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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9장~13장

글쓴이
자유주의 입문 독서토론모임 2026-01-27

책 제목 : 예루살렘 아이히만
저자 : 한나 아렌트
출판년도 : 1963년. (한국 2006년)
출판사: 한길사
해당 범위 : 9~13장

2025.1.22 목요일 pm9시
온라인 모임
참여자; kdg, Mori, 본투런, G, 나누리


kdg
내용 요약 : 홀로코스트가 유럽 전역에서 나치에 의해 또는 나치부역자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거에 대해 알게 되어 충격을 받았습니다.독일 외 지역의 나치 부역자들 중에는 자발적으로 잔인하게 유대인 박해에 가담했던 자들도 많았습니다.(홀로코스트 관련된 다른 책에서는 나치들도 놀랄 정도로 나치 부역자들이 잔인하게 유대인 박해에 가담했다고 합니다) 반유대주의가 유럽 전역에서 배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사실 유럽의 반유대주의는 히틀러 이전부터 존재했었습니다. 히틀러 때 반유대주의가 정점에 이른 것입니다.). 물론 전부가 나치에 동조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덴마크같은 경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유대인 구하기에 참여했습니다. 이 점을 위안 삼아야겠지요

느낀점 / 시사점 :이렇게 광범위한 지역에서 나치 또는 나치 부역자들의 협조를 얻어 홀로코스트가 자행된 것을 보고 유대인 학살에 사용한 에너지를 제 2차 세계대전에 썼다면 2차대전의 결말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증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나치와 같은 전체주의자들은 인명을 경시하고 폭압적이며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나치 점령지에서 더욱 더 잔인하게 유대인 말살에 동조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구요.




Mori
1942년 1월 반제회의에서 최종해결책을 구체적으로 거론하고 준비한 이후, 그리고 그 최종 해결책이 히틀러 몰래 폐기된 1944년 여름까지의 기간동안 아이히만은 양심문제로 번민하지 않았다는 대목이 그의 범죄의 본질을 잘 설명한다고 생각 들었습니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속한 전체주의 시스템에서 최상부의 의지가 무엇인지를 확인한 후 스스로를 그의 의지를 실행하고자 헌신했고, 그것이 그가 저지른 죄악의 본질이었습니다. 전쟁말기 독일의 패전이 짙어지자 자신의 죄악을 가리고자 기존의 최종해결책을 폐기하려한 다른 범죄자들과 달리 아이히만은 총통의 의지를 한결같이 실현하고자 노력하였고 그것이 그의 양심이라고 믿었습니다. 자신의 행동이 범죄임을 인식하면서 행동하였고,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개인의 장래를 위해 좋다는 생각이 들었을때 행동을 바꾼 범죄자들은 자신 안에서 개인주의적 성향을 버리지 않았기에 마지막 순간에라도 돌이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끝까지 전체주의에 헌신한 아이히만은 돌이킬 수 있는 순간에서도 희생자를 만들어냈고, 그것이 그에게 죄를 더 물어야 할 근거가 되었습니다. 개인주의를 버린 죄 말입니다.
이번 파트는 유럽 각국의 유대인 학살이 어떻게 펼쳐졌는지, 그 암담한 순간에도 어떤 영웅적 행동들이 혹은 어떤 인간적 주저가 많은 생명을 구했는지 세부적인 모습들을 보여주며, 아이히만의 진술, "모든 것은 늘 항시적인 유동성 속에, 즉 계속 흐르는 강과 같은 상태로 있었다"는 말이 사실과 달랐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나찌의 유대인말살정책이 사실은 일괄적으로 똑같이 이뤄지지 않았고, 각국의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했느냐에 따라 나찌의 행동도 달라졌습니다. 이는 전체주의 정부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단선적 특징이 있다는 생각은 그저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아무리 강고해 보이는 전체주의 체제일지라도 자신의 영역 내에선 개인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그 폭주를 거스르고 막아낼 여지는 존재한다는 것을 저자는 강변합니다.
유대인 학살의 이미지는 동부지역 즉,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벌어진 학살 상황의 것입니다. 그만큼 그 지역은 유럽에서 유대인 인구의 중심지였고, 가장 많은 유대인들이 희생당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지역의 대규모 학살과 아이히만은 별 연관이 없었고 그 지역 학살의 책임을 아이히만과 연결지어 유대인 대량 학살의 주범을 예루살렘에서 응징하는 모습을 연출하고자 했던 이스라엘 정부 측의 의도는 충분히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히만은 어떤 법리에 의해 어떤 항소절차를 거쳐 사형에 이르게 되었는지 이어지는 14,15장의 내용이 더욱 궁금해집니다.

본투런
6백만의 유대인의 학살은 2차세계대전 내내 일어난게 아닌 전쟁 직전 1~2년 사이 집중되어 일어났습니다. 특히 유럽에서 유대인의 피해가 지역에 따라 크게 다름을 알수 있었는데, 유대인의 대다수가 동유럽에서 희생당한 역사적 맥락을 좀더 찾아보았습니다. 중세이후, 동유럽의 지배층은 낙후된 경제여건에 의한 피지배층의 불만을 유대인을 통해 해소하였는데, 시온주의의 시작이 된 19세기 초의 헤르츨의 유대인 국가 역시 동유럽에서 자행된 유대인에 대한 학살(포그롬)이 주된 배경이었습니다. 따라서, 2차세계대전중 일어난 유대인의 비극 역시 히틀러의 광기에 의한 일회적 사건 보다는 유대인에 대해 오랫동안 누적된 사회적 증오와 편견이 전쟁이라는 사건을 통해 일시 분출한 비극으로 해석할수도 있겠습니다. 동시에, 동유럽에 비해 발전된 서유럽이나 북유럽에서 유대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저항이 자발적으로 발생하였던 사례들을 통해, 개인의 인권과 시민의식이 유지되기 위해서 물질적, 경제적 발전이 필수 불가결 하다는 또 하나의 중요한 역사적 예시로 이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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