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야구 시청의 시대는 끝났다

박지현 / 2024-05-10 / 조회: 912

“학생, 혹시 이거 어디서 보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


지난 3월, 프로야구가 개막한 후 버스정류장에서 핸드폰으로 야구를 보고 있던 나에게 한 어르신이 말을 거셨다. 어르신은 지금까지 네이버와 같은 포털사이트를 이용하여 야구를 시청했었는데, 무료 중계가 없어 야구 시청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셨다. 올해부터 한국 프로야구는 포털사이트를 통해 시청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부터 불과 작년 전까지 10개 구단의 야구 경기는 모두 TV를 틀거나 핸드폰 등 모바일 기기를 이용하여 무료로 시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부터 한국 프로야구를 시청하기 위해서는 OTT 플랫폼인 “티빙”의 구독권을 구매해야 한다. 한국야구위원회(이하 KBO)는 CJ ENM과 올해부터 3년간 KBO리그 유·무선 중계 방송권 계약을 3년 1,350억이라는 금액에 체결했다. 기존 네이버를 비롯한 포털사이트와 통신사가 5년 1,110억에 계약을 체결했던 점을 떠올려 보면 약 2배가량 증가한 것이다. 이로써 앞으로 3년간 한국 프로야구를 시청하기 위해서는 CJ ENM의 OTT 서비스인 티빙을 통해야 하며, 하이라이트 및 VOD 스트리밍 권리 또한 CJ ENM에 있다.


국내 프로스포츠 중계권이 유료로 판매되는 것은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7년 전인 2017년, 일본의 축구 리그인 J리그는 다즌(DAZN)과 10년간 2,100엔(한화 약 2조 1천억)이라는 금액에 계약을 맺은 바 있다. 이러한 계약 덕택에 J리그는 팀마다 기존 대비 2배에 가까운 돈인 약 33억 원을 배분금으로 받을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J리그 우승상금 역시 약 30억 원으로 급증했다. 배분금 등으로 인해 돈이 많아진 구단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해외 축구 인기스타를 영입하기 시작했고, 다양한 마케팅을 진행함으로써 J리그의 인기를 끌어올리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다즌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함으로써 J리그 흐름이 달라졌다.


유료 중계권만으로 계약금 회수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과 다르게 구독자 수가 부진해지자, 다즌은 지상파 송출을 통한 부가 수익을 받고자 했고 구독료 또한 올리기 시작했다. 이에 높은 구독료 값에 부담을 느낀 시청자가 하나둘 이탈하면서 J리그의 총관객 수가 줄어드는 악영향까지 미치고 말았다.


이렇듯 프로스포츠가 무료로 중계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 프로야구가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스포츠였으며 소위 “국민 스포츠”로 통했던 터라 보편적 시청권에 대한 침해가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올림픽·아시안게임·월드컵과 같은 우리나라 대표팀이 출전하는 경기는 보편적 시청권 대상에 포함되지만 안타깝게도 프로스포츠는 포함되지 않는다. 결국 프로스포츠 역시 시장 경제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프로스포츠의 인기가 올라갈수록 기업들은 프로스포츠를 통해 수입을 올리고자 할 것이다. 시장 경제의 핵심 가치인 “자유경쟁”을 토대로 수요자가 많은 만큼 공급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특히 프로스포츠의 고정적인 수입이 방송중계권, 입장료, 광고 수익 정도기 때문에 방송중계권이 가지는 영향은 가히 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첫해 방송중계권의 계약액은 약 3억 원 수준이었으나 프로야구의 황금기였던 1993년에는 30억 원이 되었고, 지속해서 가격이 상승하여 2006년에는 115억 원, 2011년에는 230억 원이 되었다. 방송중계권은 프로야구 구단의 고정적이면서 잠재력 높은 수익원으로써 이번 CJ ENM의 사태를 고려한다면 향후에도 프로야구를 유료로 시청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유료 중계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긍정적인 부분으로는 SNS에서 경기 영상 사용이 가능해졌다. 지금까지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KBO의 영상을 활용하여 영상물을 제작하고 올릴 수 없었다. 하지만 올해부터 중계권을 가진 CJ ENM이 40초 미만의 숏폼 콘텐츠 제작을 허용하면서, 유튜브 쇼츠와 인스타그램 릴스를 비롯한 다양한 하이라이트 영상의 제작이 가능해졌으며 구단 역시 경기 영상을 재가공하여 자체 유튜브에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유료 중계권 계약으로 구독료를 내는 대신에 더 많은 양질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상 공급자와 수요자가 모두 WIN-WIN하는 포지티브섬 게임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야구”라는 스포츠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랑받는 종목이다. 물을 사 먹어야 하는 게 말이 안 됐던 세상처럼 이젠 스포츠도 돈을 주고 봐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유료 서비스 가입을 포기하는 팬들로 인해 야구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하고 반면 구단의 적자를 감수한 채 운영되고 있던 프로야구 산업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정답은 없다. 하지만 스포츠가 돈이 되는 사회가 된 만큼 그만큼 다양한 스포츠 콘텐츠가 늘어날 것이고 OTT 업계 역시 서로 경쟁하면서 발전할 것임이 분명하다. 아직 CJ ENM의 티빙을 통해 프로야구가 중계되기 시작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다. 앞으로 시장 경제를 업은 한국의 프로야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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