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싼 의료 vs 비싼 대기, `본인부담금` 높이고 `가치기반 지불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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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한민 2026-04-14 , 마켓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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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연간 외래 진료 횟수, OECD 평균의 두 배 상회하는 세계 최고 수준 / 무분별한 과잉 소비 건강 보험 재정 갉아먹고 위급한 중증 환자 기회 박탈 / 진료 횟수와 비례해 수익을 가져가는 '행위별 수가제’ 과잉 진료 부추겨 / 치료 '성과’ 기준으로 '가치 기반 지불제도’ 도입, 병원 간의 경쟁 유도 바람직
대학병원 진료실 앞, 3분 남짓의 진료를 받기 위해 3시간을 대기하는 풍경은 이제 한국 의료의 일상이 되었다. 환자들은 단 한 번의 진료를 위해 차가운 대기실에서 기약 없이 대기한다. 막상 진료를 받는 시간은 허망할 정도로 짧지만, 누구도 이 비정상적인 기다림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왜 이토록 긴 대기 시간과 짧은 진료라는 비효율적 구조를 낳았을까?
이는 한국인의 의료 쇼핑 습관이 불러온 여파다. 한국인의 연간 외래 진료 횟수는 OECD 평균의 두 배를 상회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민이 유독 약해서일까? 아니다. 그 이면에는 소위 '의료 쇼핑’이라고 불리는 기형적인 행태가 자리 잡고 있다. 감기나 가벼운 경증 질환에도 본인부담금이 낮다는 것을 이용하여 대형병원을 습관적으로 찾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이러한 무분별한 과잉 소비는 건강 보험 재정을 갉아먹고, 정작 생명이 위급한 중증 환자들의 기회마저 박탈한다.
그렇다면 이런 의료 쇼핑은 무엇의 영향일까? 가격 신호의 왜곡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본인부담금은 커피 한 잔도 채 되지 않는 값이다. 누구나 부담 없이 조금이라도 몸이 안 좋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구조이다. 이는 병원 문턱을 너무 낮추는 결과를 초래했다. 실제로 병원을 가보면 경증 환자가 병원을 가득 채워, 중증 환자가 '골든 타임’을 놓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완전히 무너진 결과로 볼 수 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이러한 현상은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에 해당한다. 보험이라는 안전망이 개인의 부담금을 낮출 때, 소비자는 자원의 희소성을 잊고 이를 과도하게 남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낮은 본인부담금은 '일단 조금만 아프면 가고 보자’라는 생각을 심어주어 무분별한 수요를 창출하는 기폭제가 된다. 내 지갑에서 당장 많은 돈이 나가지 않는다는 인식이 국가 전체의 소중한 의료 재원을 마치 무한재(無限財)인 것처럼 여기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단순히 개인의 도덕적 결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인간은 보상과 비용이라는 인센티브 구조에 따라 움직이는 경제적 주체이다. 현재의 의료 시스템은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사람보다, 의료 서비스를 더 많이 이용하는 사람에게 더 큰 혜택이 돌아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런 잘못된 설계가 합리적인 경제인을 도덕적 해이의 주범으로 내몰고 있을 뿐이다.
수요 측면의 과잉 소비만큼이나 심각한 지점은 의료 공급 체계의 보상 구조다. 현재 우리나라 병원들은 진료 횟수와 비례하게 수익을 가져가는 '행위별 수가제’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병원은 얼마나 정교하게 질병을 치료하는지보다, 얼마나 많은 진료를 보는지에 대한 '양적 팽창’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인다. 의료인이 제공하는 행위 하나하나가 곧 수입으로 직결되는 획일적인 수가 체계는 불필요한 과잉 진료를 부추기는 또 다른 원인이 된다.
획일적인 보상 체계의 대안으로 이제는 의료의 질적 성과에 따라 보상을 차등화 하는 '가치 기반 지불제도’를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진료의 '양’이 아닌 치료의 '성과’를 기준으로 병원 간의 건전한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다. 병원들이 더 나은 결과를 내기 위해 질적 경쟁을 수행할 때, 그 혜택은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간다. 즉, 공급자 간의 효율적인 성과 경쟁이 의료 서비스의 수준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소비자 후생을 극대화하는 열쇠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의료 현장의 비효율을 바로잡는 출발점은 '가격의 신호등’을 다시 켜는 데 있다. 본인부담금의 조정은 국민의 부담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무분별한 남용을 막아 간절히 필요한 사람에게 의료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좋은 선택이다. 밀턴 프리드먼의 경고처럼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값싼 진료’의 계산서를 미래 세대에 넘겨주지 않기 위해, 이제는 의료 서비스에 시장의 원리와 자기 책임의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할 때이다.
이한민 자유기업원 인턴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