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재산권을 지키는 사법부의 역할

정기화 / 2017-09-19 / 조회: 12,720

개인의 신체적 자유와 재산권의 보호가 없다면 사회적 협동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리고 재산권과 신체적 자유가 침해받았을 때 이를 회복시키는 강제력이 없다면 재산권과 자유는 유명무실해진다. 이를 침해하는 가장 큰 위협은 외부로부터의 침략이다.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개인의 재산권과 자유를 보호기 위한 강제력이 국가권력이 등장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역사가 보여주듯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위협한 것은 국가권력이었다. 국가 권력이 등장하면 권력자는 강제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 다른 국가를 침략하거나 필요하다면 개인의 재산권과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그래서 국가권력을 견제하는 다양한 제도가 등장한다. 권력자의 이익추구가 심해지면 사회적 협동이 무너져 국가의 존립이 위태롭기 때문이다.


근대사회에 들어서서 국가 권력을 견제하는 핵심적인 제도는 '법의 지배’다. 1215년 마그나카르타가 처음 등장하였을 때 법의 지배는 과세에 대한 동의와 신체적 구금에 대한 적법절차를 주 내용으로 하였다. 당시에 개인의 재산권을 위협하는 것은 외부의 침략뿐 아니라 권력자의 자의적인 과세였다. 납세자의 동의 없는 과세는 약탈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권력은 내려놓기 힘들다. 권력자는 끊임없이 개인의 재산권을 위협하였고, 국가권력을 견제하려는 투쟁은 450년 넘게 지속되었다. 이러한 투쟁의 결과 과세권에 대한 국민대표의 동의와 국가권력이 침해할 수 없는 개인의 권리보호, 그리고 국가권력의 분립이 보편적 제도로 자리 잡게 된다.


민주주의가 확대되면서 법의 지배는 심각한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 법의 지배는 국가권력을 견제하여 개인의 재산권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에서 법의 지배는 국민의 대표가 제정한 '법에 의한 지배’로 여겨지게 되었다. 의회에서 다수가 지지한 법률은 거의 제한 없이 강제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과거의 권력자는 종교적 교의나 도덕적 가르침 등에 의해 스스로 강제력의 행사를 자제하는 측면이 있었다. 이제는 다수의 지지가 있다면 권력행사를 제한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민주사회에서 권력을 쟁취하려는 정당 간의 경쟁은 필연적으로 특정 집단의 이익을 보호하는 입법을 초래한다. 유권자는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는 정당에 투표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가재정의 확대를 초래하고 이로 인해 증세가 불가피해진다. 그리고 증세는 주로 소수에 집중된다. 소수로부터 다수로 자원이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과거에는 소수의 권력자가 다수의 재산권을 위협하였다면 이제는 다수가 소수의 재산권을 위협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협동을 손상시켜 경제의 잠재력을 위축시키고 국가의 존립을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 있다.


다수가 소수를 약탈하는 것을 막는 제도는 헌법재판소를 비롯한 사법부와 언론이다. 하지만 언론은 다수의 여론에 민감하다. 다수가 지지하는 정책이 외형적으로 절차적 합법성을 갖추고 있으면 이를 비판하기 힘들다. 사법부는 재산권과 자유를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이지만 다수가 지지하는 정책을 견제하는 것이 쉽지 않다. 과거의 경험을 보면 권력자는 사법부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사법부가 정치적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아가 법관도 인간이기에 정치적 성향이나 도덕적 기준에 따른 판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법부가 정치적 영향을 크게 받게 되면 소수에 대한 약탈적 과세나 자유의 제한이 합법적으로 행해진다. 그러면 모든 사람의 재산권과 권리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 개인은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살아간다. 한 영역에서 다수에 속했던 사람이 다른 영역에서 소수에 속하는 일은 흔하다. 더욱이 사회가 발전하면서 삶의 다양성이 더욱 풍부해졌다. 다양한 삶의 추구는 소수의 재산권이나 권리에 대한 보호가 없다면 어려워진다.


나아가 재산권이나 권리를 위협받는 개인들이 다양한 수단을 강구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과거의 예를 보면 해외로 도피하거나 편법적인 활동을 추구하게 된다. 때에 따라서는 저항수단에 의존하기도 한다. 그러면 사회적 갈등은 심화되고 정치 투쟁이 일상화될 수 있다. 이로 인해 사회의 존립 자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이것이 기우에 그치면 좋겠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권한이 집중되어 있어서 다수의 지지가 있다면 권력자가 자신의 뜻대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여기는 게 우리 현실이기 때문이다.


입법을 통해 소수의 재산권과 자유가 침해되는 것을 어떻게 견제하느냐가 시대적 과제의 하나가 되었다. 다른 제도적 장치가 부족한 현실에서 사법부가 그 역할을 담당할 수밖에 없다.


정기화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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