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는 부동산과 생산을 잇는 가교인가, 장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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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석현 20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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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금융 시장의 화두는 단연 ‘생산적 금융’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이는 가계 대출과 부동산에 편중된 자본의 흐름을 기술 혁신과 기업 성장 부문으로 유도하여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자본이 고착된 자산에서 벗어나 미래 가치를 창출하는 곳으로 흘러가야 한다는 방향성은 시장경제의 역동성 측면에서 타당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작금의 정책 추진 방식을 들여다보면, 시장의 자율성보다는 규제 중심의 강제성에 집중되어 있다는 우려를 지우기 어렵다.
특히 지난해 정부가 10.15 부동산 대책의 일환으로 내놓은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 위험가중치(이하: RW) 하한 조정은 이러한 정책적 우려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해당 정책의 실행 전 내부기준법을 적용한 국내 시중은행의 평균 주담대 RW는 약 16.7%로 세계 시스템 중요은행(G_SIB)의 평균 수치인 14.6%보다 보수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정책 당국은 주담대 RW 하한을 20%로 상향 조정하였고, 추가로 5%p 상승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에 있다.
더 큰 문제는 자본 규제의 벽을 높이는 데만 치중할 뿐, 기업 대출에 대한 직접적인 유인책이나 리스크 안정화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규제의 대안으로 제시된 ‘주식 RW 조정’이나 최근 발표한 ‘구조적 외환포지션 확대’ 등은 본질적인 리스크 해결보다는 수치상의 비율 조정에 가깝다. 은행 입장에서 담보가 확실한 주담대를 줄이고 리스크가 높은 기업 대출을 늘리는 것은 실질적인 위험 총량의 증가를 의미한다. 단순히 위험가중자산(RWA) 여력을 수치상으로 확보해 주는 것만으로는 민간 은행이 기업 대출을 확대해야 할 직접적인 유인이 될 수 없다. 이는 금융의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민간 금융사에 높은 리스크 자산으로의 전환을 강요하는 형국이며, 결과적으로 금융 시스템의 내재적 불안정성을 키우는 ‘숫자놀음’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금융 규제와 맞물린 부동산 대책 역시 시장경제의 원리를 외면한 채 규제 일변도로 흐르고 있다. 주담대 RW 상향 조정, DSR 규제 강화, 토허제 확대 등 인위적인 대출 억제책은 단기적으로 특정 지역의 가격 하락세를 이끌어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장은 누르는 만큼 다른 곳이 팽창하는 ‘풍선효과’로 즉각 반응하고 있다.
대출의 문턱이 높아지자 매매 수요가 규제지역 외 부동산과 임대차 시장으로 급격히 전이된 것이다. 비(非) 강남 지역의 집값이 상승세를 보이는가 하면, 전세 매물 급감으로 인한 전셋값 상승이 월세까지 자극하고 있다. 월세 상승은 전세 수요를 다시금 자극할 것이고 전셋값의 상승은 전반적인 집값 상승의 트리거(trigger)가 된다. 결국 인위적인 유동성 통제가 일시적인 가격 둔화를 가져올 수는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주거 비용 상승과 부동산 양극화를 더욱 부추기는 ‘규제의 역설’을 낳는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하이에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문제를 푸는 것에 있어 가능한 최대한 사회의 자연발생적 힘을 이용하고, 가능한 최소한의 강제력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시장경제는 어떠한가? 최대한의 강제력이 자연발생적 힘에 도전하고 있지는 않은가?
규제를 통해 부동산 안정을 도모하고 이를 생산적 금융으로 이어가는 현재의 접근 방식은 시장경제의 핵심인 자율성을 간과하고 있다. 리스크 감수를 종용하거나 사유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거는 방식은 결국 어떠한 형태의 저항을 부를 수밖에 없다. 진정한 체질 개선은 규제를 통한 압박이 아니라, 리스크를 실질적으로 경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시장 친화적인 인센티브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만은 결코 다르지 않음이 분명하다.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은 한국 경제가 고질병인 가계대출 문제를 해결하고 재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순리와 본질에 충실한 정책적 사고가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견인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