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미국에서는 <기생충>이 청소년관람불가인데 한국에서는 15세 관람가?

이문원 / 2020-07-16 / 조회: 14,011

흔히 벌어지는 논란이다. 시작은 한국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내린 영화 상영등급이 대중 소비자들 의견과 맞지 않을 때 벌어진다. 나아가 같은 영화를 놓고 미국 등 해외의 상영등급과 한국의 그것이 서로 다를 때, 특히 한국 쪽이 해외보다 후하게(?) 나올 때 일어나는 논란. 이 같은 논란은 최근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및 아카데미상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한 <기생충>에서도 또 다시 벌어졌다. 다음은 이와 같은 상황을 담은 머니투데이 2019년 6월 4일자 기사 ‘“자녀와 보지 마라”…영화 ‘기생충’ 보고 불편한 이유 3’ 일부다.


“인터넷에서 ‘기생충’에 대한 영화평을 찾아보면 “초·중학생 자녀와 함께 보지 마라” “부모님이랑 같이 봤으면 민망할 뻔” “왜 19세 아니지?” 등 ‘기생충’이 15세 관람가인 것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누리꾼이 적지 않다. 관객들이 ‘기생충’의 상영 등급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 이유는 선정성, 폭력성, 주제 및 공포 등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극중에서 부부인 박 사장과 연교(조여정)의 ‘애정 신’이 가장 논란이다. ‘기생충’의 유일한 애정 신이지만 표현이 자세하고 강렬해 선정적으로 느껴진다는 반응이 많다. (중략) 대학생 최모씨(21)는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아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온 아빠가 야한 장면이 나오자 아들에게 스마트폰을 줬다. 영화 관람에 방해가 됐다”며 “15세 이하 어린이를 데리고 온 것도 문제지만 대학생인 나도 영화가 민망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영화가 다소 잔인하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영화 후반부에서 신체적 가격이 빈번하고 육체적 폭력 및 무기류를 이용한 다툼 과정이 잔혹하게 표현됐다는 것이다. 상영 등급에서의 폭력성은 ‘고문, 혈투로 인한 신체 손괴 및 억압, 고통 표현, 굴욕, 성폭력 등의 표현 정도’를 의미한다. ‘기생충’은 영화 중 잔인한 장면에서 눈을 가리거나 불편함을 표하는 관객들이 적지 않았다.


세 번째로 청소년의 일반적인 지식과 경험으로는 영화의 주제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상당수 관객들이 ‘보고 나면 기분이 나쁘다’고 표현할 만큼 다소 어두운 분위기인데다, 빈부격차 등 주제의식이 노골적인 방식으로 표현돼서다. 학부모 김모씨(40)는 “영화를 보고 나서 주변 엄마들에게 자녀에게 보여주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며 “잔인하거나 야한 장면보다는 내용적인 면에서 충격이 컸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영화관에 초등학생도 많던데 관람이 부적절하다고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R등급과 한국의 청소년관람불가는 유사한 개념이 아니다


‘영화 상영등급 논란’은 거의 분기단위로 일어나는 ‘고정 논란’에 가깝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선, 이른바 ‘한국영화 밀어주기’ 차원에서 고의로 등급을 낮춰 흥행에 유리하도록 특혜를 준단 의혹, 그 외에 이런저런 납득하기 어려운 등급이 나오면 소위 ‘커넥션’을 의심하는 경우들도 많다. 반()자본주의 정서가 짙은 <기생충>이나 5.18 소재 <화려한 휴가> 등에 대해선 정치적 선동목적으로 등급을 과하게 낮췄단 비난까지 인 바 있다.


그런데 <기생충> 등급 논란은 다른 영화들에 비해 상당히 오래 지속됐다. 영화 자체가 보기 드물게 초장기 상영에 들어간 탓도 크거니와, 해외 각국으로 수출돼 상영되면서 해외영화계 입장은 어떨지 궁금해 하는 분위기가 일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다음해인 2020년 2월 영상물등급위원회 측에서 <가생충> 나라별 상영등급 정보를 직접 공개하기에 이른다. 다른 나라들도 15세 관람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등급을 부여했단 점을 알리기 위해서다. 한 마디로, ‘우리가 특별히 잘못한 건 없다’는 점을 알리려는 목적이다.


영상물등급위원회 측 정보를 보면,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선 15세 관람가로 한국과 같았고, 독일은 16세 관람가, 그리고 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주는 14세, 뉴질랜드에선 심지어 13세 관람가로 한국보다도 등급이 후했다.


문제는 세계영화산업 메카와도 같은 미국이다. <기생충>에 자국 최고권위 영화상인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수여한 미국에선 R등급을 줬다. R등급은 제한(Restricted)의 약자로, 한국의 청소년관람불가와 맞먹는 엄격한 등급이란 인식이다. 그 탓에 <기생충> 등급 판정을 변호하기 위해 내놓은 나라별 등급표는 오히려 새로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에 이른다. 오히려 한국보다 문화적으로 개방적인 미국서조차 청소년관람불가급 등급을 받았는데, 한국의 15세는 말이 안 되지 않느냐는 것.


그런데 이 문제는 좀 더 상황을 면밀히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먼저, 미국의 R등급은 한국의 청소년관람불가 개념과는 많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미국의 R등급은 어디까지나 ‘17세 미만 미성년자는 부모 또는 성인을 동반했을 시에만 관람 가능’이란 표시다. 18세가 안 되면 무조건 볼 수 없는 한국의 청소년관람불가와는 개념 자체가 다르다.


그러니 미국의 R등급은 엄밀히 한국의 15세 관람가나 큰 차이가 없단 입장도 충분히 가능하다. 미성년자가 어떤 식으로든 부모 또는 그에 준하는 성인보호자를 설득(?)해 동반하면 얼마든지 해당 영화를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영상물등급위원회 측 판단은 글로벌 스탠더드 개념에서 그리 파격적인 판정도 아니었단 얘기.


그런데 이 같은 해프닝에서 정작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한국 영상물등급위원회가 과연 어떤 판단을 하는가의 차원이 아니다. 애초에 왜 저 등급 판정을 놓고 매번 갑론을박이 빚어질 수밖에 없느냐는 점이다.


미국영화등급제는 그 ‘선택의 자유’를 미성년 자녀 부모에 부여한다


위 미국 R등급 설명처럼, 미국은 결국 소비자들을 ‘강제’하지 않는 시스템이란 점이 중요하다. 일단 미국에서 영화등급을 결정하는 기구는 MPAA(Motion Picture Association of America)다. 미국 영화제작자와 배급업자 등 영화산업 종사자들로 구성된 민간 기구다.


1920년대에 미국영화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저급상품들, 예컨대 외설영화들도 함께 늘어나자 미국정부가 직접 나서 대대적 영화 검열 작업에 들어가게 됐다. 그러자 영화가 일으키는 사회적 문제는 ‘영화산업 내에서 알아서’ 해결할 테니 공적개념은 개입하지 말란 취지로 MPAA가 설립됐다. 그렇게 산업 내에서 자체검열을 시행하다, 1968년부턴 등급심사위원회를 구성해 검열 대신 등급을 매겨 가이드라인만 제시해주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미국의 영화등급은 X(등급 외), NC-17(17세 이하 관람불가), R(17세 이하 제한관람가), PG-13(13세 이하 부모 및 보호자 권고), PG(부모 및 보호자 권고), G(전체관람가)로 나뉜다. 여기서 실제적 등급기준 중 최고등급인 NC-17은 그 어떤 사회문화적 기준으로도 한계가 뚜렷한 포르노급 영화를 가리킨다. X등급도 거의 같은 기준으로 볼 수 있지만, 엄밀히 ‘등급 외’ 영화를 가리킨다. 광고도 할 수 없고, 일반 멀티플렉스에선 상영조차 불가하다.


R은 설명했듯, 부모 또는 그에 준하는 성인을 동반했을 시 관람할 수 있고, PG-13은 그런 동반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라, 그야말로 생활 가이드라인에 가깝다. 해당콘텐츠는 이런저런 청소년 유해요소들을 담고 있으니 부모 또는 그에 준하는 성인이 ‘알고는 있으라’는 정도. 그렇게 미리 콘텐츠 성격을 알아두고 아이들에게 영화 보러가는 행위 자체를 허락할지 말지 가이드 차원에서 선택하란 표시다. PG도 거의 같은 의미고, G까지 가서야 ‘누가 와서 봐도 무방한’ 콘텐츠를 가리킨다. 거의 대부분 애니메이션영화들이 해당된다.


그러니 이 같은 가이드라인조차 실제 소비자들에 강제하는 게 아니라, 최종판단은 미성년 자녀 양육에 실질적 책임이 있는 부모 및 그에 준하는 성인(부모가 없는 미성년자들도 있으니)에 맡긴단 개념이다. 등급기구 성격도 민간이고, 그 등급은 그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각 극장주들에 한해 적용되며, 최종적 판단도 민간 자율에 가깝다.


국가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특수법인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기준을 정해 이를 각 상영관으로 내려 보내고, 그 기준을 실제 소비자 부모 등이 어떻게 생각하건 일괄적으로 강제해버리는 한국과는 풍토 자체가 다르다. 미국이 개인주의, 자유주의에 입각해 민간자율을 최대한 중시하는 반면, 한국은 공적개념의 일괄규제 노선이 명확하다.


여기서 엿볼 수 있는 사회철학은 간명하다. 미국은 특정영화를 보건 말건 그에 따른 권한 및 책임을 국가 등 공적개념에 지우지 않겠단 태도다. 개인 및 가정 범주의 1차 집단 책임을 사회에, 심지어 국가에 떠맡기는 흐름은 합당하지도 건강하지도 않다는 입장이다. 결국 사회는 하나의 동일한 가치관이 일률적으로 강제되는 전체주의적 환경이 돼선 안 되며, 각자 가치관이 서로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조율되는 형태여야 한다는 의지를 내포한다. 선진사회의 전반적 개인주의 의식 진화 흐름과 일치한다.


물론 한국과 미국은 위 미국식 등급제 전제조건인 ‘가정’의 역할론에서 차이가 있다. 미국은 기독교 윤리를 바탕으로 한 가족주의 환경이다. 자녀와 부모 간 관계는 다분히 개인주의적이면서도 동시에 양육권한과 책임영역에서 확고하고 복잡한 구조다. 쉽게 말해, 영화 한편 보는데도 부모가 신경 쓰고 함께 관람해주는 태도가 자연스럽다.


반면 한국은 그간 가부장제의 암묵적 규율만 존재할 뿐 자녀의 갖가지 관심사들은 가볍게 억압하거나 관심을 끊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러다보니 미성년자 양육에 책임 있는 이들이 하나하나 ‘관리’하는 수고보다, 그저 공적개념에 책임을 떠맡긴 뒤 뭔가가 잘못되면 다시 그 책임을 공적개념에 떠넘겨 비판하는 과정만 수없이 반복된다.


그리고 그런 흐름이 바로 분기마다 한 번씩은 재탕되고 마는 ‘영화 상영등급 논란’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매번 공적기구인 영상물등급위원회 탓만 줄기차게 이어진다. 실제 양육에 책임 있는 보호자 책임은 그저 ‘영상물등급위원회를 비판하는 일’만 남게 된다.


‘책임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국가통제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한국


이 같은 ‘영화 상영등급 논란’ 딜레마와 가장 유사한 게 게임업계의 ‘게임 셧다운제 논란’이다. 관련 법조항을 살펴보자.


“청소년 보호법 제26조(심야시간대의 인터넷게임 제공시간 제한)

(1) 인터넷게임의 제공자는 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인터넷게임을 제공하여서는 아니 된다.”


2011년 11월 20일부터 시행된 이 제도는 청소년들의 인터넷게임 과몰입을 염려해 등장했다. 당연히 어마어마한 반발이 이어졌으나, 사실상 무시하고 그대로 진행됐다. 앞서 ‘영화 상영등급 논란’과 유사한 부분은, 똑같이 미국식 상영등급 개념을 취하지 않고 공적개념이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방향’을 강제하고 나섰다는 데 있다.


문제는 ‘그걸 왜 공적개념이 일괄적 기준으로 강제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미성년자 양육에 실질적 책임과 권한을 갖고 있는 건 부모 또는 그에 준하는 성인 개인들이다. 절대 국가 등 공적개념이 아니다. 양육책임 있는 성인들에게 ‘어떤 방향이 미성년 자녀들에 더 유리할 것인가’를 판단할 자유가 존재해야 각기 다른 환경에서 각자 다른 특성과 능력을 갖춘 개개인 삶이 보상받을 수 있다.


쉽게, 장래 프로 게이머가 되려 하는 자녀들에겐 그 시간에 게임을 하도록 허용하는 편이 그들 장래에 도움이 되는 상황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 직업 차원이 아니더라도, 어찌됐건 자녀에게 그런 여가 자유를 주고, 또 그를 스스로 조절하도록 자율을 교육시키고자 하는 부모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게임 셧다운제는 그런 자유를 국민 개개인으로부터 빼앗아 ‘국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을 똑같이 살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것.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 코멘트처럼, “우리가 개인을 소중하게 여기는 건, 그들이 모두 같은 존재들이 아니라 각자 모두 다른 존재들이기에 그렇다”는 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모두 각자 다른 환경에서 다른 조건과 철학 아래 성장한 다른 사람들이기에 이들을 몇몇 잣대로 똑같이 재단하지 않고 가능한 많은 자유를 부여하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양육 관련 자유와 권한 상당부분을 그대로 공적개념에 넘겨버리는 제도가 계속 유지될 수 있는 건, 앞서 설명했듯, 근본적으론 부모들 스스로 ‘수고’를 덜고자 하는 얕은 발상에서 시작된단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한 마디로, 자녀들 생활 하나하나를 관리하기가 ‘귀찮고 버겁다’는 것. 그로부터 비롯될 수 있는 자녀와의 갈등도 힘겹고, 그들을 설득하는 과정, 나아가 그런 부모 판단의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지기 싫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국가 등 공적개념이 이를 대신해 관리해주고 책임까지 져주는 방식을 선호하는 흐름이라 볼 수 있다.


대단히 무책임한 얘기다. 어찌됐건, 이런 종류 게으름과 책임 회피심리들을 지니고 있으니, <기생충> 같은 논란도 끊이질 않는 것이다. 영화를 볼지 말지조차 공적개념에 권한을 넘기고 난 뒤, 부모가 마음에 안 들었다면 어디 포털사이트라도 찾아가 비난 한 마디만 적어놓으면 부모로서 할 일을 다 했다는 심정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 바로 ‘자유의 적은 나태’인 경우다.

 

<기생충> 같은 논란이 영원히 반복될 수밖에 없는 사회분위기

                                                

실제로 <기생충> 논란 당시 미성년 자녀를 둔 세대들이 많이 찾는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들에선 위 미국식 등급제도도 그 대안으로 거론된 바 있다. 그런데 반응들은 대부분 같았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개인에게 짐 지우지 말라”는 식. 그리곤 다시 미국선 R등급인데 왜 한국선 15세 관람가냐는 얘기만 끝없이 반복됐다.


이렇듯 R등급 의미조차 생각해보지 않거나 오히려 적극적으로 외면하려는 분위기에선, <기생충> 같은 논란도 영원토록 반복될지 모른단 생각이다. 단순히 그 등급 차이만 따지는 게 아니라 제도 차이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과정이 필요한데, 정작 그 부분에선 이미 결론들이 완강하게 서있기 때문이다. 갑갑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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