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방학이 끝나고 오랜만에 전공 수업을 들었다. 교수님께서는 수업 첫날부터 앞으로 매 수업마다 경제 이슈에 대해 발표할 팀이 필요하다며,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은 알려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시험 문제를 쉽게 낼 계획이니, 학점은 수업 참여도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라고 덧붙이셨다. 나는 당시에 신경 쓸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발표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지 않고 넘겼다.
다음 수업 때 첫 번째 팀의 발표를 보며 지난주에 넘겨버린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학점은 수업 참여도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
이미 많은 학기를 보낸 내게 학점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고, 이번이 그 얼마 남지 않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수님께 발표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이미 발표 일정은 중간고사 이후까지도 잡혀 있었고, 나는 학생들이 기피하는 중간고사 시험기간에나 발표 일정을 잡을 수 있었다. ‘참여 점수’라는 보상이 제공되지 않았다면, 학생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했을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이후 학회 활동에서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학회 활동에는 필수 활동과 추가 활동이 있다. 필수 활동은 학회원 모두가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지만, 추가 활동에는 출석은 의무적으로 하되, 활동 내 주 역할로서의 참여는 자율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번 학기 추가 활동은 토론회였고, 토론 시작에 앞서 주제에 대한 각 입장의 근거를 발표할 사회자 역할이 필요했다. 사회자를 구하기 위해 임원진들은 일주일간 사회자 역할의 장점, 주 역할 참여의 의의 등을 홍보했다. 하지만 끝내 희망자는 나오지 않았고, 결국 임원진들로 사회자를 구성했다.
같은 발표였지만 수업 발표는 지원자가 많아 순서가 밀렸고, 학회 발표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참여할 수 있었다. 어떤 차이가 있었으며, 그 차이로 인한 결과는 무엇일까?
가장 큰 차이는 보상에 있다. 해당 발표에 있어서 교수님과 학회 운영진들은 수요자, 학생과 일반 학회원들은 공급자이다. 시장경제에서 가격을 지표로 하여 수요자와 공급자가 행동을 결정하듯, 발표에서 역시 공급자들은 발표 시장에서의 ‘가격’에 집중했다. 그 결과, 수업의 참여자들은 ‘가산점’이라는 그들이 원하는 보상, 즉 적정한 가격이 제시되자 그에 맞는 공급을 제공했다. 반면, 학회 발표에서는 발표 능력 향상, 주제에 대한 보다 깊은 지식 획득 등 발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본 보상들이 주어졌지만, 해당 가격에 공급할 공급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고, 그 가격에 맞는 거래량이 결정되는 시장경제의 원리는 발표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원하는 양의 발표 공급을 위해서 학회 운영진들은 그에 합당한 가격, 즉 ‘적정한 보상’을 지불해야 했다. 깊게 공부할 가치가 있는 토론 주제 선정, 훈련 세션 제공 등 발표 및 사회자 역할에 대한 적정 가격이 제시됐다면, 필요한 만큼 발표가 공급됐을 것이고, 더 나아가 경쟁이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실제로 적정한 가격이 주어졌을 때 결과는 아름다웠다. 수업의 발표자들은 상품 시장에서 공급자들이 소비자의 선택을 얻기 위해 더 나은 제품을 만들어내듯, 교수님의 선택을 얻기 위해 더 나은 발표 자료를 만들어냈다. 그 과정에서 당연하게도 발표자의 발표 능력과 관련 지식수준은 높아졌으며, 다른 학생들은 매번 질 높은 발표를 접할 수 있었다. 또한 매 수업이 새로운 이슈들로 풍부해지면서 교수님께서도 학생들의 지식 확장, 능력 향상 등 수업을 통해 달성하고자 했던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적정 가격 제시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생한 경쟁으로 수요자, 공급자, 시장 밖의 사람들 모두가 행복한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렇듯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른 자발적 참여와 경쟁의 결과는 아름답다. 시장경제의 원리에 맞춰 수업 참여를 독려하신 우리 교수님처럼 우리도 행사, 공모전 등을 설계할 때, 이를 적용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참여와 질 높은 결과물을 원한다면 그에 맞는 ‘적정한 보상’이 필요함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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