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본드를 둘러싼 남북 유럽의 대립

김정호 / 2020-04-14 / 조회: 8,589


김정호_2020-07.pdf

동영상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DPFyVF4x6L0


오늘은 유럽 이야기입니다. 우한폐렴 바이러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기존 경제 질서가 모두 붕괴 위기에 처했는데요. 유럽이 지금 그렇습니다. 코로나 본드의 발행을 놓고 유럽의 남북이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데요.


코로나 본드라는 단어가 생소하시죠? 본드(Bond)란 채권을 말합니다. 5년 후 또는 10년 후에 얼마를 갚겠다, 이런 증서를 말하는 거죠. 코로나 본드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EU, 즉 유럽연합이 발행하게 될 채권입니다. 그 채권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회원국들이 공동으로 경기부양도 하고 방역과 치료에도 투입하자는 거죠. 물론 상환 책임도 같이 부담하게 됩니다.


코로나 본드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이유는 이것의 발행 여부에 대해 나라마다 입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태리, 스페인, 프랑스를 비롯한 9개국은 코로나 본드를 발행하자고 합니다. 주로 남유럽의 국가들이죠. 반면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핀란드의 네 나라는 코로나 본드의 발행에 반대합니다. 돈이 필요하면 각자 채권을 발행하라는 입장이죠.



찬성하는 9개국은 반대 4개 나라에 대해서 인정머리도 없는 것들이라고 분노합니다. 반면 반대하는 4개국은 요구하는 측이 무책임하다며 상대하지 않으려 하죠. 이 4개국은 유럽에서 재정이 가장 튼튼한 나라들입니다. 그래서 별명이 Frugal Four, 즉 검소한 4인방입니다. 돈 쓰는 건 남쪽 나라 사람들이 다 쓰고 나중에 갚을 때 되면 나 몰라라 하며 ‘나자빠질 것’ 아니냐, 그 돈은 결국 북쪽의 우리 4개 나라가 갚아야 할 거다, 이런 주장이죠.


이 그래프는 유럽 나라들의 GDP에 대한 국가부채 비율인데요. 빨간색이 찬성하는 9개국이고, 연두색이 반대하는 4인방입니다. 코로나 본드를 원하는 쪽이 부채비율이 높죠. 검소한 4인방에 비하면 본드 발행을 주장하는 아홉 개 나라는 확실히 씀씀이가 헤프다고 봐야겠죠.



그러다 보니 이 나라들은 채권을 발행할 때도 매입자에게 비싼 이자를 보장해줘야 합니다. 아래 표는 유럽 6개국의 나라별 국채 수익률인데요. 국채 수익률은 새로 국채를 발행할 때 보장해줘야 하는 금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가장 낮은 나라는 독일과 네덜란드입니다. 금리가 마이너스이죠. 즉, 이 두 나라는 오히려 돈을 받고 돈을 빌리는 셈입니다. 이 나라들은 코로나 본드에 반대하죠. 그런데 그리스, 이탈리아 같은 나라는 그 보다 훨씬 높죠. 거의 2%를 보장해줘야 합니다.



공동명의로 채권을 발행할 경우 그리스, 이탈리아 같은 나라는 독자적으로 발행할 때보다 훨씬 낮은 금리로 돈을 쓸 수 있겠죠. 채권을 사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결국 독일, 네덜란드 같은 나라가 상환을 책임질 것임을 알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은 악착같이 EU 명의의 채권을 발행해서 돈을 같이 쓰자고 주장하는 겁니다. 하지만 독일, 네덜란드 같은 나라들에게는 코로나 본드, 즉 상환 책임을 공동으로 부담하는 채권은 덤터기를 쓰는 셈이 되는 거죠. 이처럼 서로의 입장차이가 분명하다 보니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겁니다.


남유럽의 9개국이 아무리 목소리를 높인다 해도 검소한 4인방이 반대하는 한, 코로나 본드는 발행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 검소한 4인방도 9인방의 목소리를 외면만 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여차하면 자신들에게 피해가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죠. 특히 이탈리아의 부채가 문제입니다. 이탈리아의 국가부채비율은 GDP의 135%입니다. 이미 엄청난 빚을 지고 있죠. 그런데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서 경제가 완전히 마비됐습니다. 세금은 못 걷는데 돈 써야 할 데는 얼마나 많겠어요? 당연히 빚은 계속 늘 수밖에 없습니다. 곧 GDP의 150%로 높아질 거라는 예측들이 많습니다. 실질적으로 갚을 수 없는 지경이 된 거죠. 그래서 이탈리아 내에서는 지불유예, 즉 모라토리움을 선언하자는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탈리아가 모라토리움 또는 국가부도를 선언할 경우 그 여파가 유럽 전역에 미친다는 겁니다. 이탈리아에 돈을 빌려준 은행들이 많기 때문이죠. 이 지도는 나라별로 이탈리아에 빌려준 돈의 액수를 보여줍니다. 프랑스가 가장 많고 독일, 영국, 스페인 등 대부분의 나라들이 다 물려 있어요. 이탈리아의 부도는 유럽 전역의 은행들의 연쇄 도산, 금융 위기로 이어지게 되죠. 그건 세계 금융 공황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 검소한 4인방도 코로나 본드에 마냥 반대만 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이탈리아가 이렇게 빚을 많이 지게 된 데에는 온정적 국민성이 크게 작용했다고들 합니다. 대출 청탁을 거절하기 어려워하고, 돈을 못 갚아도 부도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은행에 부실대출이 많습니다. 좋게 보면 온정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책임한 것이기도 하죠. 이 그래프는 유럽국가들의 부실대출 비율인데요. 2017년 자료지만 큰 그림을 이해하는 데는 상관없습니다. 그리스,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이 매우 높죠. 반면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는 유럽 평균보다 훨씬 낮습니다. 그만큼 훈훈한 정은 없지만 정확한 사람들이죠. 그래서 남에게 피해도 안주는 겁니다.



이 갈등의 결말이 어떻게 될까요? 만약 코로나 본드 발행이 안 된다면 이탈리아는 어려운 처지에 놓일 겁니다. 모라토리움을 선언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여파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가겠죠. EU가 붕괴될 수도 있습니다.


이탈리아도 차라리 그쪽을 원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유로를 쓰느라 통화주권을 포기했었는데 이 참에 다시 자국 화폐를 가지고 싶어할 가능성이 높아요. 그러면 독일 눈치 안 보고 돈을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검소한 4개국이 마음을 돌려 코로나 본드를 발행한다면, 당장의 위기는 모면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는 못할 겁니다. 코로나본드 발행 조건으로 검소한 4인방은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 가혹한 조건을 요구할 거예요. 돈 모아서 빨리 갚으라고 고삐를 조이겠죠. 그것은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 겁니다. 그 때문에 이탈리아에 EU 탈퇴를 표방하는 정치세력이 더욱 힘을 받을 겁니다. 이탈리아 같은 나라의 많은 부채와 노쇠한 경제 때문에 이래저래 유럽연합을 이어주는 접착제가 힘을 잃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만약 유럽연합이 해체된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지각변동이 초래될 겁니다. 세계 금융 공황이 올 수 있죠. 그러면 미국 달러에 대한 수요가 폭발할 가능성이 높고, 애꿎은 한국도 유탄을 맞기 십상입니다.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한국에 투자했던 외국자본이 본국으로 또는 안전한 나라로 탈출하는 현상이 다시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해서 유럽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정호 / 김정호의 경제TV 크리에이터, 서강대 겸임교수




* 이 글은 2020.4.5 <김정호의 경제TV>로 방영된 <Corona Bonds 코로나채권, EU 유럽연합 해체의 서곡인가>의 텍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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