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중 국방비 늘려 'GDP증가’ 착시
통계치만 봐선 경제상황 오판 십상
富없는 성장…케인스학 오류 간파를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세계 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에서 의심스러운 데이터가 눈에 띈다.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이 작년에 3.0% 증가했고 올해 2.6%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러시아는 지금 3년째 전쟁 중이다. 전쟁은 그동안 축적된 부를 소모하는 것이지 새로운 부를 창출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전쟁 중인 러시아경제가 성장했다니,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상함의 키는 GDP 측정에 있다. GDP는 일정 기간에 생산된 모든 최종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다. 그렇게 측정된 GDP를 생산 GDP라고 한다. 한편 생산된 모든 재화와 서비스는 구성원 누군가에 의해 구매된다. 그래서 구성원들이 구매를 위해 지출한 총금액은 생산 측면에 측정한 금액과 같아진다. 이렇게 측정한 GDP를 지출 GDP라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가계의 소비, 기업의 투자, 정부의 지출, 그리고 순수출(수출에서 수입을 뺀 것)의 합으로 측정된다. 이 지출 GDP를 기초로 하여 정부지출을 늘리면 GDP가 증가한다. 전쟁 중인 러시아경제가 성장한 것으로 보이는 것은 국방비를 2배 이상 늘렸기 때문이다.
생산 GDP와 지출 GDP가 같다는 것은 회계상의 항등식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많은 경제전문가가 이 항등식을 인과관계 이론으로 변질시켜 정부지출을 늘려 경제를 성장시키는 데에 사용하고 있다. 단순히 GDP 통계가 증가했다고 해서 국민의 삶이 나아지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이 증가하고 그 품질이 개선되어야 국민의 삶이 개선된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경제성장이다.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해 부를 창출하는 주체는 민간이지 정부가 아니다.
GDP 통계치만을 보면 경제 상황을 오판하기 쉽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차 세계대전이 대공황을 끝냈다는 주장이다. 대공황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경제위기로 1929년 3.2%였던 실업률이 1933년 25%까지 증가했고, 1940년까지 계속 두 자리 숫자를 기록했다. 그러다가 전쟁 발발 후 실업률이 1944년 1.2%로 하락하였고, 1940~1943년 동안 GDP가 8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만 보면 2차 세계대전이 대공황을 끝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쟁 기간에 실업률이 급감한 것은 징집의 결과였고, GDP가 급증한 것은 전쟁 수행을 위한 정부지출 증가 때문이었다. 정부지출 증가 때문에 GDP는 증가하였지만, 실제로는 민간의 소비와 투자가 하락했다. 1943년 정부지출을 뺀 실질 민간 GDP는 1941년보다 14%나 낮았고, 소비재의 부족과 가격 폭등으로 미국 국민의 삶은 매우 어려웠었다.
GDP 통계치만 보고 경제 상황을 오판한 또 다른 사례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사무엘슨이다. 그는 자신의 유명한 경제원론 교과서 1961년 판에서 소련의 GNP가 미국의 절반 정도였지만 소련이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1984년, 늦어도 1997년에는 소련 GNP가 미국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했었다. 예측이 자꾸 빗나가자, 나중에는 2002~2012년으로 추월 시점을 미루기까지 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의 수석 경제자문으로 활동했던 래리 서머스는 2011년 일본의 고베 지진이 났을 때 “재난이 발생하면 복구과정이 진행되면서 역설적으로 GDP가 일시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라고 했다. 또 다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2001년 9·11 테러가 났을 때 뉴욕 타임스 칼럼에서 “끔찍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대공황을 끝낸 진주만 공습과 같은 테러 공격이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다”라고 썼다.
모두 GDP라는 통계치에 기초한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의 근원지가 있다. 바로 케인스 경제학이다. 케인스는 '일반이론’에서 “피라미드 건설, 지진, 심지어 전쟁까지도 부를 증가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전쟁, 테러,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를 복구하기 위한 정부지출은 다른 생산적인 활동에 쓰일 자원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 정부지출이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 테러, 지진은 결코 번영을 낳지 않는다. 이것이 상식이다. 정말 케인스 경제학이 진실이라면 우리는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테러를 환영하고,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일어나기를 학수고대하면 된다. 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짓인가.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자유기업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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