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은 시장의 가격과 거래조건이 경쟁을 통해 형성되도록 하기 위한 법이다. 여러 사업자가 가격을 함께 정하거나 거래를 집단적으로 거부하는 행위를 담합으로 규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쟁이 사라지면 소비자의 선택권이 줄어들고 혁신과 효율성도 약화된다.
정부는 소상공인·중소기업·화물차주 등 일정한 사업자에게 단체협상과 단체행동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공정거래법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가격, 수수료, 납품단가, 운송료, 거래조건을 공동으로 협상하더라도 담합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방안이다.
정책의 문제의식은 이해할 수 있다. 영세사업자는 대기업이나 플랫폼을 상대로 충분한 협상력을 갖기 어렵다. 일방적인 계약 변경이나 수수료 인상, 납품대금 지연과 같은 불공정한 거래 관행도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다고 협상력의 차이를 공동 가격결정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불공정한 거래행위를 규제하는 것과 사업자들이 가격과 거래조건을 함께 정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노동법상 근로자의 단체교섭과 독립된 사업자들의 공동 가격협상도 동일하게 보기 어렵다. 근로자의 단체교섭은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종속적 고용관계를 전제로 한다. 반면 개별 사업자는 원칙적으로 가격, 품질, 생산성, 서비스 수준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시장 참여자다. 이들이 공동으로 가격을 요구하면 거래 상대방과의 협상을 넘어 사업자 간 경쟁 자체가 제한될 수 있다.
이름을 단체협상이라고 바꾼다고 이러한 성격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여러 사업자가 같은 가격과 조건을 요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공동으로 납품이나 운송을 거부한다면 실질적으로는 공동 가격협상과 집단적 거래거절에 가까워진다.
시장에서는 사업자마다 비용과 생산성, 품질이 다르다. 효율적인 사업자는 더 낮은 가격이나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해 거래를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사업자는 차별화된 서비스와 가격을 통해 시장에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 집단협상이 일반화되면 이러한 차이는 사라지고 가격은 경쟁보다 조직의 협상력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커진다.
공동 납품거부와 운송거부까지 허용될 경우 파급효과는 더욱 커진다. 특히 물류는 제조업과 유통업, 건설업 전반을 연결하는 기반이다. 일부 사업자의 집단행동이 생산과 공급을 중단시키면 거래 당사자를 넘어 경제 전체가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비용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납품단가와 운송료, 플랫폼 수수료가 집단협상을 통해 상승하면 기업은 이를 제품 가격, 배달료, 물류비, 서비스 요금에 반영하게 된다. 단체협상의 편익은 특정 사업자에게 돌아가지만 비용은 소비자와 다른 거래 주체에게 넓게 전가될 수 있다.
기존 사업자 단체의 영향력이 커질 가능성도 살펴야 한다. 대표성이 불분명한 단체가 전체 사업자를 대신해 가격을 협상할 수 있다. 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사업자는 사실상 불리한 거래조건을 감수해야 할 수 있다. 새로운 사업자가 더 낮은 가격으로 시장에 진입하려 해도 기존 단체의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기존 사업자의 지위를 보호하는 진입장벽으로 변질될 수 있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담합 예외의 확대가 아니라 불공정한 거래행위를 정확하게 규율하는 일이다. 대금 지급 지연, 일방적인 계약 변경, 부당한 비용 전가, 거래상 지위 남용은 엄정하게 제재해야 한다. 표준계약서와 거래조건 공개를 확대하고 신속한 분쟁조정 절차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사업자가 여러 거래 상대방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진입장벽과 독점적 거래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특정 기업이나 플랫폼에 종속된 사업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보호 장치를 검토할 수 있다. 다만 보호의 범위와 요건은 명확해야 한다. 가격과 수량을 공동으로 결정하거나 필수 물류망을 집단적으로 중단하는 행위까지 포괄적으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
공정거래법의 목적은 특정 집단의 협상력을 인위적으로 높이는 데 있지 않다. 거래상 지위의 남용을 막으면서도 시장의 경쟁을 유지하는 데 있다. 약자 보호라는 명분이 공동 가격결정과 집단적 거래거절의 면허가 되어서는 안 된다.
협상력의 불균형은 불공정행위 규제와 경쟁 촉진으로 해결해야 한다. 가격은 단체의 힘이 아니라 사업자의 선택과 경쟁을 통해 정해져야 한다.
왕호준 자유기업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