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동당은 특히 신중해 보이지 않는다. 한 때는 대단한 당이었으나, 이제는 음모론자들의 손에 휘둘리고 당내 이견(異見)에 적대감이 커지면서 그나마 흐릿하게 남아있었던 합리적인 사고마저 고갈 상태다.
노동당 하원 의원, 앤젤라 이글(Angela Eagle)과 전(前) 자문의원, 임란 아메드(Imran Ahmed)가 당을 위한 21세기 철학을 명확히 표현하려는 시도도 바로 이런 분위기에서다. 그들의 책, '새로운 노예(The New Serfdom)’는 “어디에나 있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을 위한 슬로건”으로써 적극 홍보되고 있다.
이글과 아메드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의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에서 제목을 빌려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그 책의 중요한 특성들을 비난한다. 그들은 '노예의 길’이 1944년 출간된 이후로 보수 정책을 이끌어 왔다고 주장한다.
“’노예의 길’은 전형적인 허수아비(straw man, 유사한 듯하나 본질을 왜곡하는) 논쟁거리다. 하이에크는 사회주의를 우스꽝스럽게 과장했다가 무자비하게 비난했다.”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새로운 노예’를 몇 쪽만 읽고 나면 그들의 주장은 모순 덩어리가 된다. 허수아비를 만들었다가 박살내기는 바로 이글과 아메드가 한 짓이기 때문이다.
맨 처음 그들은 모든 것을 계획할 수 있다는 중앙 계획자의 지나친 오만에 대해 경고하는 하이에크의 동기(動機)를 의심한다. 하이에크가 사회주의를 파시즘과 비교한 것은 속된 말로 “관심종자”처럼 일부러 공격적이고 불쾌한 내용으로 사람들의 감정을 유발하고 혼란을 주는 교묘한 선동이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중앙계획 경제 속의 삶의 실체를 하이에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1938년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했을 때 그는 고국 오스트리아로 돌아가지 않고 전시 중인 영국에서 난민으로 살았다. 그 와중에 '노예의 길’을 저술했다. 즉, 중앙계획국가에 대한 하이에크의 혐오는 단순한 과장이 아니었다.
이것이 아주 사소한 트집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하이에크의 사상을 왜곡하는 아주 심각한 경향이다. 그 책에 하이에크가 직접 인용된 것은, 있다 하더라도, 거의 없는 게 확실하다. 그 대신, 이글과 아메드는 허수아비를 잔뜩 세워 놓았는데, 일부는 본질을 한참 빗나가 우습기까지 하다.
첫째, 가장 뚜렷한 것은 책의 부제 “보수주의 사상의 승리(The Triumph of Conservative Ideas)”에서 하이에크의 사상을 “보수주의”라고 명명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철학이 당연히 경제 현상 유지를 선호한다고 암시한 것이다.
“시장 근본주의자들은 편리하게도 엄청난 재산을 소유했다는 것 자체가 자격이라고 주장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정말 그런가? “시장 근본주의자들”이라는 표현은 나중에 살펴 보기로 하고, 일단 위의 주장은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자본주의자들의 실제 생각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경쟁을 옹호하는 하이에크의 모습으로 보건대, 진정한 자유주의자들은 특전이 고착화되는 것을 질색한다. “능률적인 생산에 최적화된 방법을 발견하는 이는 저명한 사업가, 즉 이미 존재하고 있는 시설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경쟁과 시장의 힘을 촉발시키면 자금과 혜택이 현재 부자들에게 가던 것에 정반대로 영향을 미친다. 이는 이론에도 있을 뿐만 아니라 공공 정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처 정부의 많은 개혁이 현직에 있는, 이미 자리 잡은 집단에게 큰 손실을 안겨주었다. 예를 들어, 1986년 “빅뱅 (대처 정부가 금융 부문 규제를 해지한 개혁)”은 '동문 인맥’이 지배하는, 엘리트를 위한 폐쇄된 상점이었던 런던을 새로운 물품이 계속 입고되는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시장으로 변모시켰다. 1970년대와 1980년대 가부장적인 보수 기득권층이 대처를 그렇게 경멸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이글과 아메드는 책 전반에 걸쳐 하이에크를 “자유시장 근본주의자”라고 비난한다. 그는 시장의 노예다. 공공 서비스는 “언제나 나쁘고” 민간 부분은 “언제나 좋다”고 여기며, “사람들의 동기는 오직 재정적 보상에만 있고 '사회에 유익한 것’은 안중에도 없다”고 믿는다. 이는 심각한 왜곡이다.
하이에크는 중앙 계획자가 경제를 계획할 때, 사실은 무엇보다 '사회에 유익한 것’을 결정할 때, 판단의 근거가 되는 정보가 부족하다고 주장했지, 시장에 오류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시장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리’ 추구를, 발견과 시행착오의 오류투성이 과정으로 보았다. 이는 '자유의 헌법(The Constitution of Liberty)’의 후기인 “왜 나는 보수주의자가 아닌가(Why I am Not a Conservative)”에서 하이에크가 분명히 밝힌 바다. (앤젤라, 제목 좀 보시오!)
그들은 “낙수효과(trickle-down)” 신화를 반복한다. 이는 경고 감이다. 토마스 소웰(Thomas Sowell)은 “낙수효과” 경제학이 좌파가 만들어낸 허구의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자유 시장 지지자들이 자신들의 신념을 설명하기 위해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존재하지 않는 이론이다.
당신이 자유 시장 원칙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든지 간에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감세, 정부지출 축소, 더 큰 경제 자유를 지지하는 이유가 뒤늦게라도 부의 일부분이 사회 최빈층에 “물방울처럼 떨어질 것 (낙수 효과)”이라고 믿거나 혹은 특권층에게 견고한 부는 그 자체가 목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분명히 정직하지 못하다.
오히려 자유 시장 지지자들은 정부 개입은 최대한 제한하고 거래는 최대한 자유롭게 보장하여 사람들이 가능한 모든 기회를 추구하게 되면 전반적으로 부가 창출될 거라고 주장할 것이다. 감세는 부자들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좌 편향된 노동당 하원 의원이나 전(前) 노동당 자문위원과 같은 해결책을 내놓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노예’의 진짜 문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게다가 알려고 노력도 제대로 해 보지 않은 채 주장만 내세우고 자유 시장 지지자들의 정의(定義)도 왜곡한 것이다. 어떤 철학을 비판하고자 한다면, 심지어 책 제목까지 빌려온다면, 적어도 하이에크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이해해야 한다.
또 다른 전형적인 허수아비는 의료에 관한 비판이다. 그들은 의료에 관한 논란이 미국식과 의료보험제도 단 두 가지 선택 밖에 없다는, 간편하지만 근거 없는 믿음을 재탕한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에서 보듯이, 의료 서비스를 민영화할 경우 그 결과는 끔찍하다”라고 한다.
대체 어느 나라들인가? 이글과 아메드는 엉망인 미국의 의료 체계 하나만을 예로 들었을 뿐이다. 의료의 6%를 민영화한 영국에 비해 20%를 민영화한 스웨덴 같은 “자유 시장 근본주의자들”이 보여주듯이, 시장과 의료보험 제도가 잘 양립하는 예들이 선진국에 널린 것을 무시한다.
'새로운 노예’는 지나치게 태만했을 뿐만 아니라 수정주의의 만행도 저지르고 있다. 이는 현안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사건에도 그렇다. 브렉시트 투표를 대이변으로 보면서 독일을 위한 대안(Alternative fur Deutschland, 독일 우파 정당)과 국민전선(Front National, 프랑스의 민족주의 극우정당) 같은 극우 정당들의 약진으로 비유한다. 도널드 트럼프을 대처와 레이건의 “타고난 후계”로 묘사한다. 그것도 하이에크파 자유주의자로 말이다. 트럼프의 보호무역 목록에 대한 하이에크의 의견은 완전 딴판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가장 터무니 없는 것은 영국 산업의 과거를 눈가림하는 것이다. 이글과 아메드는 전후(戰後) 합의를 “활기차고 통제된, 세심한 관리를 받는 민간 부문”과 “소득재분배론자인 거대” 공공 부문이 정상적으로 결합된 것으로 묘사한다. 투자 이익에 부과된 눈물 나는 98% 세금 등 가혹한 세금제도가 수년간 사기업(私企業)을 억눌렀던 것을 무시한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산업을 목 죄던 노조를 와해시킨 대처를 신랄하게 비난한다. 그러나 그 시절 거래 통제, 두 자리 물가 상승, 연이은 파업, 전력 공급 중단과 같은 배경 설명은 없다. 전쟁 이후 영국이 유럽의 모든 나라에 뒤쳐졌던 사실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노조가 온 나라에서 활개를 치던 1970년대에 우리가 진짜 노예였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유 시장론에 대해서는 그렇게 혹평을 퍼부어댔지만, 실제로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방법은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지 않다. 부자들의 “공정 배분(fair share)” 납부 필요성을 두리뭉실하게 말했을 뿐, 대처식 노조 개혁을 원상 복구하거나 “소득재분배론자인 거대 공공 부문”이 지배적이었던 1970년대 가혹한 세금제도로 돌아가자는 말은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런 말이 없다면, 왜 없는 것일까?” 아마도, 역사가 이미 여러 번 입증했듯이, 그것이 진짜 노예의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본 내용은 https://capx.co/the-new-serfdom-is-a-road-to-nowhere/를 번역한 내용입니다.
번역 : 전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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