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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동결 15년, 정말 대학생을 위한 정책인가

글쓴이
임기성 2026-05-27

"등록금이 안 올라서 다행이다." 매 학기 고지서를 받을 때마다 솔직히 드는 생각이다. 2009년부터 이어진 등록금 동결 덕분에 우리는 15년 넘게 거의 같은 금액을 내고 있다. 정치인들은 이걸 청년을 위한 성과라고 내세운다. 그런데 가끔 이런 의문이 든다. 등록금은 그대로인데, 왜 대학 생활의 질은 점점 나빠지는 걸까.

강의실 의자는 삐걱거리고, 냉난방은 매년 같은 민원이 반복된다. 실험 장비는 10년 전 것이고, 수강 신청 때마다 폐강 공지가 쏟아진다. 사립대학은 운영수입의 절반 이상을 등록금에 기대고 있다. 그 돈이 15년째 묶여 있는 동안 물가는 약 40% 가까이 올랐다. 대학 입장에서 실질 수입이 계속 줄고 있는 셈이니, 어딘가에서 비용을 깎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혜택을 보고 있다는 말은, 적어도 교실 안에 앉아본 사람의 입에서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경제학에서 가격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일종의 신호다. 값이 오르면 공급자는 더 좋은 품질로 응답할 유인을 갖게 되고, 값이 강제로 묶이면 품질을 낮춰서라도 버텨야 한다. 등록금 동결이 딱 이 경우다. 실제로 사립대의 전임교원 비율은 최근 몇 년 사이 46% 대에서 42% 대로 떨어졌고, 빈자리를 계약직 강사가 채우고 있다. 빵 가격을 억지로 잡아두면 제빵사가 밀가루 등급을 내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격표는 그대로인데, 우리가 실제로 받는 가치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고 있을까. 호주에는 HECS-HELP 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다. 대학이 등록금을 자율적으로 정하되, 학생은 재학 중에 돈을 내지 않는다. 졸업 후 연소득이 일정 기준을 넘어야 비로소 갚기 시작하고, 소득이 적으면 상환이 자동으로 유예된다. 이자도 시중금리가 아니라 물가상승률에 연동되니 부담이 크지 않다. 핵심은 등록금 자체를 틀어막는 대신, 갚는 방식을 유연하게 설계했다는 점이다. 대학은 좋은 교육을 제공해야 학생이 오니까 자연스럽게 경쟁이 붙고, 학생은 졸업 후 소득에 맞춰 갚으니 재학 중 부담이 없다. 가격을 통제한 게 아니라 부담의 시점을 옮긴 것이다. 돌이켜보면 꽤 상식적인 발상이다. 교육에 투자한 만큼 소득이 늘면 그때 갚고, 그렇지 못하면 기다려주는 것. 우리가 등록금을 동결하면서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면, 이쪽이 훨씬 합리적인 접근이 아닌가 싶다.

사실 등록금 동결이 가장 아이러니한 지점은 따로 있다. 이 정책이 지키려는 바로 그 대상,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등록금 수입이 정체되면 대학이 가장 먼저 줄이는 것 중 하나가 교내 장학금 재원이다. 국가장학금이 늘긴 했지만, 대학 자체적으로 주는 장학금 여력은 갈수록 빠듯해지고 있다. 모든 학생에게 고르게 돌아가는 '싼 등록금'을 유지하느라, 정작 장학금이 절실한 학생에게 돌아갈 몫이 줄어드는 구조다. 혜택은 모두에게 얇게 퍼지고, 피해는 가장 약한 쪽에 집중된다. 보호하겠다던 사람을 가장 먼저 밀어내는 셈이니, 이만큼 아이러니한 정책도 드물다.

물론 등록금 인상은 학생과 가계에 부담이다. 특히 저소득층에게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건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고, 그래서 등록금 동결이 이렇게 오래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격을 누르는 것만으로는 답이 되지 않는다. 등록금 동결은 체온계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열이 내렸다"고 안심하는 것과 비슷하다. 숫자는 잡았는데 병은 그대로다. 진짜 필요한 건 대학끼리 교육의 질로 경쟁하게 만들고, 학생이 정보를 가지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등록금 부담은 호주처럼 소득에 연동된 상환 제도와 장학금 확충으로 풀어야 한다. 값을 묶어두는 것보다 선택지를 넓히는 쪽이 결국 더 오래간다.

우리가 대학에 내는 돈은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투자다. 그 투자의 가치를 지키는 길이 정말 가격을 묶어두는 것인지, 이제는 솔직하게 물어볼 때가 됐다. '값싼 교육'을 택할 것인가, '가치 있는 교육'을 택할 것인가. 가격을 억누른 대가는 결국 교육의 질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