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콜로키움] 트럼프의 착각_국가와 회사는 다르다.pdf
제4회 시장경제콜로키움
일시: 2025년 3월 21일 오전 11시, 장소: 열림홀
주제: 트럼프의 착각: 국가와 회사는 다르다
발표: 권혁철 자유시장연구소 소장
토론: 안재욱 자유기업원 이사장, 김영용 전남대학교 명예교수,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트럼프의 착각: 국가와 회사는 다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예고했던 대로 이른바 '관세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는 최근의 한 인터뷰에서 4월 2일로 예고된 '상호관세’ 시행일이 '미국 해방일’이 될 것이라며 자신의 정책이 사실상의 '전쟁’임을 선포했다. 정치적 또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중국을 상대로 관세 전쟁을 벌이는 것에 대해서는 그나마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마디로 적성국이든 우방국이든 관계없이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을 상대로 관세 전쟁을 벌이고 전선을 확대하고 있는 중이다. 앞서 언급한 인터뷰에서 그는 “우리는 미국이 '강간’과 '약탈’을 당하도록 허용했다....우리는 세계 모든 나라, 친구와 적국으로부터 갈취당했다”며 “많은 우방국들의 소행”이라고도 했다.
그가 말하는 '갈취’ '강간’ '약탈’의 내용은 이렇다. 미국의 수입 관세는 없거나 낮은 반면, 다른 나라에서의 미국 물건 수입 관세는 상대적으로 높다; 그러다 보니 미국 물건은 팔리지 않는 반면에 저가 수입품이 밀려 들어와 미국의 생산자에게 피해를 준다; 미국 생산자들이 생산을 줄이거나 문을 닫아 좋은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진다; 실직한 근로자는 저임금의 일자리로 옮겨갈 수밖에 없고, 그것은 또 다시 메디케이트(저소득층 의료보험) 등 정부의 복지 지출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미국은 '갈취’ 당하고 '약탈’ 당해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는 반면에, 세계 모든 나라가 미국을 갈취하고 약탈해서 잘먹고 잘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도 관세 장벽을 쌓아 외국 수입품의 유입을 차단하거나 줄이면 미국 제조업의 좋은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고, 이에 따라 나머지 문제들도 자동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는 이렇게 선언한다. “이제 그들이 지불할 차례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 교역 관계를 '강간’ '약탈’ 등의 극단적인 단어로 묘사하면서 관세 전쟁을 벌이는 이유 내지 명분은 다음과 같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나는 오직 미국의 이익을 대변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 관세 전쟁을 통해 “미국은 세계에서 역사상 가장 강력한 경제를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즉, 그는 국제 교역을 상호 이익이 되는 윈윈(win-win) 게임이 아니라, 국가간 '죽기 살기 식’(win-lose)의 제로섬 게임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이 게임에서 미국의 이익을 위해 관세 전쟁을 벌이고 승리함으로써 '역사상 가장 강력한 경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은 대단한 착각에 기인한 어리석은 망상에 불과하다. 한 기업(그룹)의 수장이었던 트럼프는 자신이 '미국이라는 회사’의 수장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이 '유럽이라는 회사’ '일본이라는 회사’ '한국이라는 회사’ 등과 국제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착각에 근거한 관세 전쟁이 의도했던 결과로 이어질 리는 만무하다. 이미 잘못된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는 말이다. 관세 전쟁을 오래 끌면 끌수록, 미국의 경제가 강력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어려움에 빠질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경제 모두를 어려움으로 몰아갈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착각하고 있는 것, 즉 국가와 회사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몇 가지만 살펴보자.
우선, 그는 회사와 마찬가지로 국가에도 단일의 목표, 단일의 이해가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오직 미국의 이익을 대변한다.” 즉, '미국의 이익’이 있다는 것이다. 회사의 경우, 이윤 극대화가 단일의 목표라 할 수 있고, 이 목표는 회사의 모든 구성원이 공유한다. 그런데, 국가에도 모든 구성원이 공유하는 그런 단일의 목표와 이해가 있을까? 트럼프의 생각에는 수입을 금지하고 미국에서 생산케 하면 그것이 미국의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인 중에는 생산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값싸고 질 좋은 수입품을 소비하는 소비자도 있다. 또 생산자 중에서도 수입한 생산요소를 사용하여 물건을 만들어 파는 생산자도 있다. 이들은 관세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당하게 된다. 포드자동차 등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미 관세가 “업계에 막대한 비용과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고, 또 소비자들은 관세로 인한 가격 상승에 불만을 가질 것이다. 즉, 미국인이 공유하고 있는 단일의 '미국의 이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최소한 경제 문제에서는. 단일의 '미국의 이익’이 있다는 것은 트럼프의 착각일 뿐이다. 한편, 이러한 미국인의 상반된 이해는 트럼프의 관세 전쟁이 오래 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둘째, 트럼프는 국가도 기업이 경쟁하는 것처럼 경쟁한다고 착각하고 있다. 몇 년 전 레스터 써로우(Lester Thurow)가 쓴 책 Head to Head에서 보여주는 것도 동일한 착각에 기인한다. 이 책에서 써로우는 국제 교역을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경쟁을 하는 전쟁터’라고 보았다. 전형적인 착각이며 오해이다. 국가들은 회사들이 경쟁하듯이 경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현대기아차와 도요타자동차가 경쟁을 하여 현대기아차가 크게 성장하고, 반면에 도요타자동차는 퇴보하거나 몰락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현대기아차에는 좋은 일이다. 그런데, 만약 일본 경제가 추락하면 한국 경제에 이로울까? 한국 경제에는 우리 물건을 살 여력도 없는 북한과 같은 그런 가난한 나라보다는 우리 물건을 많이 사 줄 여력을 가진 부자 나라가 더 필요하다. 회사간의 경쟁에서와는 달리 국가간에는 이웃이 잘 살아야 우리도 좋은 법이다. 국가간 '죽기 아니면 살기 식’ '뺏고 빼앗기는 식’의 경쟁을 한다는 것은 착각이다.
셋째, 트럼프가 특히 '무역수지 흑자국’을 언급하며 관세 전쟁 운운하는 것은 그가 국가의 무역수지와 회사의 대차대조표를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며, 그것이 국가의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그는 무역수지의 흑자를 회사의 이윤처럼 생각하고 (또 경쟁력이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무역수지 적자를 회사의 손실과 같이 생각한다 (또 경쟁력이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국가의 무역수지와 회사의 대차대조표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무역수지는 자본수지와 함께 한 국가의 국제수지를 이루는 부분 수지일 뿐이다. 즉, 재화의 흐름을 기록하는 무역수지와 자본의 흐름을 기록하는 자본수지가 함께 국제수지를 이룬다. 주목할 것은, 무역수지의 흑자는 자본수지의 적자와, 그리고 무역수지의 적자는 자본수지의 흑자와 연관된다는 점이다. 이 관계를 간단히 예시하자면, 한 가정이 버는 돈보다 더 많이 썼다면, 그 차액은 차입금으로 충당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국가가 수출보다 수입이 많다면(=무역수지 적자), 그것은 차입금(=자본유입=자본수지 흑자)으로 충당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즉, 무역수지 흑자는 자본수지 적자로 나타나고, 무역수지 적자는 자본수지 흑자로 나타난다는 말이다. 무역수지의 흑자 혹은 적자가 회사의 이윤 혹은 손실과는 전혀 다른 성격이다.
넷째, 게다가, 무역수지 흑자 혹은 적자가 그 국가의 경쟁력을 나타내는 지표라는 생각도 회사와 국가를 혼동하는 대단한 착각이다. 회사의 경우에는 흑자 혹은 적자가 그 회사의 경쟁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국가의 무역수지의 경우에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만약 무역수지가 흑자인 경우, 앞서 언급했듯이, 자본수지는 적자를 보인다. 즉, 무역수지가 흑자인 경우 자본이 해외로 유출된다는 말이다. 반대로, 무역수지가 적자인 경우 자본수지는 흑자를 보이고, 이는 자본이 국내로 유입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무역수지 흑자 경제와 자본이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무역수지 적자 경제 중 어느 경제가 더 경쟁력 있는 경제일까? 참고로 우리나라의 경우, 고도성장 기간 중에 한국은 무역수지 만년 적자국이었고, 반면에 자본수지는 만년 흑자였었다. 한국 경제가 장기간에 걸친 고도성장을 이룬 그 기간을 일러 무역수지가 적자였으니 경쟁력이 없던 기간이라고 판정한다면 과연 그것이 옳은 판정일까? 무역수지 흑자 또는 적자를 국가의 경쟁력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다른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착각과 오해에 근거하여 정치인들이 벌이는 경제 정책은 경제를 질곡으로 떨어뜨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정치인들이 관세 전쟁과 같은 '경제 파괴 정책’을 들고 나오는 이유는 그것이 정책 실패를 덮거나 정치적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좋은 면피용 구실을 제공하거나 반시장적 정책을 펴는 좋은 구실 또한 제공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관세 전쟁이 다시 불붙기 시작하는 지금은 (올바른) 경제학에 대한 이해와 교육이 대단히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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