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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게 만들고 덜 쓰라: 정책의 역설

글쓴이
김준혁 2026-05-27

지난 3월, 국제 유가가 급등하자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제’와 ‘차량 5부제’를 약 2주 간격을 두고 함께 도입했다. 겉보기에는 두 정책이 서로 충돌한다. 하나는 가격을 낮춰 소비자 부담을 줄이려는 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소비 자체를 억제하려는 규제이기 때문이다. 가격은 내리면서 사용은 줄이라고 요구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 모순적 조합은 오히려 시장경제의 작동 원리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시장경제에서 가격은 단순한 거래 수단이 아니라 정보를 전달하는 핵심 장치다.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는 사용을 줄이고, 생산자는 공급을 늘리려는 유인을 갖는다. 이 과정에서 수요와 공급은 스스로 균형을 찾아간다. 가격 상승은 소비자에게 “지금은 아껴 써야 할 때”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지만 정부가 가격 상승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면 이 신호는 왜곡된다. 석유 최고가격제는 단기적으로 소비자 부담을 완화하고 물가 상승 압력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가격이 낮게 유지되면 소비를 줄일 유인이 사라진다. 실제로 정책 시행 이후 석유 판매량이 증가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가격이 오르지 않으니 소비가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는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로 인해 초과수요가 발생하고, 공급부족이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통제된 가격 수준에서는 공급을 늘릴 유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통제된 가격하에서 정유사는 원가 상승을 가격에 반영하지 못해 손실을 입게 된다. 결국 최고가격제 도입의 주체인 정부는 국내 공급량 90% 유지를 의무화하고 수출을 통제시켜 공급부족에 대처하였고, 이로 인해 발생한 정유사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재정을 투입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이는 유가 상승에 대한 부담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로 이전되는 것에 불과하다. 소비자는 당장의 가격 부담을 덜 수 있지만, 결국 다른 형태로 비용을 치르게 된다.


이러한 왜곡을 보완하기 위해 추가로 도입된 것이 차량 5부제다. 가격으로 수요를 조정하지 못하자, 정부는 행동을 직접 제한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특정 요일에 차량 운행을 금지함으로써 석유 소비를 강제로 줄이려는 시도다. 즉, 하나의 정책이 만든 문제를 또 다른 정책으로 보완하는 구조다.


그러나 이 역시 완전한 해법은 아니다. 규제가 도입되면 사람들은 이를 회피하려는 행동을 보인다. 일부 운전자는 규제가 덜한 공간을 찾아 이동하고(이를테면 2부제를 시행 중인 청사 주차장 대신 5부제를 시행하는 공원 주차장을 이용하는 등), 따라서 정책 효과는 약화된다. 또한 대중교통 접근성이 낮은 지방에서는 차량 제한이 더 큰 불편과 비용으로 이어진다. 같은 정책이라도 개인의 여건에 따라 부담이 달라지는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일률적 규제는 추가적인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이동 시간이 늘어나고 업무 효율이 떨어지는 등 보이지 않는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절감되는 연료비보다 더 큰 비용이 생길 가능성이 존재할 수도 있다. 이는 가격을 통한 자율적 조정보다 비효율적인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결국 두 정책의 병행은 가격과 수량을 동시에 통제하려는 시도다. 시장이 스스로 균형을 찾도록 두기보다, 가격은 억제하고 수요는 행정적으로 제한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접근은 단기적으로는 민생 안정 등의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시장 기능을 약화시키고 추가적인 비용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


우리 일상에서도 이 원리는 쉽게 확인된다. 할인 행사가 열리면 필요 이상으로 구매하고, 가격이 오르면 소비를 줄이거나 대체재를 찾는다. 가격은 강제하지 않아도 행동을 변화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신호다. 그렇기에 가격 메커니즘을 무시한 정책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기 쉽다.


결국 경제적으로 바람직한 선택과 정치적으로 바람직한 선택은 다를 수 있다. 정부는 단기적 안정과 장기적 효율 사이에서 균형을 고민해야 한다. 시장을 보완하는 개입은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시장 신호를 얼마나 왜곡하는지, 그리고 그 비용이 누구에게 전가되는지에 대한 성찰이 뒤따라야 한다.


시장경제는 완벽하지 않지만 스스로 조정되는 힘을 가진 체계다. 이를 거스르는 정책은 불가피할 수 있으나, 그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가 얻는 편익 뒤에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존재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