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스푸드, 먹거리에 기업가정신을 더하다 -죠스푸드 ‘나상균’ 대표-

김상겸 / 2016-07-15 / 조회: 1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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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스푸드의 성장


죠스푸드는 ‘죠스(Jaws) 떡볶이’와 김밥 프렌차이즈 ‘바르다 김선생’을 주축으로 하는 분식 프렌차이즈 업체이다. 죠스푸드는 2007년 고려대학교 앞에서 개업한 죠스떡볶이로부터 시작했는데, 2015년 현재 전국에 걸쳐 430개의 가맹점을 둔 대형 프렌차이즈로 성장했다. 김밥전문점인 바르다 김선생은 2013년 동부이촌동 1호점을 시작으로 사세를 확장하고 있으며, 2015년 현재 전국적으로 총 173개의 가맹점을 두고 있다. 죠스떡볶이와 바르다 김선생을 합하여 가맹점수는 총 600여개, 매출규모는 연간 1천억원(떡볶이 700억원, 김밥 350억원)을 상회한다. 시장점유율 1위 기업은 아니지만 전국대상 프렌차이즈로는 상당히 유력한 업체로 인정받고 있다. 실제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라면(라면부문), 스타벅스(커피부문)과 함께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떡볶이 브랜드로 꼽히기도 했다. 죠스푸드는 떡볶이와 김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회사의 주력은 아직까지는 죠스떡볶이라 할 수 있다. 


죠스떡볶이가 단기간에 업계의 상위권에 위치하게된 것은 다양한 요소가 결합된 결과이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시장의 급팽창 시기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사실 떡볶이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국민들이 즐기던 음식이며, 음식자체의 역사도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비해 떡볶이라는 음식의 위상 자체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인데, 그 이유는 재료자체가 서민적이라는 점도 있지만 대개 노점에서 판매되는 저가 음식이기 때문이다. 떡볶이 전문점이라는 업태가 비교적 최근에 생겨나게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대부분 영세, 자영업의 형태로, 잘해야 분식점 등에서 팔리던 음식이었기 때문에 떡볶이 전문식당이나 프렌차이즈로 발전하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프렌차이즈형 떡볶이 사업이 시작된 것은 2000년대 초반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떡볶이 가맹점이 지금과 같이 급속도로 증가하지는 않았으며,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시장규모가 커지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조기퇴직자들이 많아지면서 저비용, 창업형 자영업에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맹점수가 급증하게 된 것으로 사료된다. 죠스떡볶이를 비롯한 업계의 선두주자들이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라 할 수 있다. 떡볶이 프렌차이즈가 급속도로 확산된 배경에는 정책적 요인도 개입되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MB정부시절에는 식품분야의 정책 가운데 하나로, ‘한식세계화’ 프로젝트가 추진된 바 있는데, 이때 세계화에 적합한 4대 음식 가운데 비빔밥, 김치, 전통주와 함께 떡볶이가 포함된 것이다. 떡볶이가 대표음식에 포함된 것에는 다양한 견해가 교차하고 있지만, 아마도 당시 심각하게 인식되었던 쌀의 초과공급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적인 고려도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프렌차이즈 떡볶이전문점 가맹시장은 급속히 활성화되었으며, 죠스떡볶이 역시 단기간에 급격한 성공을 거두게 된 것으로 인식된다. 


차별화로 승부, 나상균 대표의 기업가 정신


죠스푸드의 나상균 대표는 죠스푸드 창업이전에 몇 가지 사업과 영업사원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핫도그나 퀘사디야를 파는 푸드트럭을 운영한 바 있으며,  애완동물용품 사업으로 의미있는 성공도 거두었다. 죠스푸드 창업이전에는 제약회사의 영업직 사원으로 근무한 경험도 있었다. 

 

나상균 대표는 영업직 일을 하다가 미국유학을 꿈꾸게 되며, 풍족한 유학생활을 위한 안정적 수입원을 모색하던 와중에 떡볶이집을 창업하게 되었다. 가게 터를 마련할 자금이 충분하지 않자, 영업이 부진한 서점의 반을 빌려썼다는 점도 흥미롭다. 창업준비 당시 소문난 떡볶이 집들의 리스트를 만들어가면서 찾아다녔고, 양념비법을 알아내지 못하자 해당 업소의 쓰레기통을 뒤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또한 프렌차이즈 초창기 어려운 시절에는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 배추장사까지 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면면을 미루어 볼 때, 나 대표의 강한 추진력과 집요함, 그리고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 엿보인다. 

 

나상균 대표는 음식점에 대한 의지가 컸던 사람으로 평가된다. 음식업을 사업아이템으로 선정한 이유가, ‘자신이 잘 알 수 있고, 잘 할 수 있는 분야였기 때문’이라 했는데, 이는 유년기에 나대표의 부친과 함께 맛집 방문을 다녔던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성공요인들


죠스떡볶이가 성공한 가장 큰 원인은 초창기 구사했던 전략, 즉 양질의 식자재 사용, 위생적인 매장환경 구축 등 차별화 전략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떡볶이는 음식의 특성상, 사용할 수 있는 재료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기껏해야 매운 정도만 조절할 수 있을 뿐, 맛으로 차별화를 도모하기는 어렵다. 죠스떡볶이는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당시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전략, 즉 식재료의 고급화, 위생을 중시하는 전략을 쓴 것이다. 예컨대 떡은 공장제품이 아닌 경동시장 방앗간의 것을 쓰고, 어묵은 부산에서 직접 조달해서 썼다. 또한 당시로서는 혁신적으로, 튀김용 오징어의 껍질을 직접 벗겨서 사용했다는 점, 또 남은 오징어 발은 잘게 다져서 김말이에 넣었다는 점 등은 좋은 재료에 대한 관심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튀김에 딸려 나오는 간장 역시, 기존의 떡볶이집들이 간장 한 그릇을 여럿이 사용하도록 한 반면, 죠스떡볶이는 개인별로 파 간장 그릇을 제공하는 등 위생적인 측면을 강조하였다. ‘싸구려 떡볶이를 그렇게까지 신경써서 만들 필요가 있느냐’, ‘그런 식으로 장사하면 곧 망한다’는 주위의 수근거림도 있었으나, 이윤이 작아도 조금씩 벌면 된다는 마음으로 지속했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이 인정받자, 7평짜리 매장에서 떡볶이, 튀김을 팔아 월수입 1억원을 넘길 정도로 장사가 잘 되었다고 한다. 떡볶이는 싼 재료와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만들어진다는 고정관념을 깬 차별화된 전략이 주효했던 것이다. 


두 번째 요인은 ‘가맹점 관리의 강조’이다. 죠스푸드는 가맹사업 초기부터 가맹점은 ‘출점’보다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관리에 역점을 둔 것은 현장경험을 통해 구축한 매뉴얼의 강조였다. 나대표 본인이 직접 운영을 해본 경험이 있으니, 매장 내 어디에 때가 잘 쌓이는지, 어디를 자주 청소해야 묵은 때로 인한 고생을 안하는 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냉장고 청소 요령부터 매장 운영을 위한 제반 체크리스트를 만든 것이 매뉴얼이 되었고, 이것이 가맹점 관리의 핵심이 된 것이다. 방대한 매뉴얼을 통한 가맹점 관리는 가맹업주들의 반발을 사기에 충분했지만, 본사의 수입이 다소간 줄어드는 한이 있더라도 가맹점주들을 설득해 나갔다. 


세 번째 요인은 시장흐름을 잘 파악하고 이를 적당히 이끌어가는 전략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김밥전문점 바르다 김선생은 기존의 김밥들이 가격으로 경쟁하고 있는 시장에 고급화 전략을 도입하여 대성공한 케이스이다. 즉 다른 김밥업체들이 저가의 식재료로 가격경쟁에 열중해 있을 때, 바르다 김선생은 양질의 재료를 사용한 프리미엄 김밥을 선보였다. 김선생의 광고문구에는 ‘바른사람, 바른마음, 바른재료’라는 말이 들어가는데, 김밥 한줄에도 최고의 재료를 사용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김밥은 성인들의 간편식으로도 인기이지만, 의외로 식욕이 왕성한 청소년들의 간식으로 많이 애용된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내 자녀가 먹는 김밥이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잘 만든 김밥이기를 원한다. 프리미엄 김밥이라고는 하지만, 한 줄에 1천원 정도 비싼 셈이니 이정도의 사소한 사치는 거부감이 없다. 아니 거부감은커녕, 자녀에게 또는 내 몸에 좋은 것을 사줬다는 기쁨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인정되어 현재 우리나라의 김밥은 프리미엄 김밥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즉 김가네와 김밥천국이 경쟁하던 시장에 바르다 김선생이 빠른 속도로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네 번째는 네이밍 전략이다. 죠스떡볶이는 칼칼하게 맵다. 매운 점을 강조하는 떡볶이집들이 불떡, 핫떡이라는 이름에 머무를 때, 죠스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떡볶이의 빨간 색과 어울리는 강렬한 이름인 것이다. 김밥전문점도 마찬가지이다. 김밥집 간판으로 ‘바르다 김선생’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이름이지만, 어딘지 고지식하고 원칙에 대한 고집이 뚜렷한 올바른 사람이 만드는 정직한 김밥이라는 이미지를 주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으로 죠스푸드는 특별한 홍보 없이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만으로 충분한 효과를 거두게 된 것이다.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은 누리꾼이 이메일이나 다른 전파 가능한 매체를 통해 자발적으로 어떤 기업이나 기업의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널리 퍼뜨리는 마케팅 기법으로, 컴퓨터 바이러스처럼 확산된다고 해서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바이럴 마케팅은 2000년 말부터 확산되면서 새로운 인터넷 광고 기법으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기업이 직접 홍보를 하지 않고 소비자의 이메일을 통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광고라는 점에서 기존 광고와 다르다. 입소문 마케팅과 일맥상통하지만 전파하는 방식이 다르다. 입소문 마케팅은 정보 제공자를 중심으로 메시지가 퍼져 나가지만 바이럴 마케팅은 정보 수용자를 중심으로 퍼져 나간다.  [네이버 지식백과] 바이럴 마케팅 [viral marketing] (시사경제용어사전, 2010. 11., 대한민국정부) 

 


Before & After, 죠스푸드


죠스떡볶이의 이전과 이후로 우리나라 떡볶이 시장을 구분하기는 어렵다. 물론 길거리 허름한 음식의 대명사인 떡볶이가 정식 매장의 위생적인 환경에서 만들어지고 팔린다는 점은 인정된다 할 것이지만, 이러한 변화가 전적으로 죠스떡볶이에 의한 결과라는 단정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김밥의 경우에는 바르다 김선생 이전과 이후가 명확히 구분되는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김밥시장이 가격을 위주로 한 경쟁이었다면, 바르다 김선생 이후에는 품질경쟁으로 시장의 경쟁 패러다임이 변한 것이다. 믿을 수 있는 좋은 식재료를 사용하고, 주문을 받고 난 후에야 만들기 시작하는 김밥, 부모가 안심하고 자녀들에게 사줄 수 있는 김밥 등, 김밥의 고급화를 선도한 것이다. 이러한 고급화 전략의 성공으로, 김선생 김밥은 김밥집으로는 최초로 백화점 식당가에 진출하게 된다. 

 


사실 중년 이상의 한국인에게, 김밥은 추억과 정서가 어려있는 일종의 소울푸드이다. 이들에게 김밥이란 소풍과 같이 특별한 날, 어머니가 정성들여 싸주시는 음식이라는 의미가 강했던 것이다. 김밥을 썰어주시는 어머니 옆에서 꽁지김밥을 얻어먹으려 기다렸던 추억은 많은 이가 가진 경험일 것이다. 당시의 김밥이란 품도 많이 들어가고, 그래서 자주 먹을 수 없는 귀한 음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김밥은 적당히, 또는 허술하게라도 한 끼니를 때우는 음식, 편의점이나 길거리에서 팔리는 간편식 등으로 변하였다. 그러다보니 김밥집들의 경쟁포인트도 자연스럽게 가격으로 통일되었다. 비슷한 재료에 비슷한 맛을 내는 김밥들이란, 가격 이외의 별다른 차별화 요인을 갖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원가를 더 낮추기 위해 품질이 아주 낮은 재료도 동원되었다. 한때 중국산 찐쌀이 김밥에도 들어간다는 시사프로그램의 고발도 있었다. 추억이 서린 소중한 음식이 싸구려 저질음식의 대표가 되어버린 것이다. 따지고 보면, 김선생 김밥의 성공은 이러한 인식의 전환에서 시작된 것이다. 물론 이정도의 변화만으로 김밥의 대한 인식이 완전히 전환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낮은 방향으로만 이행하던 김밥의 인식을 돌려 놓는데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죠스푸드는 변두리 7평짜리 떡볶이 가게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번화가에 수백억대 사옥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모든 기업들이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노력하는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한 기업들이라 하더라도,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어 성공한 기업들은 더 적다. 죠스푸드는 떡볶이에 대한, 김밥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면서 성장해왔다. 앞으로도 매장 간판에 써놓은 것처럼, 바른 먹거리로 바르게 성장하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히든 CEO, 2015, 도서출판 새빛

시사경제용어사전, 2010, 11, 대한민국정부

‘민관합동 한식세계화 추진단 공식출범’, 정책브리핑, 2009.5.4., 대한민국정부


죠스푸드, www.jawsfood.com

한국쌀가공식품협회 부설 떡볶이연구소, www.topokki.com


김 상 겸 |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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