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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사회주의에서 번영으로

라이너 지텔만 / 2025-03-28 / 조회: 120

최근 몇 년간, 나는 폴란드를 어떤 다른 유럽 나라보다 더 빈번하게 방문했는데, 나는 항상 그 나라의 놀랄 만한 경제 발전과 상승하는 생활 수준으로 깜짝 놀란다. 폴란드는 몇십 년간 유럽의 성장 챔피언이었다.


내가 어떤 나라에 여행하기 전에, 내가 그것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나는 우선 그것의 역사를 공부한다. 그것은 내가 바르샤바에 있는 카르타 센터(Karta Center)의 공동 창립자 알리챠 반체르시-글루자(Alicja Wancerz-Gluza)를 만난 이유이다. 그 센터는 반공산주의 지하 운동으로부터의 5,000권 책과 소책자, 약 35,000부 신문, 300장 포스터 그리고 1,000장 엽서를 포함한다.


우리의 대화 동안, 알리챠는 사회주의 계획 경제 치하 폴란드에서 일어났던 일상생활의 현실 모습을 설명했다. 그녀는 1980년대 후기 사회주의 정권의 붕괴까지 폴란드 사람들이 식품과 그 밖의 제품들을 사는 데 필요했던 배급표들(ration cards)의 꾸러미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첫 번째 배급표들은 1976에 설탕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사회주의 멸망까지는, −육류, 요리용 기름, 버터, 세제, 비누, 담배, 휘발유, 그리고 심지어 신발조차도 포함하는 모든 종류의 제품에 대해−더욱더 많은 이 배급표가 추가되었다.


“나의 결혼식을 위해 내게 흰 팬티스타킹을 사도록 허가할 특별 카드[표]를 내가 등기소에서 받았을 때는,” 알리챠는 회고했다, “정말 특별한 때였습니다. 나는 또한 우리가 결혼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보석상에서 금 결혼반지들을 사는 것이 허가된다고 명시하는 증명서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살 돈이 없었고, 우리는 하여간 반지들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경우에 대해 특별 카드[표]들이 있었는데, 예를 들면, 장례식을 위해 당신은 검은 팬티스타킹을 살 카드[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배급표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당신이 나가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종종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사기 위해 몇 시간이고 줄지어 서 있어야만 했다. 사람들은 또한 만약 그들이 자기들의 카드[표]가 허가하는 것과 다른 제품이 필요하면 자기들의 카드[표]들을 교환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보드카 카드[표](성인은 한 달에 한 병을 사도록 허가되었다)는 커피 카드[표]와 교환될 수 있었다.


가구, 세탁기 혹은 텔레비전을 사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사회적 줄(kolejki społeczne)”로 알려진 것에 서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떤 경우들에는, 그들은 한두 달 동안 매일 줄에 들어, 한 번에 몇 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가족원들이 대기 행렬에 들어야 했고, 줄을 서서 기다렸으며, 몇 시간마다 다른 가족원들과 자리를 교환했다. 종종 줄에 서 있도록 선택된 사람은 할아버지나 할머니였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여러 날 동안 줄에서 견딜 시간을 가장 많이 가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폴란드가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것이 그렇게 오래전이 아니었다. 1989년에, 한 폴란드인은 한 달에 그저 50 미국 달러에만 해당하는 것, 평균 서독인의 그것의 10분의 1을 벌었고, 심지어 그 두 나라 사이 구매력에서 차이들을 고려한 후조차도, 한 폴란드 근로자의 실수령 급료의 가치는 서독 고용인의 그것의 ⅓이었다. 폴란드인들은 그 당시 우크라이나인들보다 더 가난했고, 1인당 GDP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그것 그저 반일 뿐이었다. 폴란드에서 인플레이션은 1989년에 260퍼센트였고 1990년에 400퍼센트였다.


1910년만큼 최근, 폴란드에서 평균 소득은 서유럽인의 그것의 56퍼센트였다. 그러나 1945년부터 1990년까지의 해들에 걸치는 사회주의 시대의 말까지는 소득이 극적으로 떨어졌었다: 1990년까지는, 한 폴란드인은 서유럽에서 평균 봉급의 그저 31퍼센트만 벌었다.


그러나 시종일관한 자본주의 개혁 프로그램을 통하여, 폴란드에서 생활 수준이 상당히 상승했고, 2016년까지는, 대전 후 생활 수준이 상당히 상승했었던, 서유럽인들의 수준의 57퍼센트에 도달했었다. 모든 소득 집단에 걸쳐, 폴란드인들은 자본주의로부터 편익을 얻었다.


역사에서 아주 흔하듯이, 일정 개인들의 헌신과 영향력을 저평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맨 먼저, 전 재무 장관 레셰크 발체로비치(Leszek Balcerowicz)가 있는데, 나는 그를 바르샤바에서 만났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와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하이에크의 가르침으로 지도된 자유 시장 경제학자 발체로비치는, 1989년에 선출된, 폴란드의 첫 민주 정부에서 재무 장관이었다. 그는 또한 국립 폴란드 은행의 의장(2001-2007년)과 두 번에 걸쳐 폴란드 부수상(1989-1991년과 1997-2001년)이기도 했다.


발체로비치는 후에 “충격 요법(shock therapy)”이라 불린 자본주의 개혁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나의 이전 개혁 연구들과 1989년에 폴란드에서 경제 상황이 얼마나 극적이었는지에 관한 나의 깨달음에 기초하여,” 그는 말했다, “나는 오직 급진적인 전략만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깊이 확신했습니다."


발체로비치의 프로그램은 1992년에 폴란드가 경제 성장 궤도로 돌아온 첫 번째 구사회주의 나라가 되도록 보장했고 그 나라의 후속 성공의 기초가 되었으므로, 폴란드인들이 자기들의 인내에 대해 충분히 보상받았다고 할지라도, 상황이 처음에,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더 나빠지는 것은 그러한 급진적인 개혁 프로그램들의 본질 안에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자기들의 나라를 노동자들과 소농들의 낙원으로서 서술했지만, 폴란드에서 그 체제를 전복한 사람들은 노동자들이었다. 인상적인 유럽 연대 센터(Europejskie Centrum Solidarnośći)는, 내가 방문했었던 한 도시, 그단스크(Gdańsk)에서 이 역사적인 사건의 통렬한 상기자로서 이바지한다. 그단스크 조선소는 독특하게 역사적인 장소인데, 왜냐하면 이것은 공산주의의 종말이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폴란드의 전() 전후 역사에는 그 나라의 노동자들에 의한 반복되는 파업과 계속 진행 중인 시위가 간간이 끼어드는데, 그것들의 다수는 잔인하게 진압되었다. 예를 들면, 1970년 12월 14일 그단스크 조선소에서 시작한 파업들이 있었다. 12월 15일 밤에, 파업 노동자들은 탱크들을 가진 군부대들로 포위되었다. 노동자들이 공장을 떠났을 때, 군인들은 그들에게 사격을 개시했고 그 후 구내로 행군했다. 바로 그날, 파업들이 또한 그디니아(Gdynia) 조선소에서도 발발했다. 사망자들과 부상자들이 있었다. 교도소들과 임시 구치소들에서, 시위자들은 폭행당해 의식을 잃었고 중상을 입었다. 파업들과 시위들은 1970년 12월 그 주 동안 또한 많은 다른 도시에서도 일어났고, 그 결과 마흔다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 중에서, 열두 명은 스무 살 미만이었고 스물네 명은 서른 살 미만이었다. 통틀어, 1,100명이 다쳤는데, 그들 다수는 노동자였다.


그 조선소는 죽은 노동자들의 이름과 연령을 열거하는 기념 명판들로 꾸며져 있다. 약간은 그저 열다섯, 열여섯 혹은 열일곱 살이었다. 자기들의 목표가 노동자들의 낙원이었던 지식인들이 고안한 이데올로기는 노동자들의 봉기들로 붕괴하였다.



라이너 지텔만(Rainer Zitelmann), ≪빈곤과 부의 기원: 나의 세계 여행 그리고 세계적 리버테리언 운동으로부터의 통찰들(The Origins of Poverty and Wealth: My world tour and insights from the global libertarian movement)≫에서 발췌.


라이너 지텔만(Rainer Zitelmann)은 역사학자이자 사회학자이고, 위 책에 대한 소개는 https://origins-poverty-wealth.com/에서 볼 수 있다.

번역: 황수연(전 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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