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유세의 역설 - 청구서는 누구를 향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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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박정우 20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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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은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인간의 사고를 직관적이고 빠른 '시스템 1'과 논리적이고 느린 '시스템 2'로 나눴다. 요즘 보유세 인상 논쟁을 보다 보면 이 구분이 자꾸 떠오른다. "다주택자에게 세금을 왕창 때리면 매물이 쏟아지고 집값이 잡힌다"는 논리는 분노한 대중에게 확실히 통쾌하다. 정치권도 이걸 모를 리 없다. '사회 정의'라는 포장지를 두르면 반시장주의 정책도 박수를 받을 수 있다는 걸 이미 학습했으니까. 그것이 시스템 1의 풍경이다. 문제는 시스템 2로 바라볼 때 보이는 것들이다.
보유세 인상의 1차 목표는 단순했다. 수요를 꺾어 가격을 낮추겠다는 것. 그런데 시장은 그렇게 단선적이지 않다. 세금이 오르면 임대사업자의 기대수익이 내리는 건 당연하고, 그 다음 수순은 신규 공급 축소다. 수요곡선을 왼쪽으로 밀어볼 생각이었는데 정작 공급곡선이 먼저 뒤로 물러난 셈. 여기에 무거운 양도세까지 겹치자 이른바 '매물 잠김' 현상이 터져 나왔다. 세금 내느니 그냥 버티겠다는 거다. 수요가 줄어드는 속도보다 공급이 마르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집값은 오히려 올라갔다. 정책이 의도한 것과 정반대의 결과였다. 시장을 인위적으로 누르면 눌릴수록 어딘가에서 반드시 터져 나오는 게 가격이라는 신호다.
더 뼈아픈 건 세금이 결국 누구 주머니에서 나오느냐다. 조세의 부담은 탄력성이 낮은 쪽, 즉 선택지가 없는 쪽으로 간다. 주거는 필수재다. 세입자는 어떻게든 살 곳이 필요하다. 결과는 뻔했다. 집주인들은 전세를 반전세나 월세로 바꾸고 임대료를 올리는 방식으로 세 부담을 세입자에게 넘겼다. 부의 재분배를 명분으로 물린 세금이, 정작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의 월세 고지서를 불려놓은 것. 역진성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선명하게 드러나는 경우도 드물다. 선의가 항상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음을 시장은 냉정하게 증명해 보였다.
올해 1분기 법원 신규 경매 신청이 3만 건을 넘었다. 13년 만의 최대치다. 어떤 이들은 이걸 두고 "투기꾼들이 버티다 결국 무릎 꿇었다"며 정책의 성과라고 읽는다. 그런데 경매로 쏟아지는 물건은 시장이 자연스럽게 만든 공급이 아니다. 세금과 금를 버티지 못한 강제 청산의 결과들이다. 임대인이 파산하면 전세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하거나, 경매 처분만을 기다릴 사람들이 생긴다. 그게 바로 얼마 전까지 박수 치던 세입자들이다. 도파민은 짧았고, 청구서는 엉뚱한 사람에게 날아든 것이다. 보증금을 떼인 청년 세입자가 다시 같은 보증금을 모으는 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이 정책이 빼앗은 건 한 사람의 몇 년치 인생이다. 월세로 떠밀린 신혼부부는 출산을 미루고, 지방에서 올라온 사회 초년생은 반지하와 옥탑방 사이를 전전한다. 정책이 가장 보호하겠다고 외친 계층이 가장 깊은 상처를 입은 셈이다.
결국 가장 크게 무너진 건 계층 이동의 가능성이다. 자산을 조금씩 불려 상급지로 옮겨가려던 중산층은 세금 때문에 발이 묶였고, 서민들은 오른 월세를 감당하느라 저축 여력을 잃었다. 부러진 사다리가 남긴 건 경직된 시장과 대물림되는 가난 뿐이다. 부모 세대가 청년 시절에 가능했던 '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자가로'의 성공신화는 이제 옛이야기가 됐다. 전세 시장 붕괴가 월세 수요 폭등으로, 그게 다시 임대료 전반을 밀어 올리는 악순환은 이미 시작됐다. 부동산 정책이 결과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저출생 정책, 가장 강력한 청년 좌절 정책이 되어버린 이 아이러니를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가격은 통제 대상이 아니다.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시장의 건강 상태를 알려주는 신호다. 체온이 높다고 체온계를 부수면 병이 낫지 않는다. 오히려 진짜 병이 어디서 곪고 있는지 놓치게 될 뿐이다. 정부가 시장을 이기려는 순간, 가장 먼저 다치는 건 시장에서 선택지가 가장 적은 사람들이다. 하이에크는 이를 일찍이 '치명적 자만'이라 불렀다. 시장이 만든 가격을 자기가 더 잘 안다고 믿는 설계자의 오만 말이다. 규제와 세금으로 가격을 누르는 일은 직관적으로는 정의로워 보이지만, 그 끝에는 늘 약자에게 향할 청구서가 놓여 있다. 지금 필요한 건 민간의 자율적 공급을 틔워주는 촉진자로서의 역할이다.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합리화하고, 임대시장의 거래 비용을 낮추며, 장기 공급 계획에 예측 가능성을 부여하는 일. 이런 작업들은 박수도 받지 못하고 헤드라인도 장식하지 못한다. 그게 멋없어 보여도, 실제로 서민 주거를 안정시키는 길은 그쪽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