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기업가는 자유시장에 해악을 가져올 수 있다

김경훈 / 2020-03-13 / 조회: 5,500

기업가정신은 사회의 영속적인 번영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다. 민간 자본 투자의 확대를 이끌고 생산과 저축을 촉진하며 더 많은 사회적 부를 가져다주는 기업가들은 분명 자유시장 경제와 자유주의 사회의 선봉장으로 활약하곤 한다.


그리하여 많은 자유주의자가 기업가와 기업가정신을 칭송한다. 소설가 아인 랜드는 기업가가 파업을 선언한 세계를 그려낸 소설 <아틀라스>를 통하여 기업가정신의 위대성과 정부 및 반기업정서를 가진 국민들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자유주의자들의 경우, 대체로 삼성, 현대, LG, 그리고 포스코 등 고도발전시기에 성공적인 기업을 운영하며 우리나라를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로 이끈 1세대 기업가들의 도전정신과 역량에 찬미를 보내곤 한다.


물론 1세대 기업가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나라가 지난 20세기에 반시장경제 독재정권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성공했던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경제의 발전은 언제나 민간의 생산적 자본 투자의 확대 및 저축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고, 정부는 언제나 경제를 파괴하는 역할만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1세대 기업가들이 언제나 순수하게 시장경제에서만 활동하며 스스로의 역량만을 통해 대기업을 일구지 않았다는 불편한 진실에 있다. 우리나라의 재벌 대기업들은 분명 정부의 권력을 이용해 중소기업과 국민의 재산을 갈취하며 자신들에게 필요한 자본을 확충하였다.


군사를 일으켜 국가를 장악한 일련의 반시장주의 세력은 자신과 야합하는 일부 기업을 선택하여 다른 기업들이 누릴 수 없는 혜택과 보조금 지급 등을 제공해주었다. 간택된 기업들 역시 독재정권에 뇌물과 로비를 주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법령을 개정하거나 상대 기업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정상적인 자유시장에서는 가능하지 않았을 상황을 조성하며 자신들의 우위를 이끌어냈다. 이러한 ‘정부-재벌 유착관계’가 반영속적으로 구축됨에 따라, 기업의 경우 비효율적인 투자를 계속하면서도 정부의 비호 아래 시장우위를 유지할 수 있었고, 정부는 자기들 나름대로 정권 수명 연장에 보탬을 받을 수 있었다.


일부 학자들은 이것이 ‘정경협력’과 ‘경제력 집중’의 결과인 일종의 경제 기적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오늘날 가장 엄격하고 일관된 논리로 시장경제를 설명하는 오스트리아학파의 경제학에 따르면, 정부의 경제개입은 언제나 과오투자를 창출하거나, 전혀 생산적이지 못하고 그저 자산을 낭비할 뿐이다. 더욱이, 시장경쟁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곧 소비자가 선호하지 않는 방향으로 경제의 진행과정을 왜곡하여 결과적으로 생산성과 삶의 질의 하락을 가져온다.


즉 정부의 경제개입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항상’ 부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온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성장은 간단히 말해 ‘운’이 좋았을 뿐이다. 정부와 재벌의 강력한 국가주의적 유착관계가 가져오는 비효율을 상쇄하고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이 민간사회에서 계속하여 나왔기 때문에, 동 시기의 유사 국가들보다 훨씬 높은 지위의 양적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지, 정부 및 정부와 야합하는 재벌대기업의 역량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다.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 머레이 라스바드의 용어를 빌리자면, 우리나라의 경제는 ‘경제성장(economic growth)’이 결과가 아니라 ‘강제성장(coerced growth)’의 결과이다. 경제는 양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질적인 면도 중요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강제된 양적 성장의 결과, 질적인 면이 따라오지 못하는 부작용을 겪고 있다. 양적인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가용가능한 자본 및 노동이 상대적으로 세계평균보다 높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양적인 풍요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물론 과거의 독재정권과 재벌대기업이 형성한 관치경제체제의 필연적 결과이다. 노동시장은 매우 경직되었고,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격차,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삶의 질 차이가 극심해지면서 청년계층의 자발적 실업이 계속되고 있다. 사실상 대기업이 아니면 시장에서 지속가능한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중소기업이 정부의 보조금 지급으로 연명하는 유사 배급제, 유사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지금 우리나라가 직면한 현실이다.


우리사회의 일부 세력은, 국가주의가 형성한 이런 암울한 측면을 무시하고, 가시적으로 보이는 양적인 성장결과에만 주목하며 정부와 야합했던 1세대 기업가들의 일부 역량만을 찬미하거나, 사회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청년계층의 비관주의를 비난하며 “이렇게 양적으로 풍족한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 너희 정신의 빈곤함과 가난이 너를 불행하게 한다. ‘헬조선’은 허구다.” 라고 대응하곤 한다. 그러나 상기한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의 설명을 감안한다면, 그들의 태도는 최소한 자유시장과 그것을 지지하는 자유주의에는 부합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한국경제의 질적 비효율성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며, 이것을 야기한 원인 중 하나로 1세대 기업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가는 언제나 최저의 비용으로 최고의 이윤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런 기업가에게, 정부와 야합하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선택지이다. 시장에서 공정하게 상대방과 경쟁하며 우위를 취하는 것은 극심한 노력과 투자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정부, 혹은 국가란 무엇인가? 특정 영토 내의 법률과 무력을 독점하는 일종의 독점기관이다. 몇 가지 제도적인 제약에도 불구하고, 정부 혹은 국가는 언제나 모든 사회의 가장 지배적인 기관이다. 이러한 강력한 권력을 가진 정부와 친해지고, 그들의 힘을 이용하는 것은 분명 기업가의 입장에서 매우 바람직하다.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보다 정부를 꼬드겨 그들의 힘으로 경쟁 상대방을 찍어 누르는 것이, 더 적은 투자로 더 많은 결과를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정부의 시장경제 개입이 존재하는 한, 기업가정신은 언제나 유혹에 시달린다. 유혹에 굴복한 기업가정신은 시장경제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국가를 위해 봉사하며 시장경제에 해악을 미친다. 1세대 기업가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긍정적인 유산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불편한 진실 역시 곱씹으면서, 앞으로 기업가정신이 시장경제에 유익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지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자유시장의 일관된 옹호자 중 한명인 전용덕 교수의 이 발언은 분명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해준다: “한국은 국가 주도의 수출지향적 산업화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성장시켰다. 다시 말하면, 국가 주도의 산업화로 많은 비효율과 자원 낭비(경기변동 등에 의해)가 발생했지만 그것을 크게 능가하는 민간의 자본 투자, 저축,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투입, 높은 교육(이것은 개인 차원에서 자본을 투입하는 것임), 기업가들의 도전정신(반도체 투자, 조선업 투자 등) 등이 높은 경제성장률을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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