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개정으로 악화된 기업환경
상법이 1년 사이에 세 번 바뀌었다. 2025년 7월 1차 개정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회사와 함께 '주주’를 넣었고, 사외이사의 이름을 독립이사로 바꾸면서 일반 상장회사의 의무선임 비율을 이사 총수의 4분의 1에서 3분의 1로 올렸다. 같은 해 9월 2차 개정은 자산 2조 원 이상 대규모 상장회사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확대했다. 2026년 3월 3차 개정은 자기주식을 취득 후 1년 안에 원칙적으로 소각하도록 했다. 1차 개정 중 충실의무 조항은 즉시 시행됐고, 독립이사·감사위원 관련 조항은 2026년 7월, 전자주주총회는 2027년 1월 시행된다. 2차 개정은 2026년 9월 시행을 앞두고 있으며, 3차 개정은 공포와 동시에 시행됐다.
명분은 한결같다. 소액주주를 보호하고 지배구조를 개선한다는 것이다. 지배주주가 힘을 앞세워 일반 주주의 몫을 가로채는 일을 막을 장치는 필요하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주주를 보호할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호할 것이냐다. 정부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지배구조를 법으로 일일이 지정하는 길이 있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예측 가능한 규칙을 세운 뒤 나머지는 기업의 판단에 맡기는 길이 있다. 두 길은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한다. 경영의 결정을 시장에 맡길 것인가, 국가가 법으로 설계할 것인가. 이것이 오늘 상법 논쟁의 본질이다. 짧은 기간에 지배구조와 이사의 책임, 자본 활용 방식을 잇달아 법으로 정했다는 점에서 최근 개정의 방향은 분명하다. 기업의 판단 영역을 법이 빠르게 대신하고 있다.
충실의무 확대가 그 전형이다. 종전 상법에서 이사의 충실의무는 법령과 정관에 따라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할 의무였다. 경업금지와 자기거래 규제, 회사기회 유용금지는 그 의무가 구체화된 대표적인 영역이다. 그런데 이번 개정은 그 의무의 상대를 '주주’로 넓히고 '총주주의 이익 보호와 전체 주주의 공평한 대우’라는 기준을 새로 얹었다. 이사는 회사의 수임인이지, 이해가 제각각인 개별 주주의 지시를 따르는 대리인이 아니다. 의무의 상대가 주주 전체로 늘어나는 순간, 그 의무가 무엇을 요구하는지가 흐려진다.
합병과 분할, 증자, 신사업 진출은 저마다 성격이 다르다. 이 결정들이 모두 '총주주의 이익 보호와 공평한 대우’라는 잣대 아래 놓이면, 이사는 어디까지가 의무 이행이고 어디부터가 위반인지 알 수 없다. 경영권 분쟁에서는 더 분명해진다. 현 경영진을 미는 주주와 경영진 교체를 요구하는 펀드가 정면으로 부딪칠 때, 무엇이 '공평한 대우’인가. 어느 쪽을 택해도 다른 쪽이 의무 위반을 들고 나올 수 있다면, 그 의무는 행위의 기준이 아니라 소송의 빌미가 된다. 의무를 새로 만들기는 쉽다. 그러나 경계가 없는 의무는 보호의 외연을 넓히는 듯 보일 뿐, 실제로는 책임의 선을 지워 버린다.
경영판단의 원칙이 글로벌 스탠다드다
상법을 고칠 때마다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글로벌 스탠다드는 외국 제도 하나를 그대로 베껴 오는 것이 아니다. 각국의 회사법은 그 나라의 법원과 소송 문화, 주주 구성, 자본시장의 역사와 함께 자라났다. 제도 한 조각만 떼어 비교하면 오해가 생긴다. 글로벌 스탠다드의 진짜 내용은 몇 가지 원칙이다. 주주의 권리와 경영진의 책임이 명확할 것, 이사의 재량과 책임이 균형을 이룰 것, 기업이 자기에게 맞는 지배구조를 고를 수 있을 것, 법이 예측 가능할 것. 그리고 그 핵심에 경영판단의 원칙이 있다.
경영판단의 원칙은 단순하고 분명하다. 이사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해충돌 없이 선의로 내린 결정이라면, 결과가 나빴더라도 그 판단을 다시 들춰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가는 위험을 안고 결정한다. 모든 도전이 성공하지는 않는다. 실패한 판단마다 법정에 세운다면 누구도 모험하지 않는다. 경영판단을 보호하는 것은 기업가를 봐주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작동하게 하는 조건이다. 미국 델라웨어를 비롯한 주요 회사법 체계가 선의와 충분한 정보에 기초한 판단을 보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책임 강화와 경영판단 보호를 함께 설계하는 것, 그것이 균형 잡힌 글로벌 스탠다드다.
한국에 이 원칙은 아직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대법원도 이사가 법령을 어기지 않고, 합리적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충분히 검토했으며, 회사에 이익이 된다고 선의로 믿고 내린 판단이 현저히 불합리하지 않다면 경영판단의 재량 안에 있다고 본다. 다만 그 보호가 법조문이 아니라 판례에 기대어 있고, 법원이 정보수집 절차를 넘어 판단의 내용까지 들여다본다. 선의의 판단이라는 추정에서 출발해 이를 깨뜨릴 책임을 문제 제기하는 쪽에 지우는 델라웨어식 구조와는 다르다. 이사의 의무를 주주에게까지 넓혔다면, 그 판단을 어디까지 보호할지도 함께 못 박았어야 한다. 책임만 키우고 보호의 선을 긋지 않으면 균형은 무너진다. 책임을 분명히 하려면 보호도 분명히 해야 한다. 경영판단의 원칙은 판례에 맡길 것이 아니라 법으로 명문화해야 한다.
'해외도 다 한다’거나 '한국에만 있다’는 말은 조심해서 써야 한다. 그래도 분명한 사실은 있다. 집중투표제를 모든 대규모 상장회사에 강제하는 방식은 국제적으로 보편적이지 않다. 일본은 회사가 정관으로 집중투표를 배제할 수 있게 했고, 미국의 대표적 회사법 관할인 델라웨어도 설립증서에 정한 경우에만 이를 실시한다. 두 법제 모두 회사의 선택에 맡기는 임의 방식을 취한다. 의무화가 곧 국제 표준이라는 전제부터 성립하지 않는다. 외국에서 책임을 강화한 제도만 골라 들여오면서 그 곁에 늘 따라붙는 경영판단 보호와 소송 남용 방지 장치는 빼놓는다면, 그것은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니라 그 절반일 뿐이다.
기업의 크기가 아니라 행위를 규율하라
한국의 기업 규제에는 오래된 버릇이 있다. 기업이 무엇을 했느냐보다 얼마나 크냐를 먼저 따진다. 자산 규모, 기업집단 소속 여부, 상장 여부에 따라 의무와 제한이 갈린다. 이번 2차 개정도 자산 2조 원이라는 문턱을 그어 그 위의 기업에 더 무거운 의무를 지웠다. 큰 기업에 더 두터운 공시나 감시를 요구할 이유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자산 규모를 기준으로 지배구조 자체를 일률적으로 설계하라고 강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같은 행위를 기업의 크기에 따라 다르게 다룰수록, 법의 일반성은 흔들린다.
더 깊은 문제는 따로 있다. 기업이 클수록 규제가 늘어나는 구조 자체다. 어느 문턱을 넘는 순간 새로운 의무가 쏟아지면, 기업은 그 문턱을 넘지 않으려 한다. 분할로 몸집을 줄이거나 상장을 미루며 그 문턱을 피하려는 유인이 생긴다. 성장을 벌하는 제도는 기업이 성장하지 않는 쪽을 택하게 만들 수 있다. 기업가에게 도전을 호소하면서 도전의 대가로 규제를 안기는 것은 모순이다. 법은 기업이 크다는 이유가 아니라, 남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공정한 경쟁을 해치는 행위를 기준으로 작동해야 한다. 큰 기업에 더 무거운 책임을 지우더라도 그 기준은 명확해야 하고, 정치의 형편에 따라 흔들려서는 안 된다.
자기주식 개정은 행위를 규율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인적분할이나 합병 과정에서 의결권 없던 자기주식에 신주가 배정되면서 지배주주의 지배력이 부풀려지는 일이 있었다. 이른바 '자사주의 마법’이다. 이번 개정은 합병·분할 때 자기주식에 신주를 배정하지 못하게 하고, 자기주식을 교환·상환 대상으로 한 사채 발행을 막고, 자기주식에 의결권과 배당권이 없음을 못 박았다. 지배권을 왜곡하는 행위를 정확히 겨눈 규율이다.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자기주식을 가진 회사라면 1년 안에 소각하라고 일률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개정법도 임직원 보상이나 우리사주 등의 경우와, 주주총회 특별결의로 정관에 정한 신기술 도입·재무구조 개선 등 경영상 목적에 대해서는 보유·처분계획을 해마다 주주총회에서 승인받아 예외적으로 자기주식을 보유하거나 처분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소각을 기본으로 정하고 그 계획을 매년 다시 승인받게 한 방식이 정상적인 자본 운용까지 짓누르지는 않는지 따져야 한다. 왜곡하는 행위는 막되, 정당한 활용까지 묶어서는 안 된다.
시장을 통제하는 법에서 시장을 보호하는 법으로
법은 특정 집단을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명령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공정한 규칙이다. 법이 보편적이고 예측 가능할 때 시장은 자유롭게 움직이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분명해진다. 자유는 방임이 아니라 책임을 전제로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자유롭게 판단하되 그 결과를 책임지는 것, 법은 그 책임의 경계를 그어 주는 데까지다. 정부는 기업의 판단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금의 상법은 반대로 간다. 정부가 정한 지배구조와 자본 운용 방식을 법으로 촘촘히 지정할수록, 기업은 소비자와 투자자가 아니라 법이 그린 모범답안에 먼저 반응한다. 규모에 따라 규제가 갈리는 차별, 정부가 정한 길로 기업을 모는 간섭이 그 단면이다.
상법이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금지할 행위만 법으로 막고 나머지는 기업의 자유에 맡기되, 위법에는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것이다. 기업의 자율과 책임, 주주의 권리, 경영판단 보호가 균형을 이루어야 하고, 규제는 기업의 크기가 아니라 행위를 겨눠야 한다. 이 모두는 하나로 모인다. 모든 기업에 똑같이, 예측 가능하게 적용되는 법이다. 주주 보호와 경영 자율은 양자택일이 아니다. 명확한 행위 규칙과 경영판단 보호, 실효성 있는 주주 구제가 함께 설계될 때 두 가치는 함께 선다. 기업을 어느 방향으로 몰 것인가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통하는 규칙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시장을 설계하려는 법은 시장을 위축시킨다. 시장을 지키는 법이 시장을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