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에 자율성을 부여하자

김석원 / 2024-11-20 / 조회: 16

큰 조카가 영재고에 합격하였다. 기특한 일이다. 추석연휴에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더 한층 자랑스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더 한층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중학교 1학년 2학기부터 학교 시험을 치니, 학부모나 학생이나 그 전까지 정확한 성적 수준을 알기가 어렵다.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고, 학업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위한 방편인데, 문제는 생각했던 수준과 성적의 차이가 크면 한꺼번에 큰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그제야 방법을 찾으면 늦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불안한 마음이 생기고, 이 불안한 마음을 메꾸어 주는 것이 바로 사교육이다. 학원에서 비교적 정확하게 아이들의 수준을 파악해주고, 수준별 경쟁을 시켜주다 보니, 공교육에 대한 믿음은 줄어들고, 사교육을 일찍 시작하게 만들어 버린다. 중 1학년 이전의 깜깜이 공교육, 이것이 첫 번째 문제이다. 


두 번째 문제는 근거리, 추첨에 의한 평준화된 학교 배정이다. 이것이 문제인 이유는 우리나라는 소득수준에 따라 사는 곳이 대체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과 지방, 도심과 외곽, 신축 아파트 단지와 구축 아파트 단지 주거에 드는 비용이 너무 크게 차이나기 때문에 대체로 자산이나 수입에 맞춰 사는 곳을 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잘 사는 동네, 못 사는 동네가 나뉘기 십상이고, 학원도 동네에 따라 교육의 비용과 질이 달라진다. 이러다보니 학원을 가기 위해 이사를 하는 이상한 상황이 생기곤 한다. 학교 교육의 질은 정체되고 평준화 되어 있는데, 학원 교육의 질은 이미 양극화 되어 있다. 잘사는 동네 학원은 점점 더 고비용, 고품격의 교육을 제공하고, 못사는 동네의 학원은 점점 더 저비용, 저질의 교육을 제공한다. 


이러다보니 학교는 상위권 학생이 많은 학교와 하위권 학생이 많은 학교로 양분화 된다. 하지만 공교육은 모든 학교에서 공평하고 똑같이 중간 수준으로 진행이 된다. 학생의 수준과 전혀 다른 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큰 조카의 경우 중학교 첫 시험의 성적이 너무 좋아서, 소위 상급지로 이사를 갔다. 전학 간 학교에서는 보통 수준의 성적 밖에 안 나왔다. 내 학창시절에는 한 반에 학생 수가 60명이 넘었다. 같은 학년 동급생은 500명이 넘었었다. 모수가 많으니 아는 문제 한 두 개만 틀려도 전교 등수가 몇 등씩 내려가곤 했다. 조카처럼 전교 1등인데 마땅한 경쟁자가 없어, 시험을 못 쳐도 계속 1등이라 불안한 마음에 전학을 가는 경우는 없었을 것이다. 모수가 클수록 데이터는 신뢰성을 가지고, 학생 수가 줄어든 만큼 등수는 유효성이 적어진다. 갈수록 자신의 성적에 대한 신뢰도는 낮아지고, 불안감만 커지게 된다. 계속 학교의 학생 수가 줄어드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공급이 꾸준히 줄어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큰 조카가 전학 후 성적을 다시 상위권으로 끌어올린 방법은 결국 학원 사교육이었다. 정확한 테스트를 통한 객관적인 수준 파악, 그리고 레벨별 반 구성 및 경쟁을 통한 월반 시스템, 학원 가맹점끼리의 비교를 통한 충분한 모수와 신뢰성이 있는 데이터, 남은 중학교 기간 동안 큰 조카가 불안감 없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었던 이유다. 뒤늦게 상급지의 학원을 다닌 탓에 숙제도 많았고, 공부도 더 열심히 해야 했지만 재미있었다고 했다.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었으니까,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영재고에 입학해서 더 공부 잘하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했다. 그러한 경쟁 자체가 기대가 된다고 했다. 만약 이런 아이를 공교육에만 맡겼더라면, 기존의 저비용, 낮은 질의 학원에 만족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평준화 되어 있는 현재의 공교육이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유와 평등은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필수불가결한 것들이다. 극단적인 평등, 자유를 억압하는 평등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상급지 학원들이 마냥 잘했다는 것도 아니다. 공교육의 허점을 이용하여 불안감 마케팅으로 한 몫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보다 나은 교육 시스템이 구축되려면, 공교육이 사교육과 경쟁할 수 있어야만 한다. 평등을 위해 묶어둔 공교육은 절대 사교육을 이길 수 없다. 공교육의 자율화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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