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길라잡이] 큰 정부는 최선인가?

최승노 / 2018-11-05 / 조회: 5,932

"영국을 닮자"며 나선 이집트의 산업화…시장에 맡기지 않아 부정부패로 실패


1805년, 이집트 오토만 제국의 장군이던 무함마드 알리는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았다. ‘이집트의 아버지’로 불리는 무함마드 알리는 이집트를 오스만튀르크 제국에서 독립된 근대 국가로 발전시키고 싶었다. 그리하여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인 이집트의 산업화를 시도했다.

대부분 토지를 몰수하여, 주멜 면화의 재배지로 활용했다. 이집트산 주멜 면화는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며 비싼 가격에 팔렸다. 무함마드 알리는 이집트산 주멜 면화를 외국에 수출하여 막대한 이익을 거머쥐었다. 또한, 농민에게서 일반 면화와 곡물 등을 싼 가격에 강제 매수하여 비싼 가격으로 수출했다.

 

이렇게 해서 벌어들인 돈은 산업화 자금으로 사용되었다. 무함마드 알리는 현대식 면직 공장을 설립하고, 영국산 동력 직조기를 수입했다. 풍부한 면화와 현대식 설비를 갖추어 면직 산업을 크게 발전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대참패였다. 영국 못지않게 최신식 설비를 갖춘들 제대로 운용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함마드 알리는 거금을 들여 유럽에서 공장 경영자를 데려왔지만, 유럽 경영자는 경영 자문을 해주는 역할 정도에 그쳤고 실제 공장 경영은 이집트인과 터키인이 맡았다. 최신식 면직 공장을 운영해 본 경험도 노하우도 없는 초짜들이 덜컥 공장 경영을 맡았으니 제대로 돌아갈 리 없었다.

 

껍데기만 영국 산업화 흉내

 

또한,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부여로서 인센티브 제도의 부재도 한몫했다. 공장의 고위 경영진은 몸 바쳐 열심히 일하기보다 뇌물 수수, 횡령 등 부정부패를 일삼으며 회사 재산을 자신의 뒷주머니에 챙기기 바빴고, 실질적으로 면직물을 생산하는 일반 직공에게는 월급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당연히 공장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결국 강제 징집하여 노동력을 조달하기에 이르렀다. 원하지도 않는데 억지로 오게 된 직공들은 일하는 흉내만 냈고, 경영진은 그러든 말든 뒷돈 챙기느라 바빠 방관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면직 공장의 생산성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으리만치 처참한 수준이었다. 완제품은 수출이 불가능할 정도로 형편없었고, 비싼 기계들은 잇따라 고장이 났다. 기계 유지보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기계에 모래가 들어간 탓이었다.


이처럼 ‘위로부터 강요’된 이집트의 산업화는 끝내 막대한 자금만 낭비한 채 철저한 실패로 끝나버렸다. 겉껍데기만 영국과 똑같을 뿐이지, 영국의 산업혁명처럼 시장의 ‘자발적인 힘’이 아니라 독재자 강요에 따른 산업화의 당연한 귀결이었다.

‘말을 물가까지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먹게 할 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만약 무함마드 알리가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산업화를 주도했더라면 어땠을까? 일하고 싶어 하는 이집트 사람들을 면직 공장의 직공으로 채용하고, 열심히 일한 만큼 대가를 지불할 뿐만 아니라 인센티브로 근로의욕을 북돋웠더라면? 어쩌면 눈부신 산업화를 이룩하고, 이집트를 세계 선진국의 반열에 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큰 정부·작은 시장은 반드시 실패

 

역사적으로 ‘큰 정부, 작은 시장’의 형태가 성공한 경우는 없었다. 시장의 자율성이 아니라 정부 주도로 경제성장을 꾀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집트의 강요된 산업화의 실패가 그 좋은 예다. 실제로 오늘날의 선진국들은 큰 시장, 작은 정부 형태를 기반으로 빠른 성장을 이뤄냈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를 통한 빠른 해결을 촉구하는 이들을 볼 수 있다. 경기 불황, 환경오염, 전염병 창궐, 자연재해, 빈부 격차 등 대다수 위기를 정부가 주도적으로 타개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의 일은 궁극적으로 사람이 하는 것이라서 정부가 좋은 의도를 앞세운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의욕을 앞세워 자신이 모든 일을 해결하겠다고 나서기보다 민간이 자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현명함을 가져야 할 것이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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