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반 세기 동안 과학의 신뢰성은 증가했고 "과학을 믿는다"와 같은 슬로건을 흔히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진술은 두 가지 주요 문제를 제시한다. 첫째, 과학은 최종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결정된다. 둘째, 과학은 가치나 도덕적 가치나 판단을 수반한다. 예를 들어, 한 과학 연구에 따르면 “헬멧을 착용했을 때 머리 부상을 48%, 심각한 머리 부상을 60%, 외상성 뇌 손상을 53%, 얼굴 부상을 23% 줄일 수 있다.” 등과 같이 말이다.
첫 번째 문제가 과학의 기초와 모순되고 두 번째 문제는 전적으로 과학의 범위 밖에 있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과학적 방법은 관찰 후 이에 대한 질문과 가설이 형성되고, 실험을 통해 그 가설의 결과값을 얻은 후 가설의 옳고 그름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그른 가설은 수정 및 폐기되며, 현실의 데이터를 통해 연구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의 기본과정은 반과학적이다. 과학적 방법은 과학적 방법은 가설과 관련된 경험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과거에 의존한다. 때문에 과학은 미래를 제대로 예측할 수 없으며 일어난 일을 모형화한 후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 합리적인 예측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두 번째 문제는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과학은 우리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전혀 말해줄 수 없다. 가치 판단이나 도덕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은 과학적 방법 내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과학은 결코 "해야 한다"거나 "반드시 해야 한다"라고 말할 수 없다.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 루드비히 폰 미제스는 "궁극적인 목적은 개인의 가치 판단에 의해 선택된다. 과학적 탐구나 논리적 추론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과학이 보편적 가치 판단을 내리도록 허용하면 도덕성을 정의 내릴 수도 있다. 낙태를 예를 들어, 과학은 언제 심장 박동이 시작되는지, 태아가 임신 기간 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 심지어는 성별까지 알려줄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아기를 낙태하는 것이 도덕적인지 아닌지를 말하는 것은 절대 불가하다. 이는 결국 개인의 가치 판단과 도덕규범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과학이 도덕적 법체계를 강제하기 위한 정부의 어떤 행동에서도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행동은 소수의 도덕과 가치가 많은 사람들에게 강요되는 결과를 낳는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개인은 다른 사람의 가치보다 자신의 가치와 선호를 따르도록 허용되어야 한다."라고 말하며 과학의 도덕 정당성에 관한 내용에 반대했다. 모든 과학적 연구의 결과에는 해석이 필요하며 모든 해석은 필연적으로 주관적이다. 결과에 대한 해석은 가치 판단과 도덕규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이 도덕성을 결정짓는다면 과학은 과학의 특성이 아닌 종교의 특성을 갖게 될 것이다.
과학이 권력과 결합했을 때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히틀러가 "과학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과학은 무엇이 진실인지 추론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라 주장한 것처럼 말이다. 과학자들이 과학적 방법에서 멀어질수록, 그들은 과학을 더 훼손하고 선택을 제한하고 인간의 자유를 파괴하며 실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을 높인다. 과학은 전화기의 원리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지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는 절대 말해줄 수 없다는 걸 기억하자.
본 내용은 아래 기사 및 칼럼 내용을 요약 번역한 내용입니다.
Mike Roberts, Why the Bastardization of the Scientific Method Is so Dangerous, 9, Jan, 2022
번역: 김태현
출처: https://fee.org/articles/why-the-bastardization-of-the-scientific-method-is-so-danger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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