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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미국산 석유 가격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원인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미국산 석유, 서부 텍사스 중질유의 가격이 마이너스로 떨어졌습니다. 가격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제발 돈 줄 테니 이 기름 좀 가져가 주세요”, 이렇게 되는 것이죠. 마이너스 원유가는 1983년 유가선물 가격에 대한 기록이 시작된 이래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의해서 봐야 할 부분은 마이너스가 된 기름값이 WTI 서부 텍사스 중질유의 5월 인도분 선물의 가격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5월 인도분 선물이란 5월 중에 계약자에게 인도될 물건이라는 뜻입니다. 선물이란 현물, 즉 계약과 동시에 인도되는 거래, 즉 현물 거래에 대응하는 개념입니다. 영어로는 Futures라고 부릅니다. 문제의 사건은 4월 20일에 발생했는데요. 5월 달에 원유를 넘겨받을 권리의 가격이 그날 4월 20일에 배럴당 마이너스 37.63달러로 떨어진 겁니다. 그 전날인 19일 가격 배럴당 15달러에서 무려 53달러가 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6월 인도분의 선물 가격은 마이너스가 아닙니다. 같은 시각 6월 인도분의 가격은 20.43달러, 12월 인도분은 31.66달러였습니다. 또, 선물이 아니라 현물가격은 4월 20일, 같은 날에 12.0달러였습니다. 5월 인도분 선물 가격만 엄청난 마이너스를 기록한 겁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서부 텍사스 중질유, 즉 미국 기름 값만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는 거죠. 국제 유가의 기준이 되는 북해산 브렌트유는 마이너스 가격이 아니에요. 4월 20일에 5월물 만기가 지나고 6월물이 거래되고 있긴 했지만 어쨌든 근래에 들어 4월 20일까지 한번도 20달러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의 서부 텍사스 중질유 5월 인도분의 4월 20일 가격만 마이너스 37.6달러로 떨어진 것이죠. 같은 서부 텍사스 중질유라도 6월 인도분부터는 20달러 이상이고요. 북해산 브렌트유 역시 20달러 근처에서 형성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미국 텍사스 기름 시장에서 나타난 이 현상을 슈퍼 콘탱고(Contango)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이건 선물 시장에서만 쓰이는 은어인데요. 선물 계약 만기가 멀수록 가격이 높아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반대로 만기가 가까울수록 가격은 낮아지는 현상이죠. 5월 인도분은 6월 인도분보다 싸고, 그것은 다시 7월 인도분의 가격보다 싸게 형성되는 거죠. 그러니까 미국 텍사스 기름 시장에서 콘탱고 현상이 나타난 거죠. 게다가 5월분 가격은 낮아도 엄청나게 낮아졌으니 슈퍼 콘탱고라고 부르게 된 겁니다.
왜 미국의 서부텍사스 중질유 5월 인도분에서만 슈퍼 콘탱고 현상이 생겼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구분해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왜 세계적으로 기름 값이 추락을 하고 있는가?’ 이것이 첫 번째고요. 두 번째는 '왜 미국의 서부 텍사스 중질유의 가격만, 그것도 5월 인도분의 4월 20일 가격만 마이너스를 기록했는가?’입니다.
원유 가격이 전 지구적으로 추락하는 원인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들께서 이해하고 계실 겁니다. 수요 측면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서 석유에 대한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고요. 공급측에서는 석유전쟁 때문입니다. 대개 수요가 줄면 공급도 따라서 줄기 마련인데 공교롭게도 사우디와 러시아 사이에 석유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서로 시장점유율을 늘리기 위해 증산 치킨 게임이 벌어졌습니다. 수요는 줄고 공급은 급증하다 보니 석유 가격은 급락을 거듭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제가 이미 3월 20일자 석유전쟁이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설명드린 바 있습니다. 못 보신 분은 보시기 바랍니다.
(석유전쟁, https://www.youtube.com/watch?v=LrkOyWAnd3I&t=599s)
그 후 공급을 줄이기 위해 트럼프가 나섰고 조금은 유가하락이 진정되는 듯했습니다만 큰 효과는 없는 듯합니다. 아무튼 6월 인도분의 경우 배럴당 20달러 중반 수준에서 가격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브렌트유의 가격도 비슷하고요. 그런데 느닷없이 미국의 서부 텍사스 중질유 5월 인도분의 4월 20일 가격이 마이너스로 추락한 겁니다. 이건 세계적인 유가하락과는 별개의 현상입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미국 원유 저장소의 위치와 용량 한계 때문입니다. 이 지도에서 보듯이 미국의 유전들은 대부분 내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석유저장소는 오클라호마의 쿠싱이라는 도시에 있습니다. 미국에서 선물거래로 석유가 인도된다면 다 이 곳으로 모인다고 보면 되죠. 여기에 모인 석유들은 파이프라인을 타고 각 지역의 수요자들에게 보내집니다. 이곳을 쿠싱 석유 허브라고 부르는데요. 내륙 깊숙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가 된 겁니다.
석유가 팔리지는 않고 생산만 되다 보니 이곳의 저유시설에 쌓이게 된 겁니다. 이 그래프에서 보시는 흰색 줄이 쿠싱 저유소에 쌓이는 원유 재고입니다. 급격히 늘고 있죠. 아직은 여유가 있다고 하지만 5월이 되면 더 이상 빈자리가 없을 거라고 걱정들을 하는 거죠. 극단적인 경우에는 기름을 배달 받은 사람이 기름통을 집에다 쌓아놔야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기 전에 어딘가 다른 곳을 찾겠지만 아무튼 저장할 곳이 없으면 석유가 큰 짐이 되는 거죠. 그래서 5월 인도분의 가격이 마이너스가 된 겁니다.
4월 19일까지는 괜찮다가 20일의 가격이 마이너스가 된 것은 그날이 5월 인도분 선물 계약을 변경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인도 기일을 5월에서 6월이나 그 후로 바꾸려고 난리가 난 겁니다. 저장소 부족 때문에 말이죠. 그 마지막 날이 4월 20일이었습니다.
6월 인도분의 가격이 마이너스가 아닌 것은 왜일까요? 투자자들이 그 때가 되면 코로나 사태도 어느 정도 진정되어 기름에 대한 수요가 살아날 것으로 보고 있는 거죠. 그러면 굳이 저유소에 오래 넣어둘 필요가 없을 테니 말입니다.
이제 남은 의문은 북해산 브렌트유 값은 20달러 이상인데 미국 기름 값만 마이너스가 된 이유입니다. 그것은 오일 허브의 위치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기름, 정확히 말하자면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된 원유선물 계약의 기름은 쿠싱의 오일허브로 배달됩니다. 내륙 깊숙이 위치해 있죠. 평시에는 아주 좋은 위치이죠. 하지만 기름이 넘쳐나는 비상상황이 되니까 문제가 생긴 거죠. 원유를 저장할 데가 여기 밖에 없어요. 갑자기 다른 곳에 새로 만들 수도 없고 말입니다.
그러면 북해산 원유, 즉 브렌트유는 저장능력에 문제가 없을까요? 브렌트유는 북해의 바다에서 생산됩니다. 여기에도 물론 직접 연결된 저유소가 있죠. 거기도 요즈음 아마 가득 차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곳은 미국의 쿠싱 석유 허브와 달리 비상 수단이 있어요. 바다에 떠 다니는 유조선을 저유소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기름 수요가 줄었으니 유조선을 쓸 일도 별로 없죠. 그 유조선들이 저유소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숫자는 세계 곳곳에 엄청 많죠. 그래서 북해산 브렌트유는 미국의 텍사스 기름처럼 저장능력 부족으로 갑자기 값이 마이너스로 추락할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
결론입니다. 미국 텍사스 기름 가격이 마이너스로 추락한 것은 미국의 기름 그 중에서도 5월 인도분에만 국한된 국지적이고 일시적 현상입니다. 만약 투자자들의 예상이 맞는다면 6월부터는 수요도 상당히 살아나고 공급은 제법 줄어서 가격은 배럴당 20달러 중반 이상을 회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진정되지 않고 계속된다면, 5월 20일, 6월 20일에 또 다시 미국 석유 시장에서 슈퍼 콘탱고 현상이 되풀이될 수도 있습니다. 두고 볼일이죠.
김정호 / 김정호의 경제TV 크리에이터, 서강대 겸임교수
* 이 글은 2020.4.22 <김정호의 경제TV>로 방영된 <왜 미국산 기름값만 마이너스? 슈퍼콘탱고의 비밀. 서부텍사스중질유와 브렌트유의 차이.>의 텍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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