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길라잡이] 세금제도와 정치

최승노 / 2019-01-21 / 조회: 5,727

"영국 윌리엄 3세는 창문 수에 따라 세금 물렸어요… 루이 16세의 과도한 세금은 프랑스혁명 도화선 됐죠"


‘창문세’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창문세는 한 주택에 존재하는 창문의 수에 따라 세금 을 부과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 황당한 세금은 1696년 영국의 윌리엄 3세 때 만들어졌다. 당시 윌리엄 3세는 아일랜드 구교도의 반란을 저지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고, 이 경비를 충 당하기 위해 새로운 세금을 만들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창문세였다.


왕실 경비와 세금


창문세 이전에는 화로세라는 것이 있었다. 짐작하는 대로 화로세는 주택 내에 설치된 벽난로의 수만큼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생활 침해 문제가 제기되면서 폐지됐다. 벽난로 수를 세려면 조사관이 집안을 들여다봐야만 하는데 사적 공간을 조사관에게 보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격렬하게 화로세에 반발했고, 결국 화로세는 폐지됐다. 그 대신 등장한 것이 바로 창문세다. 창문은 집안이 아니라 밖에서도 얼마든지 셀 수 있기 때문이다.


창문세를 처음 시행할 무렵만 해도 윌리엄 3세는 득의양양했다. 이제 사람들이 고스란히 세금을 내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윌리엄 3세의 자신감은 오만한 착각이었다. 창문세에 부담을 느낀 사람들이 차례차례 창문을 막아버리기 시작했다. 이는 밝고 따스한 햇볕을 사람들이 스스로 포기할 만큼 세금에 대한 부담감과 저항감이 컸다는 뜻이다. 창문세가 신설된 이후 영국의 건축물은 기존 창문은 막혀버리고 새로 짓는 건물은 창문 없이 지어지면서 아주 기이한 형태를 띠게 됐다.


차라리 창문 없앤다


창문세는 엄밀히 말해 일종의 ‘부유세’로 볼 수 있다. 돈이 많고 부유할수록 집이 크고 창문이 많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부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닥치는 대로 세금을 뜯으려는 꼼수에 지나지 않았다. 벽에 난 구멍은 모두 창문으로 간주해 높은 세금을 부과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느끼는 세금 부담감은 상당했다. 이런 기형적인 세금정책은 끝내 ‘창문 틀어막기’라는 엉뚱한 결과를 낳으며 사람들에게서 햇볕과 바람이 잘 드는 쾌적한 주거 환경을 빼앗아버렸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도 영국의 창문세와 비슷한 세금 제도가 있었다. 건물의 너비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었다. 이 또한 영국과 마찬가지로 무거운 세금 부담으로 돌아왔고, 결국 네덜란드 사람들은 세금을 피하고자 건물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건물을 높고 기다랗게 짓기 시작한 것이다.


18세기 프랑스 국민들 역시 과도한 세금으로 몸살을 앓았다. 프랑스의 루이 16세는 정부의 재정 파탄을 해결하기 위해 창문세 등 과중한 세금을 부과했다. 루이 16세의 창문세는 창문의 수가 아니라 창문의 폭에 따라 책정됐다. 이런 무지막지한 세금 제도는 시민계급의 반발을 불러왔고, 결국 1789년 프랑스혁명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비상식적인 세금의 과도한 부과는 민생을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국가 정권의 분열 및 해체라는 극단적인 사태까지 야기할 수 있다. 국가 운영의 경비로 사용되는 세금이 민생과 정권의 불안정을 초래한다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형적인 세금과 국가 존폐


세금은 국가와 같은 공공의 공동체가 그 구성원에게 강제로 걷어들이는 일종의 경비다. 따라서 세금 책정과 징수에는 공동체 구성원이 동의할 수 있는 명확하고 합리적인 기준과 원칙이 필요하다. 그러나 간혹 상식과 논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형적인 세금이 등장하고는 한다. 앞서 살핀 영국의 ‘창문세’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금정책은 역사의 이정표가 되는 여러 사건의 이면에 언제나 존재해 왔다. 나라가 부강할 때는 좋은 조세정책이, 반대로 나라가 쇠퇴할 때는 무리한 조세정책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다. 세금은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제도인 만큼 어떤 세금정책을 어떻게 집행하느냐는 민생 안정뿐만 아니라 국가의 존폐를 결정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다.


■ 생각해봅시다


권력자들은 언제나 세금을 많이 걷어 쓰려는 유혹에 빠진다. 역사적으로 보면 온갖 명목으로 세금을 걷은 이야기가 많다. 창문 수와 화로 수에 따라 세금을 걷기도 했고, 건물 너비에 따라 세금을 물리기도 했다. 세금은 정치적 폭발성을 지니고 있다. 세금을 만만하게 다뤘다가 권력지도가 바뀌기도 했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 TOP

NO. 제 목 글쓴이 등록일자
124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가?
조성봉 / 2019-02-13
조성봉 2019-02-13
123 [시장경제 길라잡이] 최초의 주식회사
최승노 / 2019-02-11
최승노 2019-02-11
122 [시장경제 길라잡이] 자원
최승노 / 2019-02-04
최승노 2019-02-04
121 공교육의 위기, 무엇이 문제인가?
이진영 / 2019-01-30
이진영 2019-01-30
120 [시장경제 길라잡이] 중소기업 정책
최승노 / 2019-01-28
최승노 2019-01-28
[시장경제 길라잡이] 세금제도와 정치
최승노 / 2019-01-21
최승노 2019-01-21
118 [시장경제 길라잡이] 정부와 포퓰리즘
최승노 / 2019-01-14
최승노 2019-01-14
117 [시장경제 길라잡이] 통화 팽창과 인플레이션
최승노 / 2019-01-07
최승노 2019-01-07
116 신재민의 폭로 이후: 정권별 재정성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옥동석 / 2019-01-07
옥동석 2019-01-07
115 [시장경제 길라잡이] 시장이 곧 답이다
최승노 / 2018-12-31
최승노 2018-12-31
114 [시장경제 길라잡이] 경제는 제로섬 게임?
최승노 / 2018-12-24
최승노 2018-12-24
113 [시장경제 길라잡이] 노동력 부족의 시대
최승노 / 2018-12-17
최승노 2018-12-17
112 ‘국가부도의 날’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이원우 / 2018-12-12
이원우 2018-12-12
111 [시장경제 길라잡이] 정부개입
최승노 / 2018-12-10
최승노 2018-12-10
110 불법시위와 법치주의의 한계는?
원영섭 / 2018-12-05
원영섭 2018-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