서는 자격미달이다. 공화국은 세습에 의한 군주제를 타파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에게는 그런 경로가 없었다. 세습 군주는 제국주의 세력이 없애줬다. 경험의 부재는 공화가치의 실현을 애초부터 가로막았다. 공화가치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식과도 밀접하다.

민주주의는 천민민주주의로, 포퓰리즘으로 타락하기 십상이다. 이때 민주주의의 타락을 잡아주는 것이 공화가치다. 민주주의의 한계를 공화가치가 규정하는 것이다.  서구에서 그 어떤 경우에도 민주주의가 공화가치를 넘어서는 일은 없다(원칙상 그렇다). 공화가치는 민주주의의 기준이고 공화가치가 없는 나라는 민주주의의 공격으로 침몰하기 십상이다.  

피 흘려 스스로 세운 공화국이 아니었기에 우리에게는 공화가치가 희박하다. 가치는 자부심이다. 대한민국은 공화국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가. 나라를 세운 건국의 아버지에 대한 존중이 없고 경제개발로 국격을 높인 대통령에 대한 존경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부심의 유무를 판별할 수 있다. 이 공화가치를 대신한 것이 민족이다. 

민족주의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공화가치를 넘어선다(민족주의는 지적으로 빈틈이 많고 인간의 가장 저열한 본능에 호소하는 최악의 가치다). 이것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공화국을 세우고 지켜온 외국인들에게는 매우 어색한 풍경이다.

‘왜 북한은 극우의 나라인가’라는 도발적인 저서로 유명한 브라이언 마이어스 교수는 한국인들은 국가보다 민족에 더 강한 소속감을 느낀다는 요지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그가 볼 때 한국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민족이지 국가가 아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공화국에 대한 프라이드가 없다. 공화국에 대한 프라이드가 없으니까 연평도 포격 같은 일들이 태연하게 그냥 넘어간다. 목숨으로 지킨 공화가치와 그 공화국의 영토가 남에게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대한민국은 별 느낌이 없다. 

  
▲ 6년 전 북한이 가했던 연평도 포격. 주민 밀집지역의 면사무소, 우체국, 파출소 등 공공시설 8곳이 포격을 당했다. 단순한 위협도 아니었다. 발사한 포탄 중에는 열압력탄이라는 인명살상용 방사포도 있었다. 열압력탄은 공중에서 터지면서 작은 파편들이 사방으로 퍼지는 대표적인 인명살상무기다./자료사진=연합뉴스


다시 그 날의 연평도

2010년 11월 23일 8시 20분 북한은 남북장성급군사회담 북측 단장 명의로 “북측 영해에 대한 포 사격이 이루어질 경우 즉각적인 물리적 조치를 경고한다”는 통지문을 보내온다. 대한민국의 호국훈련에 대한 경고로 이는 1996년부터 15년 간 계속되었던 훈련이고 북한에 통보까지 하고 하는 연례 훈련이었다.

당연히 대한민국 국방부는 훈련중단 요청을 거절하고 예정대로 훈련을 진행한다. 10시 15분부터 14시 24분까지 4시간 동안 연평도 주둔 해병대는 총 3657발을 발사하는 사격 훈련을 했다.

연평도 해병대의 포격 훈련이 종료된 지 10분 후 북한은 76.2mm 평사포, 122mm 대구경 포, 130mm 대구경 포 등을 연평도 군부대 및 인근 민가에 퍼부었다. 북한군 포격은 두 차례에 걸쳐 감행되었다. 14시 34분 경 시작된 첫 번째 포격에서 150여 발의 포탄이 발사되었고 이 중 60여 발이 연평도에 떨어졌다. 2차 포격은 15시 12분부터 총 20여 발이 발사되었고 20발 모두 연평도를 타격했다. 1차 포격 후 탄착점을 수정, 재차 공격을 가한 것이다. 해병대원들은 적의 포격이 시작되자 재빨리 주민들을 대피시켰고 첫 타격 후 13분 후 대응사격을 개시했고 북측을 향해 80여 발의 포탄을 발사했다. 

주민 밀집지역의 면사무소, 우체국, 파출소 등 공공시설 8곳이 포격을 당했다. 단순한 위협도 아니었다. 발사한 포탄 중에는 열압력탄이라는 인명살상용 방사포도 있었다. 열압력탄은 공중에서 터지면서 작은 파편들이 사방으로 퍼지는 대표적인 인명살상무기다.

이 피격으로 연평도에서 복무하던 해병대원 2명(故 문광욱 일병,故 서정우 하사)이 전사하고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 부상자는 민간인 3명, 해병대원 16명이었다. 서 하사는 2009년 해병대에 자원입대했고 포격 도발 당시 마지막 휴가를 가려고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던 중 북한군의 포탄소리를 듣고 귀대하다가 전사했다. 故 문광욱 일병은 대피호에 있던 중 잠시 밖으로 나왔다가 주변에 터진 포탄 파편에 가슴을 관통당해 숨졌다. 자발적으로 부대 복귀를 하던 서정우 하사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가족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동료들이 생각났을 것이다. 

그는 두 개의 가치 중 부대원들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동료들과 전선을 사수하고 그것이 결국 가족을 지키는 일이라는 공화정의 프로세스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따랐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기록을 보면 수도를 지킬 병사 수백 명을 모으기도 힘들었다. 병사들이 죄다 집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게 공화가치를 알고 그것을 지키려는 나라와 아닌 나라의 차이다.

연평도 피격 직후 SNS에 군화를 꺼내놓고 군복을 다린 사진을 올리는 퍼포먼스가 유행처럼 번졌다. 연평도 피격으로 우리가 얻은 유일한 성과다. 그런 정신이 공화국과 공화가치를 지킨다. 최종적인 목적은 나와 가족을 지키는 일이다. 그러나 그 프로세스는 순서가 뒤바뀌어 진행된다. 그래서 착각하기 쉽다. 부대로 복귀하고 전역을 미루고 위기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것은 가족 사랑과 공동체의 수호로 가는 공화정의 매뉴얼이다.            

  
▲ 6년 전 북한으로부터 연평도 포격을 당한 해병대원들은 적의 포격이 시작되자 재빨리 주민들을 대피시켰고 첫 타격 후 13분 후 대응사격을 개시했고 북측을 향해 80여 발의 포탄을 발사했다./자료사진=연합뉴스


나가면서

얼마 전 윤평중 교수는 ‘공화국의 적들’이라는 칼럼에서 공화정의 근본을 공공성과 공정성으로 정의했다. 공공성과 공정성이 근본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이전에 공화가치에 대한 국민적인 합의와 동의가 먼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는 상태에서 공공성과 공정성은 공허한 수사일 뿐이다. 공화가치에 먼저 있은 후에 공공성과 공정성이 따라 붙어야 제대로 된 공화국이다.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이 글은 21일 자유경제원이 마포 리버티홀에서 개최한 ‘연평도 용사의 전우애로부터 배우다: 대한민국 누가 지켰나…개인의 숭고함을 찾아서’ 토론회에서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가 발표한 발제문 전문입니다.)

[남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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