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운전하지 않을 자유를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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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정필립 2026-03-17 , 시장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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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이모의 20만 건 주행 vs 한국의 갇힌 시범 서비스
'안전' 뒤에 숨은 기득권 보호와 관치주의 규제의 모순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로, 사후 책임 중심의 규제 패러다임 전환 필요
미국에서는 약 60만 대의 개인용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달리고 있으며, 캘리포니아·텍사스·애리조나 주에서는 운전자가 탑승하지 않은 로봇택시가 일상적으로 운행된다. 웨이모(Waymo)는 주당 20만 건 이상의 유료 승차를 처리하고, 테슬라는 수십만 대 규모의 자율주행 차량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학습에 반영한다.
반면 한국은 어떠한가. 서울자율차와 같이 지정된 경로, 지정된 시간에만 운행하는 시범 서비스를 허용할 뿐, 개인이 자율주행차를 구매해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는 단순히 기술 격차의 문제가 아니다. 규제 설계의 문제다. 이미 대한민국은 택시 면허라는 특수 권리로 시장에 신규 공급자의 진입을 가로막고 있다. 타다(TADA) 사태에서 목격했듯이, 혁신적 이동 수단이 등장할 때마다 기존 업계의 반발과 정치적 압력이 규제의 벽을 더 높이 쌓았다.
이는 공급자 증가로 인한 소비자 효용 증가를 원천 차단하고, 기존 특권자의 수익을 보전해주는 꼴이다. 소비자는 더 낮은 가격, 더 나은 서비스를 누릴 기회를 체계적으로 박탈당하고 있다.
규제 당국은 '안전성'이라는 이유로 자율주행차에 대해 강도 높은 인·허가 기준을 제시한다. 물론 안전은 중요하다. 그러나 현행 규제가 실질적으로 함의하는 바는 기술 혁신의 억제이자 기존 산업에 대한 보호무역이며, 소비자 효용 증가의 봉쇄다. 안전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정작 매년 수천 명의 사망자를 내는 인간 운전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지 않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자율주행 기술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 테슬라 및 웨이모와 한국 기업의 기술 격차는 5년 이상이라는 분석이 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기술 격차 자체가 아니라, 이 격차가 벌어지는 구조적 원인이다. 201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자율주행 관련 규제 환경에 있어서, 미국은 기업이 먼저 기술을 개발하고 도로에서 시험하며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그러나 한국은 정부가 허가한 범위 안에서만 제한적으로 실험을 허용했다. 규제 당국이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도 허가권을 놓지 않는 한, 혁신의 유인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시장이 먼저 반응하고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관치주의적 규제, 즉 정부가 기술의 적합성을 사전에 판단하고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혁신이 가능하다.
구체적인 전환 방향은 명확하다. 법에서 허용한 행위만 허용하는 '포지티브 규제'에서, 법에서 금지한 행위가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이다. 자율주행차가 특정 안전 기준을 충족한다면, 정부가 일일이 경로와 시간대를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로 위의 자유로운 운행을 보장해야 한다. 사후적으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묻는 체계를 갖추되, 사전적으로 혁신 자체를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운전하지 않을 자유는 기술이 이미 가능하게 만든 자유다. 이 자유를 가로막는 것은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규제의 관성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규제의 벽 안에서 기술 후진국으로 남을 것인가, 시장과 소비자에게 자유를 돌려주어 혁신의 선두에 설 것인가.
정필립 자유기업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