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칼럼] 중대재해처벌을 개정해야 하는 중대한 이유

곽은경 / 2023-07-25 / 조회: 5,167       브릿지경제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기사가 나올 때 마다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이 법은 산업재해로 사망사고가 나거나, 질병이나 부상이 생기는 경우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가족 중에 기업경영을 하는 사람도 없으니 나와는 무관한 법인 줄 알았다. 어느 공사장에서 폭발사고가 났다더라, 어디 공장에서 추락사고가 있어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이 되었다는 등의 언론 보도를 접할 때마다 이러다 경영자들 줄지어 처벌을 받겠구나 강건너 불 구경하듯 안타까워했다.


알고 보니 중대재해처벌법은 내 발등의 불이었다. 본의 아니게 2년째 아파트 동대표이자 입주자회의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공동주택의 운영, 관리, 보수 등 아파트의 크고 작은 공사를 계획하고 결정하는 자리이다. 최근 아파트 도색공사를 하게 되었는데, 인부들이 옥상에서 로프를 타고 내려오면서 작업을 하는 것이라 사고가 나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외벽에 페인트를 칠하는 작업은 모든 아파트가 주기적으로 시행하는 필수적인 공사라 취소할 수도 없고, 행여 사고라도 나서 신문에 나오면 어쩌나 겁부터 덜컥 났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하는 모든 업무 즉, 전지작업, 전기공사, 계단대청소 등등이 모두 중대재해처벌법이 대상이 된다는 점이었다. 실제 아파트 직원의 사고로 처벌대상이 되었던 사례도 있었다. 2023년 4월 동대문구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이 천장누수 방지 작업을 하기 위해 사다리에 올라갔다 떨어져서 사망했다. 해당 직원은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고 작업을 했고, 안전보건확보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관리위탁업체 대표가 처벌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중대재해처벌법은 나의 일상에, 국민들의 일상에 파고들고 있었다. 우리 국민들 중 절반 이상이 공동주택에 살고 있다. 각 아파트마다 입주자대표가 있고 동대표가 있을 것이다. 문제가 발생한다면 1차적 책임은 아파트 관리소장에게 있겠지만, 관리소장을 고용한 입주자대표회의, 자신들을 대신해 의결과 집행을 맡긴 아파트 입주민들 하나하나가 그 책임에서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실제 “입주자대표회의는 제 3자에게 공사를 하도급하더라도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다해야 한다.”라는 규정이 있고 이를 위반하면 처벌을 받게 된다고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나를 포함한 모든 국민이 처벌대상이라고 생각하니 문제가 명확하게 보인다. 이 법은 '모든 근로자가 안전해야 한다’는 희망사항을 무리하게 법제화한 것으로, 현실적으로 불합리하다. 이 법 이전에도 모든 아파트는 관리사무소 직원이 안전한 환경에서 근무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법이 생겨났고, 처벌이 강해졌다고해서 사고를 완벽하게 없앨 수는 없다. 사고의 원인은 정말 다양하기 때문이다. 전국의 건설현장, 위험한 일터에서도 마찬가지 사정일 것이다.


작업 중 사고에 최고경영자가 형사적 책임을 지게 하는 것부터가 모순이다. 초등학교 6학년 사회 교과서를 보면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 정부, 기업, 노동자 노력이 필요하다고 나와 있다. 당연한 상식이다. 그런데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용자인 기업인을 처벌하는 데만 방점을 두고 있다. 이를 대비할 예산과 인력을 배치할 수 없는 중소기업이나 소규모 사업장들, 아파트 관리소들은 아무런 대비책이 없이 법의 처분만 기다려야 한다.


결국 안전과는 무관하게 책임회피를 위한 행정절차만 남게 될 우려가 크다. 책임자 입장에서는 이미 최선을 노력을 하고 있는데, 혹시 모를 사고에서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안전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서류로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우리 아파트의 경우 도색공사 계약 외에 '기술지도계약’을 추가로 체결했으며, 관리사무소에 안전관리자를 선임 하려고 준비 중이다. 물론 이에 대한 비용은 관리비로, 모든 주민들이 부담하게 된다. 안전을 책임지는 직원이 있다고, 서류가 몇 장 늘어난다고 작업현장이 좀 더 안전해진다고 믿을 사람은 없다.


비용과 노력을 더 기울였으나, 중대재해는 오히려 늘었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해인 2022년 업무상 사고 사망자가 874명으로 전년 대비 46명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시행 첫해, 시범케이스로 처벌받지 않기 위해 더욱 조심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망자 숫자가 늘어난 것이다. 누가 좀 더 부주의해서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더라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사고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법이다. 처음부터 현실은 반영하지 않고, 그냥 근로자가 안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제도를 만들었기 때문에, 각 경제주체들은 일상 곳곳에서 추가로 행정비용을 지불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의 예비 처벌대상자가 되고 말았다.


결국 중대재해처벌법은 법이 보호하려고 하는 실익이 모호한채,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드는 부작용이 크다. 관리소장이 직원들의 사고에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기 시작한다면 아파트는 관리소장을 구하기 어렵게 될지 모른다. 사고에 취약한 중소기업 대표도 반복되는 처벌에 사업을 접을 것이며, 사고 날 확률이 많은 연령층에게는 일자리가 제공되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대형건설사 대표도 사고를 0으로 만들 수는 없고, 자꾸 감옥에 들락날락 하다보면 건설업을 포기하는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 기술력과 자본력 있는 대기업 브랜드의 아파트가 지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전 국민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다.


앞으로 모든 기업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다고 하니, 더 큰 부작용을 낳기 전에 현실에 맞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에 좋겠다. 사용자에 대한 의무를 명확히 하고, 최고경영자를 처벌하는 형사처벌 규정도 현실에 맞게 개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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