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인구로는 설명 못하는 미국이 강한 이유
현재 세계 최고의 자본주의 국가는 명실상부 미국이다. 미국이 제1, 2차 세계대전 이후 제일의 경제강국으로 부상하며 지금까지 세계 경제의 맹주로 군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세계 최대의 다인종 국가답게 많은 인구, 세계 3위를 자랑하는 국토 면적. 물론 이 또한 하나의 요인이 될 수는 있겠으나 근본적인 이유는 아닐 것이다. 단순히 그 때문이라면 세계 1위의 국토 면적을 가진 러시아나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이 미국보다 경제 발전이 뒤떨어진 것을 설명 할 수 없다.
러시아 중국 등 다른 나라가 가지지 못한 것, 설령 따라 하려고 흉내 내도 온전하게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지 못한 것, 그것은 미국을 세계 경제의 중추로 끌어올린 원동력, 바로 자본주의 정신이다.
미국의 자본주의 정신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사전에는 자본주의가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가 이윤 획득을 위해 생산활동을 하도록 보장하는 사회경제체제’라고 정의돼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자본주의를 형태적 측면에서만 바라본 반쪽짜리 정의다.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자본주의의 형태뿐만 아니라 본질, 즉 자본주의의 정신적인 측면도 함께 성찰해야 마땅하다. 막스 베버는 《청교도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청교도 윤리’가 곧 미국의 자본주의 정신이라고 썼다. 청교도란 16세기 후반, 영국 국교회에 반항하여 생긴 개신교의 한 종파로, 1620년 영국 국교회의 박해를 피해 102명의 청교도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북아메리카로 이주하면서 미국 개척 역사의 서장을 썼다.
청교도의 특징은 칼뱅이즘의 철저한 금욕주의적 직업윤리를 물려받은 것이다. 본디 칼뱅이즘은 사치를 배격하되 근면, 검소, 성실, 절제, 기업정신 등을 강조하며 부의 창출과 축적을 종교적·도덕적으로 합리화해 자본주의 성립과 시민계급 부상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런 칼뱅이즘에 기초한 청교도 윤리는 태생적으로 자본주의와 시민정신을 내포한다. 같은 맥락에서 에드워드 커니의 저서 《The American Way》의 내용도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은 하버드대에서 외국인에게 미국인은 어떤 사람인가를 가르치는 데 사용하는 것으로, 총 다섯 가지의 미국식 자본주의 정신을 꼽는다. 첫째는 끊임없는 자기향상이고 둘째는 물질적 성공, 셋째는 근면과 자제, 넷째는 박애주의, 다섯째는 회개와 거듭남이다.
어째 좀 이상하지 않은가. 끊임없는 자기향상과 물질적 성공, 근면과 자제야 당연하지만 지극히 종교적인 박애주의와 회개, 거듭남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자본주의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듯싶다. 커니가 실수라도 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그 이유는 미국 개척 역사의 주인공인 청교도의 시작이 바로 고대 로마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기독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 정신과 청교도 특유의 소명의식 및 천직사상, 그리고 신대륙 개척정신이 함께 더해진 최종 결정체야말로 오늘날 미국 경제와 미국인 생활태도의 근간을 이루는 미국식 자본주의 정신이다.
자본주의를 실현하는 시장
앞서 우리는 미국식 자본주의 정신을 살펴봤다. 미국식 자본주의 정신이 개인의 삶을 성장시키는 에너지로 작용했다면, 실질적 경제 성장은 오로지 시장을 통해 이뤄진다. 즉 미국식 자본주의 정신이 시장을 통해 비로소 온전히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 역사에서도 시장을 통해 경제 규모가 확대되고 자본주의가 개화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17세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미술품 거래시장 태동에는 천재 화가 렘브란트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렘브란트는 부유한 귀족들의 후원에 의지하던 기존 미술계의 판도를 광범위한 미술품 구매자들이 뒷받침하는 자유경쟁 시장으로 바꾸고자 무던히 노력했다. 그 결과 렘브란트는 새로운 시민계급의 초상화 유형을 창조하며 최고의 초상화가로서 부와 명예를 획득했다. 더불어 그간 많은 화가가 귀족의 후원에 의존해야 했던 관습적 제약을 극복하며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미술사의 새 지평을 열었다.
음악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견된다. 18세기 독일 작곡가 헨델과 텔레만은 귀족 후원자의 피고용인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며 공개 시장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의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는 1781년 그의 부친에게 보내는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믿어주세요. 제 유일한 목적은 가능한 한 돈을 많이 버는 것입니다. 건강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돈 아닙니까.” 모차르트는 후원자에게 작품을 양도했던 이전 작곡가와 달리 자기 곡의 소유권을 확실히 하며 저작권료를 챙기는 등 시장을 통해 창조적 자유와 독립적인 진취를 손에 넣었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개인의 욕구를 자연스럽게 인정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발전시켜 자아를 실현함과 동시에 세속적 성공을 이루고픈 사적 욕망을 경제적 에너지로 환원한다. 이때 개인의 끊임없는 자기향상 욕구는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도 포함하며, 남보다 더 많은 자기향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 사람에게 경제적 보상이 돌아갈 수 있게 함으로써 더욱더 큰 성장동력을 이끌어낸다. 이것이 곧 자본주의의 기본원리이며, 자본주의가 온전히 기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시장의 메커니즘이다. 우리가 얼핏 경제논리와 전혀 무관하리라 여기는 예술세계 역시 실은 시장 메커니즘에 따라 기능하지 않았는가.
본래 경제행위는 거래에 기반해 일어난다. 상품의 가치를 사고팔며 이익을 얻는 데 거래의 목적이 있고,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할 때 거래가 활성화된다. 이는 우리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음악과 미술, 문학 등 예술 분야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거래가 일어나고 거래를 통해 이익을 추구하며 자본주의의 정신을 실현하는 장, 그곳이 바로 시장이다.
△ 기억해주세요
현재 세계 최고의 자본주의 국가는 명실상부 미국이다. 기독교 정신과 청교도 특유의 소명의식 및 천직사상, 그리고 신대륙의 개척정신이 함께 더해진 최종 결정체야말로 오늘날 미국 경제와 미국인 생활태도의 근간을 이루는 미국식 자본주의 정신이다. 미국식 자본주의 정신은 시장을 통해 비로소 온전히 꽃피울 수 있었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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