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우리나라 인구는 전년 대비 약 9만 1천여 명이 감소한 5,173만 8천여 명으로 집계되었다. 1949년 총인구조사가 시작된 이래 첫 인구 감소이다. 저출산이 초래할 인구 감소에 대한 경고등은 실은 오래 전에 켜졌다. 합계출산율이 처음으로 인구대체출산율 수준인 2.1 밑으로 떨어졌던 해가 1983년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약 40년이 지난 후인 2022년 현재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8이다.
합계출산율이 크게 오르지 않는 한 우리나라의 인구 감소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할 것이라 예측된다. 2020년 기준 장례인구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는 2041년에는 5천 만 명 밑으로, 2066년에는 4천 만 명 밑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인구가 곧 국가경쟁력임을 감안할 때 인구 감소는 경제를 비롯한 우리나라 전반에 암운을 드리울 재앙이다. 대한민국 소멸 위기가 더 이상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는 현 상황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40년 동안 정부도 마냥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가 인구 감소 문제의 해결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때는 2000년대 초반이었다. 2005년 5월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이 제정되었고 같은 해 9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출범하였는데, 이 위원회에서 수립·발표하는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 정부의 인구 감소 대응책의 핵심이다.
2023년 현재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21-2025)이 시행중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제1차부터 제4차까지의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살펴보면 정부가 추가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남아있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저출산 탈출을 위한 사회·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의 정책이 총망라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2021년 인구 감소는 현실로 나타났다. 저출산 현상은 백약이 무효한 상태인 것이 아닌지 회의감마저 든다.
분명한 사실은 지난 20년 간 200조 원에 육박하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시행해 온 저출산 대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땅한 다음 수순은 저출산 대책에 대한 수정과 보완이다. 문제는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 제시하고 있는 장기적 종합 대책은 특별히 나무랄 곳이 없다는 점이다.
또한 저출산 대책의 경우 오랜 기간을 두고 시행할 때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장기 정책일 뿐더러 지난 20년 간 꾸준히 수정 및 보완이 이루어져왔기 때문에 새로운 관점에서 개선 방향을 제시하기도 말처럼 쉽지 않다. 그렇다면 정부가 저출산 탈출을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우선 정책 당국은 백약을 하나하나 잘 사용하였는지 꼼꼼히 짚어봐야 한다. 그런 후에 백약 중에 가장 효과적인 약을 골라내어 집중적으로 처방해야 한다. 즉,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선택과 집중이다. 5년마다 업그레이드하는 백화점식 종합 방안의 제시에 자위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세부 시행 방안이 중앙부서 및 지자체별로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그리고 운영 성과를 얼마나 거두고 있는지에 대해 평가해야한다.
평가를 통해 여러 정책 중 호응도가 높은 정책과 성과가 좋은 정책 등 실효성이 높은 정책을 가려내고 그 정책들을 집중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다행히 정부도 이와 같은 방향으로 정책 운영을 개선할 예정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3년 4월 한 경제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정책 평가를 거쳐 214개의 저출산 대책을 절반으로 축소할 예정이라 천명하였다.
저출산 대책의 실효성 제고에 있어 선택과 집중만큼 중요한 것은 정책의 경계 허물기이다. 저출산 대책은 기본적으로 한 가구의 가족계획을 수정할 유인, 즉 자식을 낳을 유인을 제공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가구원 모두의 생활, 특히 자식의 양육을 책임질 부모의 생활 전반에 관련한 종합적인 방안을 필요로 한다.
지금까지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 각 분야의 정책을 방대하게 포함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정책 당국이 유념해야할 점은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정책 역시도 한 가구의 가족계획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정책 당국은 정책의 경계를 허물고 정부가 시행하는 모든 정책이 저출산 대책이라는 인지 하에 모든 정책을 재검토하고 보완해나가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노동시장 정책은 (예비)부모의 소득 및 시간 사용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정책이기 때문에 가구의 가족계획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 중 하나이다. 최근 논란이 된 주 최대 69시간 근무 방안은 근로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때 근로시간이 늘어난 만큼 여가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는 제도이다.
또한 기존 근로자의 근로시간이 늘어날 경우 신규 고용 창출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시장에 새로 진입하려는 (예비)근로자들의 실업률을 제고할 우려도 있다. 여가시간의 감소와 실업률의 증가는 한 가구의 가족계획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므로 주 최대 69시간 근무제는 저출산 대책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정책 당국은 주 최대 69시간 근무 방안과 같이 어떤 새로운 노동시장 제도의 도입을 검토할 때 이러한 제도가 한 가구의 가족계획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검토하여 새 제도의 도입이 출산율 감소로 이어지지 않도록 보다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진영 강원대학교 경제정보통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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