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바지락 칼국수

김가은 / 2023-05-19 / 조회: 428

우리 동네엔 유명한 바지락 칼국수 맛집이 있다. 방송에도 출연하고 지역명을 검색하면 '@@@ 바지락 칼국수’ 라고 추천 검색어가 첫 번째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맛집이다. 20년이 넘은 맛집이라 필자는 과장을 조금 보태어 유치가 자라 저작 운동이 가능해진 순간부터 이 집 칼국수를 먹고 자랐다. 그리고 그 순간, 다른 집 칼국수는 먹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완벽한 식감의 탱탱 쫄깃한 면발과 엄청난 양의 바지락으로 인한 시원한 국물, 삼시세끼 이것만 가지고도 밥 세 그릇씩 먹겠다 싶은 김치까지. 정말 완벽한 맛집이었다. 맛집답게 메뉴는 바지락 칼국수 단 하나 뿐이었고 따로 주문할 필요도 없이 자리에 앉으며 “두 명이요, 세 명이요.” 인원수를 외치면 항상 1인분을 더 주신 것이 아닌가 의심되는 양의 칼국수를 친근한 주방 이모가 갖다주셨다. 가성비도 좋아 물가가 폭풍같이 오르는 시대에도 언제든 가격 걱정 없이 갈 수 있는 가게였다. 


그런데, 최근 이 가게에 큰 변화가 생겼다. 가게가 임시 휴업을 하고 붙여 놓은 공고문에는 인심 좋으시던 사장님이 매우 편찮으시게 되었고, 어쩌면 장사를 못 하실 수도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누군가 동네 커뮤니티에 공고문을 찍어 올린 글에는 댓글이 수십개가 달렸다. 매일 점심시간이면 줄이 늘어지게 서있고, 20년 넘게 동네 맛집 1등을 유지해온 가게라 나를 포함한 동네 주민들이 매우 걱정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 걱정에는 사장님의 안위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정말 죄송하게도 그것보다 '앞으로 그 칼국수를 평생 못 먹게 되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렇게 인생 가치관이 도덕성이었던 필자조차 순식간에 가치관을 져버리는 생각을 할 정도로 맛있는 맛집이었기에 애타게 다음 소식이 올라오기만을 기다렸다. 


반가운 소식이 올라왔다. 한두달 휴업 후에 리모델링을 하고 다시 개업한다는 소식이었다. 진심으로 안도했고 재개업만을 기다렸다. 한두달이 지났을 무렵 가게의 영업을 알리는 글이 동네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친근했던 좌식형 테이블이 편안한 의자 테이블로 바뀌었고, 칼국수의 가격이 인상되었지만 가게 자체는 훨씬 깔끔해진 모습이었다. 그 가게의 인기를 증명하듯 또 다시 수십개의 댓글이 달렸다. 그런데 댓글의 반응은 예상 외였다. “바지락 양이 현저히 줄었고 국물이 시원하지 않다, 김치도 굉장히 맛없어졌다.” 등 타 경쟁 식당이 댓글 알바를 고용했나 의심될 정도로 악평 뿐이었다. 잠시 쉬었을 뿐인데 왜 맛이 바뀌지? 사장님이 편찮으셔서 미각을 잃으셨나? 하는 의문이 들 때쯤 한 댓글이 보였다. 사장님께서는 더 이상 장사를 못하셔서 조카분이 가게를 인수하셨고, 원래 사장님은 가끔 들리신다는 내용이었다. 그래도 조카분이 하시는 거라면 사장님이 레시피를 다 전달하셨을 거고, 직접 가서 확인해보자는 생각에 가게를 방문했다. 실망스럽게도 내 생각 또한 댓글 반응과 일치했다. 항상 계산하며 정말 저렴하게 잘 먹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처음으로 칼국수가 비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이후로 가게 앞에서 사람들이 줄 서는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나 또한 그랬다.


시장경제는 '경제 주체의 모든 활동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며, 자유경쟁의 원칙에 의해 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되는 경제’를 뜻한다. 이 정의에 빗대어 보면 조카 사장님은 당연한 활동을 하셨다. 자유롭게 바지락의 양을 줄이고, 김치 레시피에 변화를 주고, 가격을 인상했다. 생산자는 이윤극대화를 추구한다는 시장경제 원리를 생각해보면, 원가를 줄이고 수익을 늘리고 싶은 생산자로서 당연한 행동이다. 하지만 사장님이 한 가지 간과하신 점이 있다. 시장경제에서 소비자는 효용극대화를 추구한다. 우리 동네는 이미 자유시장경쟁의 원칙에 의해 기존 칼국수집의 영향으로 타 칼국수집들의 수준 또한 높아져 있었다. 타 가게들도 평균적으로 맛과 가성비가 괜찮은 편이었다. 기존 칼국수집이 너무 압도적이었을 뿐. 그러나 조카 사장님이 변화를 주신 현재는 미미한 차이일지라도 동네에서 가장 바지락 양이 적고, 맛이 없고, 비싼 칼국수집이 되었다. 모든 면에서 경쟁력이 사라졌고 굳이 갈 이유가 없었다. 


다신 안 가겠단 마음을 먹었지만 그 이후로도 미련을 놓지 못하고 주기적으로 가게 리뷰를 보았고 지속적으로 올라오는 실망스러운 이야기들 중 매우 공감되는 글이 보였다. '예전 그 맛을 몰랐던 상태에서 지금 가게를 방문했다면 계속 왔을 것 같다.’ 는 리뷰였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나의 실망은 예전 맛에 대한 기대치가 워낙 높았기 때문이지 기존 가게를 모른 채로 갔었더라면 바뀐 맛도 “먹을 만 하네.” 하며 가끔 방문할 정도였다. 그제서야 생각해보니 다른 가게들과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까지 실망했던 것인가? 


시장 경제는 모든 경제 주체들이 평등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개개인마다 타고난 능력, 욕심, 가치관 등이 모두 다르다. 예전 사장님은 손맛이 좋으셨고, 재료를 아끼지 않으시며 가격을 올리지 않는 모습이 인심 좋게 느껴졌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어찌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선택인 조카 사장님의 결정이 예전 사장님과 비교되어 '욕심’으로 느껴지는 것이 소비자로서 아주 큰 불편함인 것이었다. 그 불편함이 비슷한 퀄리티를 가진 가게와의 경쟁에서도 패배하게 만들 만큼 아주 큰 요소였던 것이다. 조카 사장님의 '은인’이 되려 했던 기존 사장님이 오히려 '원수’가 된 격이었다. 기존 사장님은 조카가 가게를 물려받아 잘 되기를 바라셨을 테고, 조카 사장님 또한 그러셨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상황은 시장경제 원리에 의해 도태된 것으로 보여진다. 사실 그 가게는 사장님의 레시피만 그대로 유지한다면 가격을 인상해도 여전히 방문할 의향이 충분했다. 오히려 깨끗해진 가게와 편안한 입식 테이블로 인해 더 기분 좋은 식사를 했을 것이다. 필자는 아직도 조카 사장님이 시장 경제 원리를 깨닫으시는 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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