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을 산업화한 CEO, 송승환 PMC 회장

곽은경 / 2015-12-30 / 조회: 8,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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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 한국을 넘어 세계로

 

“회장님, 유리문이 깨졌어요.”


<난타>를 보러온 많은 관객들에 밀려서 입구의 유리문이 깨져버렸다. 공연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공연장 문이 부서지면 그 공연은 대성공을 거둔다는 속설이 있다. 2014년 12월 31일 <난타>는 한국 공연으로는 최초로 1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대본 없는 새로운 형식의 공연에 대한 주변의 우려가 편견이었음을 당당히 증명했다.

 

해외 시장에서도 한국 공연계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세계 최고의 예술문화 축제인 에딘버러 페스티벌과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1999년 에딘버러 연극제에게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이후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2000년 일본 도쿄 공연을 시작으로 오사카, 대만,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영국, 미국, 독일에 진출했다. 

 

그리고 2004년 3월 7일, 난타는 오프브로드웨이 미네타 레인 극장에 전용관을 개관했다. 아시아 최초로 브로드웨이에 전용관을 개설해 세계적인 작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1년 6개월간의 브로드웨이 공연 동안 <난타>는 638회 공연을 했고 총 148,532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훌륭한 공연은 스스로 돈을 버는 공연

 

송승환의 첫 번째 창작뮤지컬은 <고래사냥>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공연계는 외국작품을 국내 배우들이 그대로 연기하거나, 외국 배우들이 직접 공연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송승환은 이런 관행을 탈피해 보자는 생각에서 직접 창작 뮤지컬을 만들기로 결심하게 됐다. 첫 번째 시도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공연기간 내내 객석은 만원이었고, 평론가들도 근래 보기 드문 창작뮤지컬이라고 평가를 했다.

 

그러나 정해진 기간 동안 만석이어도 수익이 나지 않았다. 당시 잘해야 본전, 실패하면 빚이라는 말이 공연계 내부에서 당연시 되던 때였다. 1억 5천만 원을 투자한 세트는 서울, 지방공연이 끝나자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보관비용이 부담되어 결국 불태워버리면서, 세트를 계속 설치해두고 오랫동안 공연할 수 있는 극장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송승환은 1996년, 자신이 운영하고 있던 극단 ‘환 퍼포먼스’를 주식회사인PMC(Performance, Music, Cinema)로 전환했다.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해야 안정된 자본 확보가 가능하고 유능한 인재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고등학교 동창인 충남방적의 이광호 전무와 손잡고 투자해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예술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극단’과 이윤을 남기기 위한 집단인 ‘주식회사’를 하나의 틀에 묶는 시도를 한 것이다.

 

이를 두고 예술을 돈벌이로 치부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송승환은 훌륭한 공연은 스스로 돈을 버는 공연이라고 생각했다. 돈이 있어야 뛰어난 작품을 만들고, 널리 홍보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현재 (주)PMC프로덕션은 비정기적인 공연이 아닌 안정적 수익모델을 만들어서 운영 중이다. 1년 내내 <난타>만 공연하는 전용극장을 서울 명동, 충정로, 홍대 그리고 제주도에서 전용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태국 방콕에서도 오픈 런으로 공연을 하고 있다.

 

문화에도 산업화가 필요하다

 

<난타>는 작가주의, 엄숙주의를 추구하는 기존의 연극계에 충격을 주었다. 문화예술 종사자들은 주로 대중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싶어 한다. 그들은 관객들이 이해하지 못할 작품을 만드는 것을 당연시 했다. 그러나 송승환은 문화란 고상하고 우아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대중성을 띠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지하고 엄숙한 정통극도 필요하지만, 모든 연극이 무겁고 어려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국내 시장의 변화를 간파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문화도 발전한다. 1995년 이후, 국내 공연 시장 규모는 한해 16퍼센트씩 증가했다. 여기서 문화로 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소비자 입장에서 클래식 음악회나 오페라는 비싸고 어려우며, 영화는 저렴한 가격 덕분에 자주 접하던 것이라 식상한 면이 있다. 한편 연극은 재미가 없어 소비자의 외면을 받는 상태였다. 송승환은 이러한 소비자들의 마음을 간파하고 재미있는 연극을 만들면 승산이 있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특히 문화산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수입이 늘어나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이를 잘 활용하면 엄청난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이 7천만 달러 제작비를 들여 9억 달러 수익을 올렸으며, 오페라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은 9백만 달러 제작비로 100억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렸다.

 

그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문화상품을 만들었다.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비언어극(non-verbal performance)이다. 한국어로 제작한 후 자막을 제공하는 방식으로는 성공하기 힘들다. 영어로 제공되는 공연이 넘쳐나는데 굳이 자막을 읽어가며 공연을 볼 관객이 없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가장 한국적인 음식, 가장 한국적인 장소에 매력을 느낀다는 점에 착안해 가장 한국적인 것, 사물놀이를 생각해 냈다. 서양인들의 경우 19세기부터 공연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공연 수준이 매우 높다. 관객들의 수준도 높기 때문에 웬만큼 작품성을 갖지 않고서야 승산이 없다. 그리하여 보편적이면서도 가장 한국적인 특수성이 담긴 <난타>가 탄생했다.

 

기존 브로드웨이의 유명한 비언어극인  <스텀프>, <탭 덕스>, <블루맨 그룹의 튜브>과의 차별화를 위해 스토리를 구성했다. 네 명의 요리사가 결혼식 피로연에 쓸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주요 에피소드다. 한명의 여자 요리사를 젊은 남자 둘이 눈독 들이는 삼각관계, 사장의 후광을 입고 들어온 인물, 진급을 못하는 요리사와의 갈등 등 구체적인 스토리와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시장은 해외에도 있다

 

송승환은 이렇게 만들어진 난타를 외국인들에게 팔았다. 우선 안방에 앉아서 외국인들에게 <난타> 수출을 시도했고,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당시 한국을 찾아오는 관광객은 약 5~600만 명, 그들 중 1%만 잡아도 1년 내내 전용관을 채울 수 있다고 믿었다. 2000년 7월 1일 전용관에서 첫 공연을 시작한 이래 2007년 국내 최초로 외국인 관람객 100만 명을 돌파, 2010년 한해만 63만 명 기록했다. 2012년 공연에는 관객 중 외국인 비중이 80%에 이르기도 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주로 낮에 관광이나 비즈니스를 하고 밤에는 딱히 즐길만한 것들이 없다. 그들에게 <난타>는 밤 시간에 즐길 수 있는 최고의 공연이었다. 여행사에서도 초저녁부터 호텔로 보내는 대신 일정을 하나 추가할 수 있으니 반겼다.

 

난타가 실제 해외무대에 선보인 것은 1999년 에딘버러 연극제였다. 매년 8월에 에딘버러에서 3주간 열리는 세계 최고의 문화 예술 축제로, <난타>는 양배추와 오이, 당근 채소를 수북이 쌓고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들겨대며 무대를 장악했다.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가 이어졌고 거의 모든 언론사가 <난타>를 기사화 했다. 출품작 중 유일하게 연장공연까지 했으며, 이를 계기로 100만 달러의 수출에 성공했다.

 

그는 2003년에는 꿈의 무대, 브로드웨이에 <난타>를 올렸고, 개런티를 받고 공연물을 수출한 아시아 최초의 작품이 되었다. 브로드웨이의 대표 가족극장인 ‘뉴 빅토리 극장’의 정식 초청으로 한 달 동안 공연을 한 것이다. 보통 우리 공연물이 외국 무대에 오르는 경우, 정부차원에서 우리 문화를 알리는 목적이거나, 해외 교포를 위한 위문공연이 대부분이었다.

 

송승환 대표가 브로드웨이 진출에 성공한 것은 ‘브로드웨이 아시아’라는 에이전시 덕분이기도 하다. ‘브로드웨이 아시아’는 브로드웨이 공연을 아시아에 소개하는 업체였는데, 거꾸로 우리 작품을 브로드웨이에 소개해달라고 요청을 한 것이다. 판매 수수료가 수익의 30%에 달할 정도로 부담스러웠지만, 노하우가 없다면 비용을 투자해서라도 노하우를 사야한다는 그의 철학이 바탕이 된 결정이었다.

 

그 후 송승환의 난타는 전 세계 6개 대륙의 51개국 289개 도시를 순회공연 하였으며, 전 세계 870만명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했다. 매 도시마다 앙코르 공연 요청을 받는 등 현지 언론과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2015년, <난타>는 중국 광저우에 또 하나의 전용관을 오픈할 예정이다. 현재 상하이와 마카오에서는 공연이 한창 진행 중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송승환은 비즈니스 마인드는 타고났다. 한국외대 아랍어과에 입학한 것도 현실적인 이유에서였다. 당시 중동 건설 붐을 고려하여 후에 수요가 많은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학교 2학년 때는 본격적으로 연극을  하기 위해서 학교를 중퇴하고, 탤런트, 영화배우, 쇼MC 등 여러 직업을 동시에 했다. 이것은 하나의 분야에서 일이 없으면 다른 분야에서 일을 찾기 위한 위험 관리 차원이었다고 한다. 연극을 하기 위해서 학교를 나왔지만 연극 하나만을 보면서 달려가지는 않았다. 현실도 고려하며 이상과 현실을 절충하려 노력했다.

 

문화를 산업화하여 ‘돈’을 벌겠다는 송승환의 생각 또한 그의 현실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연이 관객들에게 아무리 좋은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해도 돈을 벌지 못한다면 그 공연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공연이 잘 되고 돈을 많이 벌어야 홍보비도 마련하는 것이고 제작비도 마련하여 한 층 더 수준 높은 공연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 덕분에 그는 성공한 문화기업가가 되었다.

 

한편 송승환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 편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망하는 것을 자주 봐왔기 때문이다. 해외 유학을 결심했을 당시, 아버지가 사업실패로 그동안 모아 두었던 돈을 모두 날리게 되었다. 그 때문에 가족들 생계도 어려워졌다. 주위 모든 사람들이 송승환 회장에게 연예활동에 매진해 돈을 더 벌라고 재촉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이렇게 모았던 돈을 하루아침에 모두 날릴 수 있다면, 차라리 돈을 모을게 아니라 젊었을 때 하나라도 더 보고 느끼자! 그것이 내 인생에 없어지지 않는 재산이 될 것이다.’고 생각했고 유학을 떠났다.

 

사실 PMC는 그동안 <난타> 외에 영화, 음반에도 투자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그는 망했다고 좌절하거나 성공했다고 자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송승환에게 가장 불안한 상태는 주머니 속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다음 작품의 아이디어가 없을 때이다.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진짜 두려운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갉아 먹혀 급기야는 실패할 기회조차 상실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현재 송승환의 다음 목표는 중국이다. 산을 하나 넘으면 새로운 산을 만들고 그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을 만들고 그렇게 끊임없이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아마 중국 시장을 극복하고 나면 인도 시장을 공략할 것이다. 그의 도전은 그렇게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송승환, 창의력 소년 송승환, 세상을 난타하다, 스코프, 2011
송승환, 세계를 난타한 남자 문화CEO 송승환, 북키양, 2003

 

 

 

 

 

곽은경 (자유경제원 시장경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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