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E Home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장, 2장, 3장

글쓴이
자유주의 입문 독서토론모임 2026-01-07

[독서모임 요약]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3장)

일시 2025.1.7 pm9시
온라인 모임
참여자 ; 벤치프레스, G, kdg, 모리, 나누리

1. 도입 및 근황 토크

참석자 근황: 서로의 외모(카메라 화면) 칭찬 및 건강(약 복용, 금주 등)에 대한 가벼운 대화.
모임 운영 이슈: 독서모임 후기 작성 및 녹음 파일 업로드 필요성 논의. 외부 활동(게시판 글 작성 등)의 중요성 언급.

2. 주요 토론 주제

① 아이히만이라는 인물에 대한 분석

무능력의 문제: 아이히만의 핵심적인 문제는 '말하기의 무능력', '생각의 무능력', 그리고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지 못하는 **'공감의 무능력'**이라는 점에 동의함.
소시오패스적 성향 (발화자 2 의견): 아이히만이 평범한 사람이라기보다는, 감정을 실제로 느끼지 못하면서 흉내만 내는 소시오패스에 가깝다는 의견 제시. 거짓말을 통해 자신을 과시하려는 성향이 보임.
악의 평범성 vs 비범성 (발화자 1, 4 의견): 최근 연구(2025년 작 <악의 비범성> 등)를 언급하며, 아이히만이 단순히 멍청해서 시키는 대로 한 '기계적 부속품'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주도했던 똑똑하고 비범한 인물일 가능성 제기.

② 복종과 책임: "시키면 해야 하는가?"

기계적 복종의 죄: 자신의 의지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행한 것이 면죄부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격렬한 토론.
한국 사회와의 연결:
계엄령 사태 비유: 최근 한국의 계엄 이슈를 언급하며, 군인이나 공무원이 부당한 명령(위법한 명령)을 받았을 때 거부하지 않고 수행하는 행태를 비판.
관료제와 책임: 한국 검찰이나 관료 사회에서도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주체적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이 아이히만과 겹쳐 보임.

③ 현대 사회의 전체주의화 경향

가짜 감정과 집단 광기: 현대인들이(심지어 단톡방이나 온라인 여론에서) 본인이 진심으로 느끼지 않는 분노(예: 욱일기, 동해 표기 문제 등)를 강박적으로 표출하며, 타인에게 우위를 점하려는 모습이 전체주의적 속성과 닮아있다는 지적.
사고의 부재: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기보다 집단의 흐름에 휩쓸리는 현상 경계.

④ 재판의 정당성 논쟁: "납치와 재판권"
쟁점: 이스라엘 정보기관(모사드)이 아르헨티나에 있는 아이히만을 납치해 와서 이스라엘 법정에 세운 것이 정당한가? (주권 침해 vs 정의 구현)

현실주의적 시각 (발화자 2, 5 중심):
절차적 흠결(납치)이 있더라도, 피해자가 명백하고 가해자를 처벌할 다른 방법이 없다면 힘 있는 국가(이스라엘, 미국 등)가 직접 데려와 심판하는 것이 현실적 정의일 수 있음.
국제법은 결국 힘의 논리에 의해 작동한다는 '국제정치학적 현실주의' 견해 공유.

비판적 시각 (발화자 1, 3 중심):
아무리 흉악범이라도 타국의 주권을 침해하고 절차를 어기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의문.
미국이나 강대국이 하면 '정의'가 되는 힘의 논리에 대한 우려.

결론: 재판 자체가 정치적 쇼의 성격(보여주기식)이 있었음을 인정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기록과 단죄를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다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

3. 마무리 및 다음 일정

총평: 아이히만 재판은 법리적 논쟁을 넘어 역사적 심판의 성격이 강했음.
다음 모임 안내:
범위: 4장 ~ 8장 (제1차 추방 단계부터 최종 해결책 논의 전까지로 추정)
진행자: '본트' 님 (발화자 1 추정)
기타: 대화 요약본과 캡처 사진 공유를 약속하며 종료.
—---------------
후기
작성자 ; Mori
책을 읽으며 1-3부는 재판의 배경, 인물 분석 정도를 하는 내용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다른 분들의 의견에서 타국에 있는 아이히만을 그 곳의 공권력을 무시한채 이스라엘이 납치해 와서 범죄가 벌어진 독일이 아닌 이스라엘에서 재판을 연 것에 대해 정당성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독일의 전쟁범죄자들이 안전하게 지낼 여건이 되는 아르헨티나에서 범죄자 인도가 순순히 될리가 없었고, 기존 독일에서의 전쟁범죄 판결이 피해자들 입장에서 제대로 된 징벌이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조처가 후세에 교훈으로 남을만큼 깊이있는 논의가 오가는 중요한 재판이 성사될 수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국제법(혹은 상대국가의 주권을 존중하는 상식)을 무시하는 행위는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혹은 이익; 정의가 아닌 이익이라 해도 사실 큰 차이가 없을 겁니다. 타국에선 인정되지 않고 자기 국가에서만 통용되는 정의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게만드는 이익이기도 할테니까요)를 실행하기 위해 그것을 할 힘이 있는 나라가 타국의 주권을 마음대로 침범할 수 있다는 생각의 연장일 것입니다. 이는 제가 그동안 비판해온 현실주의 국제정치학 그 자체 아닌가 하는 중요한 지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나라도 동의할 보편타당한 정의라 한들 자유진영의 보편적 정의와 그에 동의하지 않는 다른 체제 진영의 정의는 다를 것입니다. 어느 진영의 정의가 더 옳은지의 문제는 핵심이 아닐 것입니다. 국제법의 궁극적 존재이유는 결국 어느 진영이 상정한 정의의 실현이 아니라 전세계적 전쟁의 방지일 것이니까요.

다시 생각해보면 아이히만은 결국 이스라엘인들이 원하던 복수의 그림대로 교수형을 당했다는 점에서 그 재판은 다른 누군가의 말대로 역사의 심판을 감히 자처한 정치재판에 불과한 것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지금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납치해 재판정에 세우려는 미국의 모습에 우려를 표하던 저 조차도 약자를 위한 정의구현이라는 그림에 눈이 가려져 같은 본질의 두 상황을 다르게 판단한 것 아닐까 생각들더군요.

그렇다면 이번 재판을 통해 인류가 얻은 것은 없었을까요? 국제질서의 불안정성 초래를 감수하면서까지 실행한 재판이었는데 새롭게 밝혀진 내용이나 후대에게 도움이 되는 교훈도 없었다면 더 문제일 것 같습니다.
3부까지의 내용에선 오랫동안 제기돼온 나치와 아랍의 밀착 관계에 대한 모든 소문들이 사실무근이었다고 밝혀진 것만 있습니다.
이후에 펼쳐지는 재판 진행 내용을 읽으며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파시즘의 범죄행위에 부역하게 되는지, 그 행위를 거부하게 만드는 양심의 근원은 무엇일지에 대해서만 생각하며 책을 읽어나가려던 저에게 재판 그 자체의 의미, 그리고 그 살풀이 과정에서 빚어졌을 더 큰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독서토론 시간이었습니다.
토론을 통해 힘이 있는 국가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또 다른 측면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세계평화 유지를 위해선 넘지말아야 할 선이 있어야 한다는 이상주의가 잘못 긋는 선은 어떻게 교정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앞으로 두고두고 생각해 봐야겠다 생각들었습니다.

* "자유주의 독서모임" 카카오 오픈 채팅 또는 밴드 모임은 독서모임 회원들이 운영하는 소통 공간 입니다.
이곳은 자유기업원이 운영하는 채널이 아니오니 가입 및 활동에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유주의 독서모임 함께하기: https://open.kakao.com/o/g4Nn1uu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