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정과 냉소 사이…역사가 둘로 쪼개진 2016 대한민국

자유경제원 / 2016-12-22 / 조회: 10,518       미디어펜
역정(逆情)과 냉소(冷笑) 사이 어디 쯤 2016

냉소(冷笑)

원래 따뜻한 인간이었다. 살면서 이렇게 변했다. 화 내봐야 폐만 상한다. 그래서 자꾸 냉冷해진다. ‘쿨’했었는데 그래서 지금은 ‘콜드’다. 살려니 어쩔 수 없다. 1948년은 민주주의 혁명의 해였다. 어떤 사람들에게만 그렇다. 어떤 사람들을 제외한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짜증나고 불쾌한 날이 1948년 8월 15일이다. 해서 대한민국에는 역사가 둘이다.

역사가 둘이라는 얘기는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두 종류란 얘기다. 갈라설 수 없는 부부처럼 불행한 게 없다. 그래서 서로 역정 내고 할퀴고 상처주고 씹고 까고 밟고 조지고 산다. 정신건강에 최고로 해로운 게 어쩌면 이 땅에서 사는 일이다. 1948년이 고맙고 감사한 사람들에게 인천상륙작전은 하느님이 보우하신 일이다. 당연히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이 나라를 발로 찬 날이다. 그래서 생난리를 쳤다. 이른바 ‘인천상륙작전 평론가 동맹 결사저지작전’이다.           

영화평론가들의 전성시대는 1980년대 중반부터다. 영화를 단순한 오락이 아닌 철학과 미학으로 대접하기 시작했다. 절정은 키노(러시아어로 영화라는 뜻)라는 잡지였다. 스크린이니 로드쇼니 하는 잡지도 있었지만 그건 결국 스타 화보집이다. 키노는 차원이 달랐다. 생판 처음 들어보는 남미영화 특집을 하지 않나 60년대 일본 영화감독의 전 작품 리뷰를 싣지 않나 하여간 목차부터 사람을 주눅 들게 했다(무식은 죄다. 죽어랏!). 무협지를 방불케 하는 고색창연 문어체의 향연을 우리는 키노체(體)라고 불렀다. 지금 와서 그 필체를 논하라면 '저도 모르는 소리를 방언처럼 지껄여대는 허언증'이라고 정리하고 싶지만.

평론가들의 몰락은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그리고 DVD에 별 정보가 다 담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지식이 상식이 되었다. 그래도 평론가들의 글을 자주 읽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아닌가. 그런데 최근 들어 이 평론가라는 분들이 이상해졌다. 평론이 아니라 취향 고백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 역사는 당대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역사에 대한 평가는 그 시대와 몸으로 엮인 사람들이 다 가고 난 다음에 아무런 심리적, 정서적 부담이 없는 후손들이 할 일이다. 백년 쯤 지나고 나면 후대는 20세기 후반 한반도를 어떻게 기억할까./사진=연합뉴스


고생하고 희생한 아버지들의 이야기 '국제시장'에 "술술 흘러간다. 그렇다고 술술 받아들이겠다는 것은 아니다"며 딴죽을 걸었다. 피눈물 나는 응전의 기록 '연평해전'을 "130분 예비군 안보훈련"이라고 짓밟았다. '인천상륙작전'에는 아예 작심을 하고 달려들었다. 평점이 10점 만점에 높아야 넷, 적으면 둘이었다. 이건 할리우드 삼류 에로물에도 안 주는 점수다. 평점만 짠 게 아니었다.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인천상륙작전'에 퍼부은 이들의 포화는 다음과 같다(괄호 안은 평론에 대한 개인적인 소감이다). 

"2016년판 똘이 장군", (똘아이...냐)
"멸공의 촛불", (용공의 촛불을 오래 들다 보니)
"겉멋 상륙, 작렬", (언어 감각 초딩 작렬)
"리엄 니슨 이름 봐서 별 한 개 추가", (박철민이 아니고?)
"시대가 뒤로 가니 영화도 역행한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배배 꼬여 일부러 삐딱하게 거꾸로 앉아 있으면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반공주의와 영웅주의로 범벅된 맥아더에게 바치는 헌사" (어떻게 보면 그 영화가 이렇게 보이니)

이렇게 읊으신 분들이 김성훈, 김수, 박평식, 이용철, 허남웅, 황진미다(오래 기억할게요).

그러니까 이 분들은 자기들의 아버지, 어머니가 목숨 걸고 지킨 이 나라가 너무 너무 싫은 거다. 그것도 논리적으로 싫은 것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싫은 거다. 그래서 평론 대신 감정이 튀어나온다.

막상 흥행에는 도움이 되었다. 해도 너무 한다며 일부러 가서 보고 별점 올려 매기는 데 참여한 사람도 부지기수다. 자무자파, 자살골이었다. 그런데 평론가 선생님들 왜 관객들은 비난 안 하니. 나 같으면 매장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국민이 미개해서, 라고 한 마디 했다.

1948년 8월 15일에 태어난 대한민국은 올해 여순 여덟 살이 되었다.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역사 인식도 나이와 엇비슷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이 평론가 분들은 어디서 따로 살다왔는지 인지발달이 여전히 48년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밉냐고? 안 밉다. 딱하지도 한심하지도 않다. 그냥 표정 없이 멍하게 보게 된다. 아참, 그 중 하나는 아니다. 이야기는 ‘국제시장’이 개봉했던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국제시장'은 역설적으로 매우 정치적인 영화다. 정치색을 빼기 위해 요소요소에 갖은 탈취제를 투입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 언급이 없다는 것도 이 중 하나다.


영화 ‘국제시장’의 시나리오를 고치면서 감독은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이 장면을 넣어 말어 하면서 머리를 쥐어짰을 것이다.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박정희 대통령)이 그 가난한 나라에서 온, 가난이 싫은 간호사들과 가난을 물려주기 싫었던 광부들과 목 놓아 우는 장면 말이다. 물론 역사적인 사실이다. 들어가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이렇게 추론해본다. 흥행이 문제가 아니라 기준이 있었을 것이라고. 이것은 대한민국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 이야기다 하면서 감독은 그 장면을 넣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국제시장’은 역설적으로 매우 정치적인 영화다. 정치색을 빼기 위해 요소요소에 갖은 탈취제를 투입한.    

그런데도 그 영화가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국제시장을 보면 아예 대놓고 ‘이 고생을 우리 후손이 아니고 우리가 해서 다행이다’라는 식이거든요. 정말 토가 나온다는 거예요. 정신 승리하는 사회라는 게.” 라고 말한 인간이 있었다. 무슨 투정인지는 알겠는데 문맥상, 아버지가 없거나 아니면 존경할만한 아버지를 가져보지 못한  어린애의 칭얼대는 소리로 밖에 안 들린다.

감독은 “그래도 어찌 됐든 그 발언으로 더 많이 화제가 됐고 덕분에 관객들이 '국제시장'에 관심을 가져주셨다. 결과적으로 감사하다.”라고 대꾸했다. 멸치에 대하는 고래의 자세란 이런 걸 말한다. 그 칭얼거린 인간이 허지웅이다. 그렇게 싫으니? 나 같으면 이민 간다. 이런 나라에 세금 안 낸다.

‘국제시장’에 ‘그늘’을 담아야 했다고 주장하는 인간도 있었다. 그늘이라. 혹시 이런 거? 극 중에서 난데없이 전태일이 등장해 노동 삼권을 외치며 분신하는 장면이나 ‘덕수’의 친척이나 주변 인물이 국가 보안법 위반 같은 걸로 잡혀 들어가 물고문 끝에 병신 되는 거? 그래서 집안 풍비박산 나는 그런 거? 어쩌다 그리 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머리가 단순해서 살기는 편하겠다. 이 분의 이름은 갑수다. 
  
역사는 당대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역사에 대한 평가는 그 시대와 몸으로 엮인 사람들이 다 가고 난 다음에 아무런 심리적, 정서적 부담이 없는 후손들이 할 일이다. 백년 쯤 지나고 나면 후대는 20세기 후반 한반도를 어떻게 기억할까. ‘남쪽의 누구는 삼만 명을 괴롭히고 삼천만 명을 잘 살게 만들었다.

북쪽의 누구는 삼천만 명을 괴롭히고 삼만 명을 잘 살게 만들었다(숫자는 운을 맞추기 위한 은유다).’ 대략 이렇지 않을까. ‘갑수 씨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꼰대’들이 6.25 때 고생 많이 했다고 말하면 젊은 세대들은 그래서 어쩌라고 하며 반감만 더 갖게 된다고. 정말 그럴까. 그럼 극장에 앉아있던 그 청춘들은 다 뭐니. ‘국제시장’을 보면서 옆에 앉은 어른들보다 눈물을 더 쏟아냈던 청춘들은 대체 어디서 온 거니. 아무리 백세 시대라지만 역사 앞에서 조금은 공손해야 한다. 트집 그만, 투정 뚝! 

  
▲ 대한민국에는 역사가 둘이다. 역사가 둘이라는 얘기는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두 종류란 얘기다. 갈라설 수 없는 부부처럼 불행한 게 없다. 그래서 서로 역정 내고 할퀴고 상처주고 씹고 까고 밟고 조지고 산다./사진=미디어펜


역정(逆情)
   
김무성 전 대표는 지난 달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썩은 보수는 도려내고 건전한 새로운 보수를 규합해서 보수층 국민들에 대해서 저희들이 도리를 다 하겠다.”

나경원 의원은 이번 달 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창궐로 양극화가 극심해져가는 이제는 새누리당도 좌파적 사고를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 됐다.” 

영화 ‘사도’에서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존재 자체가 역모야.”/남정욱 대한민국문화예술인 대표


(이 글은 21일 자유경제원 리버티홀에서 열린 ‘위기의 대한민국, 네 ‘욱’에게 듣는다’ 세미나에서 패널로 참석한 남정욱 대한민국문화예술인 대표가 발표한 토론문 전문이다.)

[남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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