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회주의 정당의 역사 그리고 PD와 NL의 노선차이

권오중 / 2018-10-18 / 조회: 20,190

유럽에서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시작된 자유주의 혁명은 왕족과 귀족 중심의 신분제 사회에서 평민이 사회의 주체가 되는 전환점이 되었다. 자유주의 혁명의 주체인 부르주아들이 정치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하고, 산업혁명을 통한 대량 생산과 자본의 성장이 이루어졌다.


자유주의 경제체제는 사적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생산수단(자본)의 사적 소유와 자유경쟁을 수단으로 삼는 방식이다. 그래서 자유주의적 경제체제, 곧 자본주의체제에서는 자연스럽게 부의 집중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에 대항하여 부의 재분배를 요구했던 것이 19세기에 발생한 사회주의이다.


19세기 사회주의 사상가들은 자본주의가 발달한 사회의 여러 현상들(자본의 집중, 실업, 빈곤, 제국주의, 전쟁 등)이 자본주의의 기본원리인 개인주의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사회적 관리의 수단에 의해 자유와 평등 그리고 사회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사회주의는 19세기 후반부에 이르러 내부적인 노선 투쟁을 통해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분화되었다.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인정하고, 이 안에서 정치적으로 공정한 분배를 추구했던 반면에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모든 생산수단의 사회화(국유화)를 통한 평등한 분배를 목표로 삼았다. 이후 유럽의 국가들에서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는 노동자라는 공통의 유권자층의 지지를 얻기 위한 최대의 라이벌 관계로 발전하였다. 사회민주주의는 러시아에서는 멘셰비키로 지칭되며, 1917년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한 이후 제일 먼저 숙청의 대상이 되고 말았지만, 서유럽 국가들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영국의 노동당, 독일의 사민당 등)은 현재까지도 존재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도 해방정국 당시에 사회주의 계열 정치세력이 등장했었다. 해방직후 가장 신속하게 활동했던 조선공산당은 미군정의 탄압으로 지하로 숨어들어갔다. 또한 1920년에 중국에서 고려공산당에 가입했던 여운형은 사회민주주의 계열이었는데, 이들은 “인민공화국”을 통해 박헌영이 중심이었던 공산당과 협력하면서 우익세력과 “좌우합작”을 시도했다가 백의사(白衣社)로 추정되는 극우세력에 의해 암살당했다. 조봉암도 역시 1920년 고려공산당에 가입했었고, 해방이후 1946년 사회주의계열인 민족전선에서 활약하였고 그해 5월 박헌영(朴憲永)의 공산주의노선을 공개서한을 보내어 비판하였다. 1개월 후인 6월 건국 과정에서는 '민족 전체의 자유생활보장’을 내걸고 노동계급의 독재, 자본계급의 지배를 다 같이 반대한다는 중도통합노선을 주장하고 조선공산당과 결별하였다. 그 해 8월 이후부터 미군정당국의 좌우합작을 지지하고 협력했다. 1948년 5월 30일 제헌의원에 당선된 조봉암은 이승만 내각에서 초대 농림부장관을 역임하기도 했지만, 이승만에 대항하여 1952년 제2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서 2등으로 낙선했다. 그는 제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서 또 다시 2등으로 낙선한 뒤, 1957년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진보당’을 창당했다. 하지만, 1958년 1월 간첩죄(공산당 프락치) 및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진보당원 16명과 함께 검거되어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 1959년 7월 1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조봉암의 사형집행이후 사회민주주의는 공산주의와 완전히 다른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와 동일시되었고, 그로인해 사회주의계열 정당은 대중정치에서 완전하게 배제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이후에 등장했던 군사정권에서도 계속해서 유지되었다. 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 계열 정치세력은 지난 150여 년 동안의 근현대사에서 사회의 한축을 이루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사회민주주의 계열 정치세력의 부재가 이어진 것이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방식을 채택하여 성장과 분배에서 성장을 중시하였고, 그로 인하여 19세기 유럽에서 발생했던 자본주의의 현상들이 1970~1980년대에 나타났다. 정치적으로 공정한 분배를 요구했던 세력은 군사정권의 교체에서 그 답을 찾으려 했고, 이는 적극적인 반정부 투쟁으로 이어졌다. 이를 주도했던 세력은 주로 대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제도권 정치에서 수용되지 못하고, 1980년대 들어오며 오히려 심하게 탄압을 당하자, 노동현장에 투신하며 부의 재분배와 정권퇴진운동을 동시에 이어갔다.


이들이 제도권 정치권에 등장한 것은 김대중 정부시절이었다. 노동현장에서 노동운동을 이어왔던 소위 운동권 인사들은 2000년 1월 30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약칭 민주노총) 세력을 기반으로, 1970년대 학생운동권의 주류였던 PD(People's Democracy, 민중민주)계열 세력이 가세하면서 민주노동당(약칭 민노당)을 창당했다. PD계열은 민중민주주의혁명(PDR, People's Democratic Revolution)을 통해 민중민주주의정권 수립을 목표로 하는 정치세력이다. 즉, 창당초기에 이들은 과거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을 이끈 소련 공산당의 노선을 그대로 따랐다. 하지만 민노당은 2011년 12월 6일 민노당,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진보신당 탈당파)가 합당하여 통합진보당이 출범하면서 소멸했다. 민노당의 소멸의 주된 원인은 PD계열과 NL(National Liberation, 민족자주) 계열의 분화였다.


'종북(從北)’이라는 개념은 민노당의 소멸 당시에 PD계열이 주사파로 지칭되는 NL계열을 비판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그리고 지금은 마치 좌파를 통칭하는 개념처럼 인식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좌파는 사회주의 이념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고, 사회민주주의 계열이나 공산주의 계열을 의미한다. 이들의 이념적인 출발은 민중(People)이고, 방식은 다르지만 부의 공정한 분배를 목표로 삼고 있다. 하지만 NL(주사파)은 이른바 주체사상을 표방한 왕조적이고 세습적인 북한의 체제를 추종하는 세력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종북’은 좌파가 절대로 될 수 없다. “좌파=종북” 이라는 인식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보수와 경쟁하면 모두 좌파라고 인정하는 잘못된 사회인식에서 비롯된 명백한 오해이다.


물론 과거에 주사파라고 지칭되는 1980년대 운동권 인사들 중 다수는 김대중 정권 시절에 이미 제도권 정치에 진출하기 시작했고, 이후 노무현 정권 당시에도 계속해서 국회에 진출하고 정부에 참여했다. 이들은 현재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주도세력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들이 이미 기성 정치에 동화되어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부정한다고 보기는 어렵고, 복지정책 등 이들의 정책노선을 보면 NL노선에서 탈피하여 사회민주주의 노선으로 선회한 듯하다.


현재 민노당의 주도세력이 주축이 된 정의당(2012년 10월 18일 창당)의 강령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PD 계열의 기본 목표인 “민중혁명”(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삭제된 것이다. 이어서 “자본의 탐욕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며,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개혁을 이룬다. ...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보장하고 차별을 해소하며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 완전고용을 지향한다.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기본 조건을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제공한다. 국가와 사회는 필수적인 식량・에너지・문화・교육・복지・의료・안전은 물론 전파와 정보통신망 등의 공공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공정하게 분배할 것이다”라는 정의당의 경제관이 제시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정의당도 과거의 PD 노선을 버리고 자본주의 내에서 정치적으로 공정한 분배를 추구하는 사회민주주의로 노선을 수정한 듯하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PD(공산주의)노선을 추종하는 정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NL노선을 따르는 종북주의자들(통합진보당 계열)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있고, 민주주의의 원칙인 전체의사를 거부하고 다수결의 원칙도 부정하고 있다. 그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도 아니고 공산주의자들도 아니기 때문에, 좌파라고 인정해 주어서는 안 된다.


건전한 사회에서 정치적 우파와 좌파세력은 공존할 수 있다. 이들의 경쟁과 상호견제는 어느 하나의 세력에 의한 독재가 아닌 사회의 균형적 발전과 구성원의 평등적 이익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전체의지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 민주정치의 기본적 구조이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의 일당독재”를 추구하는 공산주의나, 왕조적 독재를 추구하는 왕정주의 혹은 북한의 주체주의는 국민의 평등한 권리를 침해하고 소수집단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이제 좌파(사회민주주의)와 '종북’을 분리시켜서 이해해야 한다. 좌파(사회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의 한 축이 되어야 하지만,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종북”은 우리 사회를 부정하기 때문에 필요하지 않다. 결국 주체사상을 추종하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신념을 갖고 있던 통합진보당은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의 선고를 통해 해산되었고, 소속 국회의원 5명(비례대표)도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로써 현재 대한민국에 종북주의 정당도 사라졌고, 재기도 어려워 보인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에 참여하고 있는 과거 주사파(NL) 운동권과 정의당(PD)은 과거에 서로 다른 이념(주체사상 vs, 공산주의)을 가졌었지만, 현재는 모두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인정하고 그 내부에서 공정한 분배를 실현하려는 사회민주주의 노선으로 수정했다. 그리고 이들은 자본과 부의 집중을 견제하면서, 재분배를 통해 우리 사회의 균형적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는 정치세력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권오중 외교국방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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