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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선택론 혁명은 왜 승리에 못 미쳐 중단되었는가?

글쓴이
랜들 G. 홀콤 2026-05-22

공공선택론은 정치적 의사 결정을 분석하는 데 경제학 방법들을 적용하는 것이다. 공공선택론 혁명 전에는, 대학 교수와 정책 분석가들은 일단 “최적” 행동 방침이 확인되면, 정부가 그 행동 방침을 따를 것이라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공공선택론은 정부 의사 결정자들이 최적 행동 방침을 확인할 충분한 정보를 가지지 않을지 모르고, 설사 그들이 [충분한 정보를] 가진다고 할지라도, 그 행동 방침을 완수할 유인을 가지지 않을지 모른다는 점을 인정한다.

현실 세계 시장들에 존재할 수 있는 문제들을 이상적인 정부 관념과 비교하는 대신에, 공공선택론은 [시장들과 정부] 양쪽 다를 분석하는 데 똑같은 방법들을 사용하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정부 개입이 종종 문제들을 해결하기보다 그것들을 악화시킨다는 점을 드러낸다.

학문 연구의 영역으로서, 공공선택론은 매우 성공적이었고, 공공선택 접근법은 자기 자신의 학문적 틈새시장을 텄다. 그러나 공공정책을 분석할 때는, 대학 교수와 공공정책 분석가들 양쪽 다 공공선택론의 교훈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그들이 문제들을 인식할 때는, 정부가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최적 행동 방침을 추구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공공선택 혁명은 승리에 못 미쳐 중단되었는데, 왜냐하면 비록 그것의 교의들이 광범위한 학문적 수용을 발견했다고 할지라도, 현실 세계 문제들에 대한 현실 세계 해결책들이 토론될 때는 그것의 교훈들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부 프로그램들과 정책들의 집행을 특징짓는 현실 세계 복잡성들을 고려하기보다 정부가 전지하고 자비로운 독재자로 행동한다고 가정한다.

공공선택론 혁명은 올해[2012년] 50살이고, 1962년에 제임스 M. 뷰캐넌(James M. Buchanan)과 고든 털럭(Gordon Tullock)이 쓴 ≪국민 합의의 분석(The Calculus of Consent)≫(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040036)과 함께 시작됐다. 뷰캐넌과 털럭 이전의 학자들도 경제학 방법들을 사용하여 정치적 의사 결정을 분석했었지만, 이 책은 혁명을 시작했는데, 왜냐하면, 첫째, 그것이 출판되었을 때 그것이 아주 잘 받아들여졌고, 둘째, 뷰캐넌과 털럭이 계획을 속행하여 자신들을 위해 그리고 비슷한 관심들을 가진 다른 학자들을 위해 연구 프로그램을 수립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개최한 초기 회합들은 공공선택학회(Public Choice Society)(https://www.publicchoicesociety.org/)로 진화했는데, 이것은 오늘날 매우 활동적인 채로이고, 고든 털럭은 학술 잡지 ≪공공선택론(Public Choice)≫(https://link.springer.com/journal/11127)을 창간했는데, 이것은 경제학, 정치학, 그리고 그 너머에서 확고한 평판을 누리고 있다. 학문 연구의 영역으로서, 공공선택론은 잘 확립되었고 매우 성공적이다.

그러나 공공선택론은 학계에서 틈새시장 영역으로 생각되고, 실제 정책 조치들이 고려되고 있을 때 그것의 교훈들은 경제학자들, 정치학자들, 혹은 공공정책 분석가들에 의해 적용되지 않는다. 경제학자들이 거시경제 안정화 정책을 고찰할 때, 그들은 최적 정책들을 도출하고, 그다음 정부가 그것들을 수행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경제학자들이 조세 정책을 분석할 때, 그들은 최적 과세 정책들을 도출하고 정부가 그것들을 수행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대학 분석가들은 실제 정치 과정이, 대학 교수들이 최적이라고 말하는, 정책들을 낳을 수 있는지 평가하는 데 좀체 정부 의사 결정 과정을 고찰하지 않는다.

이 관찰은 흠잡기가 아니다; 그것은 경제학자들과 그 밖의 사람들이 정부 활동들을 분석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비판이다. 경제학자들은 유인들이 민간 부문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방식, 그리고 정보의 이용 가능성이 경제 결과들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방식을 분석하기 위한 방법들을 개발하면서 수 세기를 보냈다. 공공선택론은 경제학자들이 시장들의 분석에 성공적으로 적용한 바로 이 교훈들이 또한 정부 의사 결정에도 적용된다고 주장하는데, 그래서 그것들을 무시하는 것은 잘못된 정부 분석을 추구하는 것이다.

공공선택론의 통찰들이 없는 경제학적 정부 분석은, 대체로 알려져 있고 공공선택론에서 명백히 표현된 이유들로, 옳지 않지만, 대부분 경제학적 정부 분석은 이 잘못된 방법론을 유지한다.

경제학자들과 정책 분석가들은 왜 공공선택론의 교훈들을 무시하는가? 여러 가능성이 생각이 난다. 하나는 정치권력을 소유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여기에 최적 해결책이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나를 당신의 고문으로 고용한다면, 내가 그것을 집행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분석가들을 고용하기를 선호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비록 여기에 몇몇 문제가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개선점을 집행하기에 불충분한 정보가 있고, 어떤 해결책이든 집행해야 할 의사 결정자들이 하여간 그렇게 할 유인을 지니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분석가보다 더 잘 팔린다.

자기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부의 강제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부 개입이 사정을 개선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보다 정부 정책 결정자들에 의해 더 많이 수요될 것이다. 정책 결정자들이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고문들을 선호할까 아니면 “정부 개입이 아마도 그 문제를 더 악화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고문들을 선호할까?

또 하나의 이유는 학문 기업에서 사용되는 방법들에 기댄다. 이론가들은 최적해들의 조건들을 도출하기 좋아하고, 상아탑으로 격리되어서, 그들은 자기들이 최적해들을 발견했으므로 그것들을 집행하는 것이 실제로 정책 결정자들의 일이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학문 기업 안에서, 학술 잡지들에의 발표들에 프리미엄이 놓이기도 하고, 공공선택론 개념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학자들은 그것들을 비슷한 연구 의제를 가진 다른 학자들에게 납득시키는 것이 더 쉽기도 할 것이다. 한 결과는 종종 공공선택학자들이 공공선택론에 적대적인 연구 영역들에 침입하려고 하기보다, 자기들의 연구가 더 쉽게 받아들여지는, 서로를 위해 글을 쓴다는 점이다.

학문 시장은 일을 경제 시장들과 같은 식으로 평가하지 않고, 용인된 주류 연구에 도전하는 연구보다 종종 우아하지만 부적절한 (혹은 심지어 틀리기조차 한) 논문들이 더 높게 평가되는데, 이 매우 통찰력 있는 논문이 주장하는 바와 같다.
https://mises.org/mises-review/who-killed-constitution-fate-american-liberty-world-war-i-george-w-bush-thomas-e-woods-jr?d7_alias_migrate=1&control=111

토론에 약간의 구체성을 보태면, 우리는 특수 이해관계자들이 공공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일반 대중을 희생하면서 자기들에게 이롭도록 정책들을 조종한다는 점을 안다. 우리는 정부 기관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승진에 관해 자기들 자신의 개인적 유인들에 직면하지만, 동시에 공익을 증진함으로써 개인적으로 거의 이익을 얻을 것 같지 않다는 점을 안다. 그들은 위험 회피적인데, 왜냐하면 그들이 성공들의 명성을 거의 얻지 못하지만 실패들의 상당한 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관료들이 자기들의 예산들에 덧대기를 원한다는 점을 알고, 만약 관료들이 쓰지 않으면 그들이 다음 예산 주기에서 그것을 잃기 때문에 자기들에게 배분된 모든 것을 쓴다는 점을 안다. 우리는 효율을 잴 이윤과 손실 시험이 없을 때 비용들을 줄일 유인이 거의 없다는 점을 안다. 우리는 민주적 의사 결정이, 불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투표자들로 시작하는, 많은 이유로 항상 최적 공공정책들에 이르지는 않는다는 점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교수들과 정책 분석가들은 우리가 정부 의사 결정에 관해 아는 이것들과 그 밖의 것들을 무시하고 정부가 전지하고 자비로운 독재자처럼 행동한다고 가정한다.

학문 기업으로서, 공공선택론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공공선택론의 교훈들이 정책 결정자들과 대학 교수들에 의해 무시되었기 때문에 공공선택론 혁명은 승리에 못 미쳐 중단되었는데, 그들은 너무나 자주, 심지어 최적 정책을 발견할 불충분한 정보가 있을 때조차도, 그리고 설사 정책 결정자들이 그것이[최적 정책이] 무엇인지 안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그것을 집행할 유인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도, 정부가 그것을 추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공공선택론 혁명이 승리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분석가들은, 지금 전형적이듯이, 실제로 달성될 수 없는 결과를 가정하기보다 공공정책이 설계되고 집행되는 실제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랜들 G. 홀콤(Randall G. Holcombe)은 독립 연구소 선임 연구위원, 플로리다 주립 대학교 드보 무어(DeVoe Moore) 경제학 교수, 그리고 독립 연구소 책 ≪위험에 처한 자유: 미국 역사에서 민주주의와 권력(Liberty in Peril: Democracy and Power in American History)≫의 저자이다.
원문은 https://www.independent.org/article/2012/06/06/why-has-the-public-choice-revolution-been-stopped-short-of-victory/에서 읽을 수 있다.
번역: 황수연[미제스와이어(https://mises.kr)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