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전파가 주도하는 현대 주류경제학은 계량경제학(econometrics)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계량경제학은 역사적 데이터를 수치화 하고 이를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경제학적 진리에 접근하려는 귀납적, 후험적(a posteriori) 경제학이다. 계량경제학은 "경제학이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모방해야 한다"는 방법론적 인식(방법론적 일원주의)에서 출발한다. 계량경제학은 매우 일반적인 경제학적 연구 방법으로 통용되고 있다. 실제로 대학생들은 현실 경제와는 지극히 동떨어진 복잡한 수리 모형과 계량 분석 방법론을 배우는 데에 몇 년을 보낸다. 반면 경제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개념적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애초에 계량경제학을 통해 어떤 경제 과학적 진리나 규범에 도달하려고 하는 발상 자체가 치명적인 오류다. 경제학은 본질적으로 귀납적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의 데이터는 특정 시간에 살았던 특정 사람들의 행동이 낳은 역사적 기록에 불과하다. 그 자체만으로는 어떠한 경제과학적 진리도 도출할 수 없다.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경제 분석 방법론으로서 계량경제학은 단순히 과거의 경향을 수식으로 나타내는 학문일 뿐이기에 경제학적 문제의 본질을 규명하는 데는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한다"고 혹평한다 . 1)
경제학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간의 행동(action) 2) 은 합목적적(purposeful) 행동으로, 가치 판단과 목적의식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어떠한 상황을 지금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행동한다. 합목적성은 인간 고유의 특성이다. 경제학에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대입하는 것은 이러한 합목적성을 배격하는 일이다. "인간은 합목적적으로 행동한다"는 궁극적 공리로부터 경제학의 체계를 차근차근 연역해 나가는 방식을 통해야만, 엄밀한 경제과학적 진리를 도출해낼 수 있다. 예컨대 불평등은 무엇인지, 인플레이션과 이자율은 어떤 관계인지, 공정 가격은 과연 존재하는지와 같은 중요한 질문들은 이런 방식을 통해서만 답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개념적 논의다.
양질의 개념적 논의가 선행되지 않은 계량 분석은 무의미한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예컨대 2015년에 IMF가 출간한 보고서 <소득불평등의 원인과 결과: 국제적 시각>을 보자. 저자는 "최상위 20%의 소득 점유 비중이 1% 올라가면 실질 GDP 성장률이 0.08% 하락하고, 최하위 20%의 소득 점유 비중이 1% 올라가면 실질 GDP 성장률이 0.38% 증가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고는 곧 "낙수효과는 없다(benefits do not trickle down)"고 성급하게 결론 내린다. 계량경제학이 얼마나 기만적으로 남용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먼저, 낙수효과를 기각하는 논증에 설명 변수가 '분위별 소득 점유 비중'과 '실질 GDP 성장률' 단 두 개밖에 없는 것은 난센스다. 낙수효과는 경제학에서 이론으로 취급받지도 못하지만, 나름 그 자체로 복잡하고 심오한 진술이기 때문이다. 낙수효과는 일반적으로 ‘고소득층의 소득 증대가 소비 및 투자 확대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저소득층의 소득도 증가하게 되는 효과’라고 정의된다. 따라서 낙수효과를 계량적으로 기각하기 위해선 적어도 소비나 투자 등을 포함해 정의에 명시된 변수들은 모두 고려했어야 한다. 모두 고려해도 진실의 아주 단편적인 조각만 보일 뿐이다. 또, 저자의 주장과는 반대로 경제 성장률의 둔화가 소득 불평등 심화로 이어졌을 가능성(역(逆) 인과관계)도 배제하고 있다. 나름 경제학의 석학이 모여 있다는 IMF도 이런 엉터리 연구를 내놓는다. 이 연구에서 숫자는 단지 연구자의 검증되지 않은 신념을 거들었을 뿐이다.
비록 미제스나 프랭크 쇼스탁은 계량경제학을 "애들이나 하는 장난(childish play)"에 빗대어 저주했지만, 계량경제학 자체가 완전히 무용한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정책 고안자들이나 국책 연구원들은 당장 계량경제학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계량경제학의 귀납적 추론은 확률적 인과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연역적 추론보다 포괄적인 사실관계를 제공할 수 있다. 연역적 추론에서는 절대로 관계가 없을 것만 같던 변수들이 귀납적 계량분석에서는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계량 분석을 통해 밝힌 변수들 간의 ‘확률적 인과성’을 통해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유추해내는 것은 전적으로 연역 과학의 몫이다. 계량적 방법론은 분명 보조적인 도구가 되어야 한다.
NO. | 제 목 | 글쓴이 | 등록일자 | |
---|---|---|---|---|
35 | 법의 문은 비겁한 침묵으로 닫힌다 손경모 / 2020-02-07 |
|||
34 | 공리가 더 이상 공리가 아닌 이유 김남웅 / 2020-02-05 |
|||
33 | 청년이 본 부동산 ①: 이제는 부동산 담론을 다뤄야 할 때 조정환 / 2020-01-29 |
|||
32 | 경제위기의 ‘보이지 않는’ 원인 김경훈 / 2020-01-28 |
|||
31 | 다당제의 환상 박재민 / 2020-01-23 |
|||
30 | 식당 안의 시장: 2달러와 4달러 조정환 / 2020-01-22 |
|||
29 | 경제대공황의 숨겨진 진실: 스무트-홀리 법 정성우 / 2020-01-20 |
|||
28 | 공수처에 관한 진짜 문제 김영준 / 2020-01-17 |
|||
27 | 연민이라는 안대 조정환 / 2020-01-13 |
|||
26 | 동물권은 없다 이선민 / 2020-01-08 |
|||
25 | 블랙홀도 한때는 빛난다 손경모 / 2020-01-06 |
|||
24 |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은 유사과학인가? 김경훈 / 2020-01-02 |
|||
23 | 보수 진영이 한국 자유주의의 유일한 희망일까? 김영준 / 2019-12-13 |
|||
22 | 저작권은 권리가 아니다 김경훈 / 2019-12-05 |
|||
21 | 기업가는 관찰한다. 그러므로 시장은 존재한다. 손경모 / 2019-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