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제 통일안의 논리적 모순

권오중 / 2019-01-17 / 조회: 15,686


연방제 남-북 통일 방안이 최초로 등장했던 것은 1960814일 김일성의 '8.15해방 15주년 경축대회연설이었다. 당시 연방제는 과도적 대책으로 남-북의 현 정치제도를 그대로 두고 양 정부의 독자적인 활동을 보장하는 방식의 연방제를 의미했다.

 

김일성이 연방제 통일방안을 제시했던 배경에는 첫째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동-서 양 진영에서 세력균형에 입각한 현상(Status quo)유지 분위기에 따른 양 진영 간의 긴장완화 기조, 그리고 이와 더불어 둘째 4.19 혁명을 통해 집권한 민주당 정권이 과거 이승만 정권과 비교하여 유화적인 대북관을 갖고 있다는 것이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이승만 정권이 1954년 제네바 회담에서 제안했던 UN 감독 하의 북한지역에서 만의 자유선거가 북한의 거부로 좌절된 이후 유일하게 주장했던 북진통일과는 다르게 민주당 정권은 무력통일을 배제하고 UN 감시하의 남북한 자유 총선거를 통한 통일을 주장했기 때문에, 민주당의 주장과 북한 정권의 주장은 상당 부분 부합했다. 대북 강경노선을 일관했던 자유당 정권과는 다르게 무력통일을 배제하고 대화를 통한 통일로 대북정책의 기조를 바꿨던 민주당 정권의 등장으로 인하여, 북한 정권은 대남 선전선동 전략으로 연방제 통일이라는 새로운 이슈를 던짐으로써 남남 갈등을 유발시키면서 통일문제에서 명분을 선점할 수 있었다.

 

이후 연방제 통일론은 박정희의 3공화국이 시작되면서 더 이상 이슈화 되지 못했다. 그런데 1972'7.4 남북 공동성명공표이후, 1973623일 김일성은 당시의 동-서 데탕트 분위기에 편승하여 조국통일 5대 방침을 제시하면서 고려연방공화국이라는 단일 국호에 의한 남북연방제 실시를 주장하면서 연방제 통일이라는 이슈를 재 점화하기 시작했다. 이후 198010월 제6차 당 대회를 통해 고려연방공화국민주라는 수식어를 붙인 후 최종 정리된 통일방안으로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제시하였다.

 

이른바 고려연방제라는 것은 연방통일정부를 수립한 이후 남과 북의 지역정부가 각자의 지역에서 내정을 맡고, 외교와 국방은 중앙정부가 맡는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 형태의 통일국가를 의미했다. 이어서 자주적 평화통일 달성을 위한 선결 조건은 첫째 대한민국에서의 군사독재 청산과 민주화, 둘째 미국과의 평화조약 체결과 미군 철수를 통한 전쟁위험 제거, 셋째 대한민국에 대한 미국의 내정 간섭 종식이었다. 또한 연방통일정부가 남-북한이 동등한 권한과 의무를 갖고 최고의결기구로서 -북 동수(同數)” 대표와 적당한 수의 해외동포 대표로 최고민족연방회의를 구성한다는 것은 1954년 제네바 한국평화회담 당시에 총선거에서 남-북한의 국회 의석수를 동수로 하자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려연방국의 10대 시정방침의 내용을 살펴봐도, 민족의 자주성, 남북경협, 남북교류, 군사적 대치상태 해소, 평화애호 등으로 현실적인 실현가능성 보다 남-북 관계에서 북한이 민족통일에 대해 더욱 적극적이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한 선전적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또한 김일성은 통일의 선결조건으로 당시의 정치-안보 상황에서 실현 가능성이 없는 대한민국의 군사독재 청산과 민주화 그리고 미군철수를 요구함으로써, 남남갈등을 유발시키기 위한 의도에 더욱 치중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데 북한이 제안했던 연방제국가는 그 자체가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그 이유는 북한이 제안했던 1민족 1국가 2체제 2정부라는 것이 국제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1국가는 통일국가라는 의미이고, 2체제는 서로 다른 정치적 체제가 1국가 내에서 공존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국가는 그 국가의 체제를 규정하는 헌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한 마찬가지로 현재 미국이나 독일의 사례처럼 연방 국가도 여러 국가들이 공동의 헌법을 매개로 연방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김일성이 제안했던 연방제는 연방국가로서 남-북한이 공동의 헌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전혀 하지 않았다. 김일성은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서로 다른 체제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서로 다른 체제는 공동의 헌법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하나의 연방국가로 묶일 수가 없다. 그래서 공산주의 헌법과 자유민주주의 헌법의 헌법적 통일이 없는 연방제나 통일국가는 절대로 실현될 수 없기 때문에, 북한의 연방제 제안은 논리적으로 확실한 모순이다. 북한이 진정으로 통일국가를 원한다면, 과도기적 연방제를 제안할 것이 아니라 (UN 감독 하의) -북한 총선거를 통한 통일 국회 수립과 이를 통한 헌법적 통일(체제통일)을 먼저 제안했어야 했다. 결국 1973년 고려연방제 제안은 실제로 연방 국가를 수립하자는 것보다는 북한의 기본입장인 적화통일이 점차 불가능해져 가면서, 북한정권의 목표가 남-북 통일보다는 북한의 체제보장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북한이 연방제를 제안하면서 동시에 평화적인 통일을 언급하는 것도 역시 논리적인 모순이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체제의 통일은 분단구조를 만든 당사자들의 합의가 아니라면 전쟁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통일헌법을 제정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평화적 통일은 불가능하다. 이 경우에 평화는 분단현상의 지속을 의미하고, 통일은 전쟁을 통한 현상(Status quo)의 파괴이다. 따라서 한반도 분단의 경우에 '평화'통일은 병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따라서 북한의 연방제 제안과 평화통일론은 허구였고 전형적인 대남 기만전술이었다.

 

김일성이 제안했던 연방제, 이후 고려연방제의 내용은 20006.15 선언을 거쳐 2019년 현재까지도 북한이 주장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이는 곧 체제보장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북한의 대남 전략이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1960~1970년대 당시에 김일성은 연방제라는 연막을 치고 북한의 체제보장을 이끌어 내려고 했다. 북한의 체제가 보장된다면, 하나의 통일국가도 연방국가도 성립될 수 없기 때문에, 북한정권은 오히려 하나의 정부를 갖는 민족통일 국가나 연방제를 원하고 있지 않다는 속내를 드러냈던 것이다.

 

-북한의 통일은 체제통합, 즉 헌법적 통일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북한이 제안했던 연방제 통일은 하나의 헌법 테두리 안에서 2개의 정부가 병립하는 형태가 아니고, 각기 다른 헌법의 양 체제를 그대로 인정하고 두 개의 정부를 두자는 것이기 때문에, 연방국가로서의 형태를 갖추는 것도 아니다. 결국 김일성의 연방제 제안은 이를 매개로 미국과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미국으로부터 북한의 체제를 인정받고, 또한 남남갈등을 유발하려했던 기만적 시도에 불과했다.

 

권오중 / 외교국방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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