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우리 사회에 막 유행하기 시작한 대중경제지식들, 예를 들면 노동조합의 경영참가, 이해당사자 자본주의(stakeholder`s capitalism), 경영투명성 강화 등과 같은 구호와 이를 관철하기 위한 정책들의 옳고 그름을 따져보고자 한다. 필자는 이 같은 구호나 정책들의 대다수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기업경영과 경영하는 권리, 즉 경영권에 대한 잘못된 대중경제지식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본질을 `계약의 종합체(a nexus of contracts)`로 이해한다면, 계약에 참여한 사람들은 권리의 주체이자 의무의 주체가 된다. 기업의 소유자는 계약 수행을 주도하는 위치에서 세 가지의 권리를 갖게 된다. 첫째, 계약을 맺은 생산요소 공급자들의 활동을 감독, 조정,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둘째, 기업활동에서 발생한 이익 가운데 계약에 따라 일정한 급여와 이자를 지불한 나머지를 가질 수 있는 권리, 다시 말하면 잔여이익에 대한 청구권, 즉 잔여청구권(residual claim)을 가진다. 셋째, 생산요소 공급자들과 계약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계약갱신권을 갖게 된다. 또한 기업 소유자는 이 같은 권리의 주체가 됨과 동시에 생산요소 공급자에 대해서 계약조건에 따라 일정한 급여와 이자 등을 지불할 의무를 지게 된다. 반면에 생산요소 공급자는 기업의 소유자에게 자신이 제공한 생산요소의 대가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짐과 동시에 소유자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서 기업활동에 종사할 의무를 지게 된다.
주식회사(corporation)는 자본이 주식으로 분할되어 주식의 인수를 통해 출자하거나 기발생주식을 취득함으로써 주주가 되며, 주주는 주식의 인수가격의 한도에서 출자의무를 질 뿐(有限責任), 회사채무에 대해서는 직접 책임을 지지 않는 형태의 회사를 뜻한다. 주식회사의 지배주주가 갖는 의사결정이나 이익배분 권한은 고전기업에서 소유주가 갖는 권한의 본질이나 속성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주식회사에서 지배주주가 자본조달을 위해 불가피하게 일정한 계약에 따라 자신의 권리를 양보한 점을 고려하면, 지배주주나 그밖에 주식회사의 이해당사자들이 기업경영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동등하다고 할 수 없다. 지배주주(혹은 지배주주가 인정한 경영자)가 계약의 주체인 반면 다른 이해당사자들은 계약파트너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주식회사에서 기업경영이나 지배문제는 기업활동과 관련된 다른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할 명확한 근거가 없다. 고전기업이건 주식회사건 간에 경영하는 권리에 대한 문제는 회사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 사람들의 권리라고 할 수 있다.
`경영권`의 본질과 그 속성은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표이사는 단순히 결의된 사항을 집행하는 수동적인 사람이 아니다. 이사회와 주주총회에서는 고작해야 회사가 수행해 나갈 사업의 전체 윤곽만을 예상하고, 이를 승인할 뿐이다. 전체 윤곽내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물을 채워갈 것인지, 그리고 이를 추진하는 이해당사자들을 어떻게 독려해 나갈 것인지는 전적으로 대표이사의 업무에 속한다. 일단 사업기회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고 난 다음, 경영자는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인적자원이나 금융자원 등을 포함한 기업의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경영권의 두 번째 핵심요소는 기업자원을 경영자가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가장 효율적으로 조정, 통제,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이다. 따라서 경영권은 대표이사가 가진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권한과 사업수행에 필요한 조정, 통제,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뜻한다.
어떤 경영자가 회사의 공금을 유용하거나, 공금을 이사회나 주주총회의 결의도 없이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다면 이는 경영자의 전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경영자의 전횡을 이야기할 때 경영권 행사가 관련 이해당사자들의 합의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대표이사가 다른 임직원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는 것을 경영자의 전횡이라고 비난한다면, 이는 마땅히 제고되어야 한다. 경영자가 직무수행과 관련하여 임무를 소홀히 하여 발생했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소액투자자로부터 예상되는 빈번한 소송을 방지하기 위하여 상법은 경영판단의 법칙(business judgement rule)을 규정하고 있다. 대표이사 또는 임원이 성실하게 그리고 자신의 독자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에 의해 회사에 최선의 이익이라고 생각되는 방법으로 경영권을 행사했다면, 법원은 그 판단에 대해 잘잘못을 평가할 수 없다는 상법의 대원칙이 경영판단의 법칙이다. 한편 경영자의 전횡과 같은 맥락에서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이해할 수 있다. 공금의 유용이나 분식결산 등은 명백한 불법이다. 이 같은 행위는 투명성 자체를 운운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경영권의 행사는 투명성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경쟁자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개인이 일상생활에서 내리는 중대한 판단이나 결심은 결코 투명이나 불투명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치열한 경쟁이 늘 존재하는 상황에서 행사되는 경영권에 대해서도 투명이니 불투명이니를 논할 수가 없다.
경영자의 전횡을 막기 위해서, 혹은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 소액주주권 행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경영진이 위법적인 활동을 통해서 내린 의사결정이 소액주주에게 결정적인 피해를 입힌 경우에 경영진은 그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소수 주주들의 권리행사가 위법 활동에 대한 것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법의 대원칙인 경영판단의 원칙에 관한 것, 다시 말하면 고유한 경영권 행사에 대한 간섭으로 나타난다면 이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배주주의 전횡방지를 위해 소액주주의 권리 행사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필자는 다음의 두 가지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하나는 제도 개선을 고려함에 있어서 어떤 사회라도 소송비용의 증대와 이로 인한 기회비용의 증대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소수 주주권 강화를 위한 각종 규제조치들이 지배주주 혹은 소유주 경영자에 대한 잘못된 가정 혹은 편견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액주주권 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지배주주가 소액주주의 이익에 반해서 행동하는 것이 보편적이라는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자신이 내린 의사결정에 따라서 가장 큰 이익이 걸려있는 지배주주가 자신의 이익에 반하게 행동할 가능성은 확률로 보면 아무래도 아주 낮을 수밖에 없다.
경영민주화란 기업의 주식을 가진 자들이 경영권을 분점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다 경영권의 분점도 주주 개인의 자격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출신성분이나 이해가 같은 사람들끼리 함께 모여서 단체를 만든 다음 이 단체가 경영권 분점의 구심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때로는 주식을 갖지 않은 사람이라도 주식회사의 이해에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이해당사자들이 경영권을 나누어서 행사하는 것이 경영민주화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일부 노동단체가 주장하는 경영민주화의 핵심은 노동조합이라는 단체가 이해당사자의 입장에서 경영권 행사를 분점하는 교섭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경영민주화라는 용어는 노동조합의 경영참가를 정당화하기 위한 구호로 사용되고 있고, 이를 위해 만들어진 용어라고 이해된다. 앞에서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주식회사란 주주의 것이고, 주주를 대표하는 지배주주가 지명하는 경영자나 지배주주 자신이 계약의 주체가 되어 다른 이해당사자들과 맺은 계약관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경영권이란 노동조합을 포함하여 다른 이해당사자들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영권의 분점을 인정하지 않는데는 주요한 명분뿐만 아니라 보다 중요한 실질적인 이유가 숨어 있다. 경영권이 노동조합을 비롯한 이해당자자들에 의해서 분점되기 시작할 때, 그 기업경영은 반드시 오도된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산업민주주의론이나 경영민주화론에 대해서 이론적인 토대를 제공하는 일부 지식인들은 낭만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경영권 공유와 관련해서 또 하나의 새로운 개념으로 등장한 것이 이른바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라는 아이디어가 부활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사람으로는 아무래도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을 들 수 있다. 토니 블레어의 아이디어는 기업지배구조를 연구하는 일부 학자들에 의해서 이론적인 정당성을 제공받고 있다. 이른바 이해당사자 이론(stakeholder theory), 혹은 모델(model)에 입각해서 기업경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기업이란 단순히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기업은 사회적으로 책임있게 행동해야 하며 종종 다른 목적을 위해서 이윤극대화라는 목적을 양보하기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해당사자 모델의 입장에서 보면 기업은 기업에 직접적인 금전적 이익을 갖고 있는 주주들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의 개인과 그룹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넓은 의미의 이해당사자들에는 기업이 위치해 있는 지역사회의 구성원들, 소비자들, 채권자들, 종업원들, 때때로 사회나 환경 그리고 미래 세대까지도 포함된다.
특히 이해당사자 모델은 노동조합의 경영참가의 정당성을 제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필자는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나 이를 옹호하는 논객들의 주장이 앞에서 이미 설명한 경영민주주의나 산업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는 새롭게 포장되어 기업경영의 본질을 오도하는 좌파 이데올로기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는 근본적으로 기업과 경영권에 대한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한 개념이며, 주주 이외의 이해당사자들 모두를 위해 경영하는 것은 기업경영이 정치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기업경영의 실체를 정확히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업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생활수준의 향상은 고사하고 어려움에 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기업형태 가운데서도 주식회사라는 기업조직은 인류가 발견해 낸 괄목할 만한 발견물 가운데 한 가지이다. 주식회사란 지배주주나 지배주주가 임명한 경영자가 계약의 주체가 되어 만든 계약의 총합체이다. 그리고 지배주주나 경영자가 행사하는 경영권이란 고도의 종합적인 판단과 실천을 요구하는 것으로, 정치권력처럼 나누어 가지는 대상이 될 수 없는 지배주주나 경영자의 재산권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경영민주화, 산업민주주의론,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소수주주의 이익보호라는 대의명분을 달성하기 위해 경영권의 공유를 주장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경영권이 공유되기 시작하면 기업은 소비자 만족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라 기업내에 있는 각종 이익집단 만족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으로 타락하게 될 것이다. 경영권의 공유가 이루어진 기업은 결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합의를 얻는 데 따르는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필자가 걱정하는 점은 우리 사회에서 점점 경영권이 공유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져 올 파괴적인 결과를 생각할 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