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돈이라면, 돈으로 시간을 사보자

김유빈 / 2023-05-19 / 조회: 307

지난달 관심 있는 가게가 홍대에 새롭게 오픈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미 다녀왔던 사람들의 리뷰를 찾아보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워낙 인기가 많아서 새벽에 오픈런을 해서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입장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나는 결국 그 가게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만큼의 시간을 투자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별개로 입장할 수 있는 다른 한 가지 방법이 더 있긴 했다. 바로 '줄서기 대행 알바’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이 알바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친구가 추천해 준 방법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나의 양심이 찔리는 듯한 기분이 들어 그 방법은 거절했다. 종종 장난삼아 이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냐고 말하지만 아직 나에겐 돈으로 다른 사람의 시간을 산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찜찜하게 생각했던 '줄서기 알바'는 불법이 아니다. 예를 들어 야구장 티켓을 암표로 파는 것은 경범죄에 해당해 벌금을 물게 되고, 매크로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서 티켓을 대량으로 구매해 판다면 업무방해죄가 되지만, 대신해서 줄을 서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로 금품이 오가는 것은 처벌 대상이 아니다. 이렇게 알아보니 새삼 내가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시장경제 원리에서 바라보는 줄서기 대행 알바 사업은 어떨까?


시장경제학적 측면에서 보면 줄서기 대행은 당연한 결과다. 수요와 공급이 과도하게 불균형된 상태에서 가게에 입장하려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그런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추가적인 지불 의사가 없었음에도 평등하게 입장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추가적인 지불을 하고서라도 그 기회를 획득하는 사람들이 싫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없었다면 돈을 더 낼 의사가 없는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왔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연하게도 선착순이 정의로운 방법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선착순 방법을 자세히 살펴보자. 이는 전통적으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며, 비교적 공정하다고 평가 받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입장권이 당일 8시부터 판매된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전에 매표소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다. 해가 뜨기 전부터 심지어는 전날 밤부터 줄을 서는 사람들까지 생긴다. 그래서 줄서기가 정말 귀찮거나, 줄을 서기 위해 시간을 낼 수 없는 사람, 혹은 자기 대신 줄을 서 줄 수 있는 사람을 고용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선착순이란 방법은 차별적이다. 수입이 적은 사람들은 주로 실업자나 한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줄을 설 시간이 많다. 심지어 직장이 있다 해도, 하루 휴가로 발생하는 기회 비용의 손실이 다른 사람들보다 적다. 반대로 중상층도 혜택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입장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설 시간이 없다. 입장권을 사려고 하루 휴가를 내면 하류층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기회비용을 들이게 된다. 그래서 중상층의 경우 돈을 내고 긴 줄을 대신 서 줄 사람을 구하면 된다. 시장 내 자발적인 거래는 상호 이익의 표본이다. 


예전 미국의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좌석을 지정해 놓지 않고 줄을 서서 들어가는 순서로 마음대로 앉는 정책을 시행했는데, 지금은 돈을 더 내면 먼저 들어갈 권리를 부여해 준다. 모든 항공사가 퍼스트클래스 승객들은 먼저 입장하도록 조치한다. 이코노미 승객 중에서도 이코노미+같은 좌석을 구입하면 다른 이코노미 승객보다 먼저 들어갈 권리를 살 수 있다. 경제 전반에 걸쳐 먼저 온 사람보다 나중에 온 사람을, 시간보다는 돈을, 평등보다 특혜를 인정해 주는 쪽으로 흐름이 바뀌어 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줄서기 알바로 인해 줄서기 경쟁이 더 치열해져 이러한 방법이 소비자들의 구매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양면성은 통화 경제의 본질로 우리가 그러한 시스템이 제공하는 혜택을 누리고자 한다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시장은 자유와 경쟁으로 답을 찾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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