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에선 새 생명이 잉태되지 않는다

손경모 / 2018-04-18 / 조회: 10,815

신께서는 이 세상을 어찌나 조화롭게 지었는지 만물의 변화는 참으로 오묘하다. 봄이 오면 벚꽃이 피고, 겨울이 오면 눈이 나린다. 끊임없이 환경이 바뀌어 생물들은 멸종될만한데도, 아주 당연한 듯 생물은 진화하고 세상은 진일보해 나아간다. 종종 인간들은 그런 신의 모습을 흠모해서인지 그런 창조행위를 따라해 보곤 한다. 집에 어항을 만드는 것이 그런 종류의 일이다. 그런데 어항에서 물고기를 키우는 일은 예사 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공기를 넣어줘야 하고, 물을 갈아줘야하며, 환경관리도 계속해서 해줘야한다. 그렇게 열심히 물고기들의 살기 좋은 환경을 관리해줘도 쉽게 죽는다. 또 관리를 아주 잘 해줘도 새 생명이 잉태되는 일은 잘 없고, 다른 종류의 생명이 태어나는 일은 없다.

 

세상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 하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돌아간다. 어제 저 높은 하늘에 있던 빗방울은 다음날 바다 맨 아래의 심층수가 되고, 조금 전 다람쥐가 마셨던 샘물은 다람쥐에 의해서 또 새싹의 생명수가 된다. 보이지 않는 힘으로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는 더럽거나 깨끗하거나 혹은 고귀하거나 비천한 것 같은 건 없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흘러가면서 가벼웠던 물은 어느덧 무거워지고, 무거워진 물은 어느덧 가벼워진다. 물은 단지 그렇게 흘러갈 뿐인데, 세상 속에서 생명들은 새롭게 잉태되고 개체들은 늘어간다.


연못에서는 새 생명이 잉태되지만 어항에서는 새 생명이 잉태되지 않는다. 아무리 멋진 어항을 만들어 손으로 휙휙 저어도, 그 물살에선 생명이 잉태되지 않는다. 최신 모터를 달아 어항을 휘저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 산골짜기에서는 개구리도, 물고기도 누구하나 도움 받지 않고도 잘 살아가고 종족들이 늘어난다. 이 같은 차이는 참 단순하다. 생명이 보이는 힘에 의지해 살아가는지,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해 살아가는지에 따라 다를 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이와 같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름다우려면, 이 세상을 사람 사는 세상으로 만들려면 예쁜 어항이 아니라 보잘 것 없는 연못을 만들어야한다.


나는 고양이를 많이 키운다. 내 방 안에 가두지 않고 그들을 키운다. 내가 하는 일은 참 간단한데, 동네에 사는 고양이들이 지나가면서 목을 축일 수 있도록 집 앞에 물을 한 바가지 떠 놓는 일이다. 그러면 지나가는 고양이들이 목도 축이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손도 씻고 한다. 나는 그런 고양이들이 우리 집을 방문해서 한 번씩 나를 볼 때면 기쁘다. 내가 물을 퍼주는 모습을 보고, 나를 기억해주는 것이 좋다. 내가 만들어둔 작은 바가지를 통해 그들이 살아가고 내 삶에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 좋다. 나는 고양이들이 좋기 때문에 그들의 자유로움도 좋아한다. 그래서 고양이를 키우고 싶지 않다. 매일매일 눈빛으로 인사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의미를 가진 존재가 되는 것이 더 좋다.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항상 사람들을 사랑하고 아껴준다면서 먼저 자유의 구속만을 꿈꾼다. 어항처럼 그럴듯하게 꾸며진 통제된 틀 안에 국민을 가두려 한다. 이렇게 하라고 저렇게 하라고 하면서 규제를 늘린다. 그런 행동은 오히려 국민들을 살아가기 더 어렵게 만든다. 사람들은 비록 난장판 같을지라도 거친 세상 속에서 어우러져 살기를 원한다. 정부가 만들어주는 획일적 방식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질식하거나 혼란을 겪는다. 정부가 경제에 유동성이 필요하다면서 화폐를 마구 늘리는 일 조차도 결국 경제 생태계를 교란해 사람들의 삶을 더욱 지치게 만들 뿐이다.


정말 필요한 일은 간단하다. 스스로 질서를 만들고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규격화된 삶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가두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찾도록 자유로움을 허용하는 일이다. 자유로움, 새 생명은 그곳에서 잉태된다.


손경모 자유인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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