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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미국 독립선언 250주년] 미국의 외교정책과 한반도

글쓴이
자유기업원 2026-06-30 , 조선일보

 ‘자유의 확산’이라는 목표를 십자군적 열정으로 수행⊙ 트럼프, ‘먼로 독트린’바탕으로 캐나다·그린란드·베네수엘라·남미에서 중국 영향력배제추진
⊙ 중국의부상으로 한국의전략적가치높아져…‘중국을 겨냥하는 칼’
⊙ 약소국→강대국→초강대국→극초강대국으로 성장한 미국
⊙ 강한 종교성이미국 외교정책의특징…‘악의제국’ ‘악의축’ 등 용어 사용


7월 4일은 미국이 건국(독립선언)한 지 꼭 250년이 되는 날이다. 보기 드문 미국 우선주의자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미 건국 250년을 대대적으로 축하하기 위한 각종 행사들을 벌이고 있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과 비교할 때 아직도 역사가 짧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미국은 인간이 건설한 최대 최고의 정치 조직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강성한 국가를 이룬 나라다. 또한 미국은 스스로 말하듯 ‘예외적(exceptional)’인 나라다.
국가가 존재하기 위한 필수 조건 중 하나가 ‘우리라는 느낌(we feeling)’이며 그런 느낌의 근거는 과거, 즉 할아버지가 같다는 사실에서 유래하는데 미국만은 그렇지 않았다. 미국인의 할아버지들은 독일, 영국, 프랑스 등등 때로는 서로 원수지간인 나라들에서 온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어느 나라 못지않은 ‘우리라는 느낌’을 공유하는 나라다. 미국인들의 ‘we feeling’은 할아버지가 같아서가 아니라 ‘손자’들이 같다는 사실에서 유래한다. 할아버지는 다른 나라에서 왔을지라도 아들과 손자들은 다 미국인이며 거기에서 ‘우리’라는 느낌의 기원을 찾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구 다른 모든 나라와 달리 과거보다 미래에 근거를 두고 있는 나라다. 미국은 역사와 전통과 언어, 문화, 혈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나라다. 미국인들을 뭉치게 하는 생각들은 ‘하느님’ ‘민주주의’ ‘자유주의’ 등으로 정리될 수 있다. 앤 슬로터(Ann Slaughter) 교수의 책 이름처럼 미국이라는 나라는 생각(ideas that is America)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만든 정치 조직이다. 그래서 미국은 태생적으로 ‘예외적’인 나라이며 그 나라는 지난 250년 동안 지구 역사상 경제적으로 최고의 부국(富國), 군사적으로 최대의 강국을 이루어 극초강대국(hyperpower)이라고 불릴 수 있는 나라로 발전했다.


외교정책의 근간이 된 건국이념


미국의 외교정책도 예외적이다. 과거 전통이 같아서가 아니라 생각이 같아서 하나의 나라로 건국된 결과, 미국의 외교정책은 미국인들이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이념의 수호와 확산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외교 이념은 ‘자유의 수호 및 확산’이라는 특징을 갖는데 이 같은 특징은 미국의 독립선언서에서부터 그 원천을 찾아볼 수 있다. 1776년 7월 4일 발표된 미국 독립선언서에는 “우리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 즉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를 부여받았다는 이 진리들을 자명하다고 간주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독립선언서는 미국은 창조주가 모든 인간에게 준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만든 정치 체제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미국이라는 정치 체제는 창조주가 주신 인간의 권리를 미국인들은 물론 모든 인류들에게 확보해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처럼 기독교적인 권리장전(權利章典)에 기초하고 있는 미국의 건국이념은 미국 외교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미국의 국력이 강성해 짐에 따라 더욱 적극적이며 공세적인 이념 외교를 시행하는 근거가 되었다.
미국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미국 외교의 목표는 한마디로 말해 ‘자유의 수호 및 확산’이다. 미국인들이 말하는 자유는 구체적으로 ‘종교(기독교)의 자유’ ‘자본주의’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미국은 약하던 시절 자신의 종교와 정치적 자유(민주주의), 경제적 자유(자본주의)를 지키려 노력했다. 미국이 강성해진 이후 미국인들은 이 같은 자유의 이념을 전 세계에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 같은 미국인들의 자유의 확산을 위한 외교정책은 세계인들 다수로부터 ‘제국주의’라고 비난을 받았다.


‘자유의 제국’


물론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전통적 의미의 제국주의자들이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스스로 제국주의자임을 인정할 때도 자신들의 제국주의는 식민지 사람들에게 자유를 확산하는 목표를 가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미국은 스스로 ‘자유의 제국(Empire of Liberty)’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강대국이 된 이후의 미국이 적극적으로 전개한 외교정책은 모두 ‘자유의 수호와 확산’이라는 목표와 더불어 시행되었다. 1914년 유럽 대륙의 전쟁에 참전할 당시 미국 대통령 윌슨은 “민주주의가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to make the world safe for democracy)” 전쟁에 참전한다고 선언했다.
세상을 본격적으로 바꾸는 공격적 외교정책을 시작한 2026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은 2026년 한 해는 ‘자유를 위한 투쟁의 해’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1월 3일 새벽 베네수엘라의 독재자 마두로를 생포해 온 후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국민 3000만 명에게 자유를 되찾아 주었다고 선언했다.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하기 직전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하메네이 신정(神政) 정권에 대항하는 이란 시민들의 시위를 부추기면서 ‘이란 국민들의 자유를 위해’ 미국은 이란 문제에 개입하겠다고 선언했고, 하메네이를 사살한 후엔 “8000만 이란 국민들에게 자유를 찾아 주었다”고 선언했다. 곧이어 쿠바 국민들에게도 자유를 찾아 주겠다고 말했다.
제43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북한의 김정일을 향해 “당신이 무엇인데 하느님이 주신 북한 국민의 권리를 박탈하는가”라고 경고했다.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했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역시 주한미군 철수 정책을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는 박정희(朴正熙) 정권을 도와줄 수 없다는 ‘자유’와 ‘권리’의 논리로 정당화시켰다. 대한민국보다 훨씬 포악한 인권 유린 정권 북한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카터의 멍청한 인권정책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기독교 십자군주의’


자유주의의 확산이라는 이념과 더불어 미국 외교사(史)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분명한 흐름은 ‘기독교 십자군주의’라고도 부를 수 있는 종교성이다. 미국의 외교정책이 종교적 성격을 띠게 된 이유는 미국의 건국이 기독교적인 데서 연유한다. 세계 정치가 세속적인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고 미국의 기독교도도 오늘날 인구의 75% 정도로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외교의 기독교적 성격은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
미국은 다른 나라들을 지칭할 때, 특히 적국을 지칭할 때 ‘악마’ ‘악의 축’ ‘천당’ ‘지옥’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 습관이 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이라고 불렀다. 9·11 테러 사건을 치른 43대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이란,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지칭했다. 2017년 11월 한국 국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북한은 당신의 할아버지가 꿈꾸었던 ‘천당’이 아니라 ‘지옥’이 되고 말았다”고 연설했다. 그리고 김정은을 향해 마음을 바꾸라고 설득하는 장면에서 “당신이 하느님과 인간에 대해 지은 죄가 많지만…”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한국 국회 연설의 결론 부분은 마치 기독교 신자들의 기도문 같았다.
악, 지옥 등은 기독교적 용어들이며 미국이 적국들을 악, 지옥 등으로 지칭할 경우 그 말은 대체적으로 미국이 그들 나라의 정권 교체(regime change)를 시도할 것을 암시한다. 레이건 대통령은 1980년대 자신이 ‘악의 제국’이라 칭했던 소련 공산당 정권을 붕괴시켰다. 2000년대 초 부시 대통령은 자신이 지칭했던 ‘악의 축’ 3국 중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교체했다. 금년 2월 28일 트럼프 대통령은 부시 전 대통령이 지칭했던 ‘악의 축’ 3개국 중 하나인 이란 정권의 수장(首長)을 폭사시킴으로서 사실상 이란의 정권 교체를 이루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과 소련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무렵 스탈린은 무신론자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주재 소련 대사인 안드레이 그로미코에게 미국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매주 일요일 미국 교회에 참석해 설교를 들으라고 지시했다. 1943년부터 1946년까지 주미 대사로 활동한 그로미코는 이후 외교 경력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장기간 소련 외무장관(1957~85년)으로 활동했다. 스탈린은 미국인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파악하는 데 교회 설교가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미국 사회에서 종교는 정치·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임은 물론 미국 대외정책의 성격을 규정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독교는 자유주의 이념을 적극적으로 확산하는 십자군적 역할을 오랫동안 담당하고 있었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시대인 오늘 미국 외교에서 기독교적 영향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17일을 미국을 하느님께 ‘재봉헌(rededicate)’하는 날로 명명하고 워싱턴DC에서 대규모 기도회를 열기도 했다.


약소국에서 극초강대국으로


미국의 유명한 국제정치학자 마이클 만델바움 교수는 2022년 미국의 외교정책 역사를 4시기로 구분한 탁월한 저서를 출간했다. 만델바움에 의하면 미국은 국가 체제를 어렴풋이 갖춘 1765년부터 남북전쟁이 종식된 1865년까지 약 100년 동안은 약소국(weak power)이었다. 1861년부터 4년 동안 치러진 미국 역사상 최대·최악의 전쟁인 남북전쟁을 통해 국가 통합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미국은 1865년 이후부터 국제정치에서 강대국(great power)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미국은 이후 1945년 2차대전이 끝나는 해까지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했다.
2차대전 승리 이후 미국은 기왕의 강대국이란 타이틀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나라가 되었다. 만델바움 교수는 물론 모든 국제정치학자들은 1945년부터 1990년 미국의 라이벌인 소련이 붕괴되던 시절까지 미국은 초강대국(super power)이었다고 분류한다. 초강대국이란 정의상(by definition) ‘혼자서 지구 모든 나라와 상대할 수 있는 나라’를 의미한다. 그러나 핵무기 덕분에 미국의 라이벌인 소련도 지구 전체를 상대할 수 있을 만큼 막강했고 소련 역시 초강대국의 지위를 보유하고 있었다. 지구 전체를 상대할 수 있는 강대국이 두 나라가 있는 시대는 논리적으로 비정상의 시대다. 그래서 미소 양 초강대국은 싸우지 않고 으르렁거릴 뿐인 냉전(冷戰·Cold War)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진짜 전쟁인 열전(熱戰·Hot War)을 치르면 둘 다 죽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결국 경제력이 취약한 대적(大敵) 소련을 붕괴시키고 냉전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소련이 망한 1990년 이후 유일 초강국 시대가 시작되었다. 만델바움 교수는 1990년부터 2015년까지를 미국의 극초강대국(極超强大國·hyperpower) 시대라고 명명한다.


미국의 패권은 계속된다


대부분의 국제정치학자들은 2015년 무렵 이후 미국 유일 패권(覇權) 시대가 저물었다고 말하며,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浮上)으로 인해 다극(多極·multipolar) 시대가 되었다고 본다. 필자는 이 같은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건국 250주년이 되는 2026년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해 보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건국 250주년을 맞은 미국은 아직도 유일 초강대국·극초강대국의 시대를 향유하고 있으며 미국의 압도적 패권 시대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처럼 미국의 국력에 입각해서 시대를 구분하는 방식은 미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의 외교정책을 설명하는 좋은 기준이 될 수 있다. 외교정책이란 힘이 약한 대부분 나라들의 경우 국제환경에 어떻게 잘 적응하느냐의 문제다. 반면 오늘의 미국처럼 힘이 막강한 나라의 경우 외교정책이란 국제환경을 어떻게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어 나가느냐와 관련된 문제다. 미국은 각 시대별로 자신의 국력에 적합한 탁월한 외교정책들을 수립하고 집행한 결과 오늘날과 같은 최고 강대국의 지위에 도달했다. 건국 100년 후에는 강대국이 되었고, 건국 170년 무렵에는 초강대국, 건국 220년무렵 극초강대국, 즉 무적(無敵)의 1위가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들은 미국 대외정책들을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먼로 독트린


미국 외교사상 가장 중요한 원칙의 하나는 미국이 아직 약소국이던 시절인 1823년 제 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가 천명한 먼로 독트린이다. 먼로 독트린의 원칙들은 세계정치의 변화 및 미국 국력의 변화에 따라 ‘원칙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스타일을 변형해 가며 250주년이 되는 오늘에도 적용되는 미국 외교의 제일 원칙이 되고 있다.
1820년대 초반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이룬 국가들이 속속 출현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럽의 강대국들인 스페인·프랑스·러시아 등은 이들 신생 독립국들을 다시 식민지로 만들거나 이들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먼로 대통령은 미국 외교의 4가지 원칙을 선언했다. 4가지 원칙이란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은 유럽의 정치와 전쟁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미국은 유럽 강대국들이 기왕에 유지하고 있는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들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고 존중할 것이다.
셋째, 서반구(西半球)에 대한 유럽 열강의 새로운 식민지 개척은 금지한다.
넷째, 어떤 유럽 강대국일지라도 서반구의 국가들에 통제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는 미국의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할 것이다.
먼로 대통령은 1823년 12월 2일 유럽의 강대국들을 향해 더 이상 ‘남북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식민주의·제국주의 정책을 거부한다’ ‘미국은 유럽 대륙의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뿐만 아니라 서반구는 미국의 세력권 아래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공격적인 외교정책이었다. 먼로주의가 주로 미국의 ‘고립주의(孤立主義)’를 상징하는 정책으로 알려진 이유는 미국이 유럽 국제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부분을 과장되게 해석한 결과다.
먼로 시대의 미국은 유럽 강대국들의 서반구 개입을 막을 수 있는 스스로의 힘을 갖추지 못한 시절이었음은 물론, 유럽에 개입할 만한 국력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상대적으로 약소국이었던 처지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강대국들에게 서반구에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와 미국은 서반구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겠다는 선언은 그 이후 220년 이상 지속된 미국의 공격적 외교정책을 정당화하는 선언이었다.


돈로 독트린


먼로 독트린이 전략적으로 탁월했던 이유는 미국이 당시 세계 최강의 영국 해군을 이용할 수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먼로 대통령은 물론 영국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먼로 독트린을 선언했다. 
그러나 세계적 식민 대국인 영국 역시 미국과 마찬가지로 다른 유럽 강대국들이 서반구에 식민지를 확장하는 것에 반대하는 정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영국의 막강 함대를 간접적으로 활용, 다른 유럽 열강들의 서반구 개입 시도들을 차단할 수 있었다.
먼로 독트린의 공세적 부분, 즉 서반구에서 미국의 배타적인 영향력 확보 및 행사라는 측면은 먼로 독트린 선언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220년 이상 면면히 지속되어 온 미국 외교정책의 기초가 되었다.
미국의 국력이 강대국 수준으로 성장한 1900년대 초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먼로 독트린을 확대 해석한 루스벨트 계론(系論·Roosevelt Corollary)이라는 정책을 발표했다. 이는 ‘유럽 강대국들에 의해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이 점령 또는 간섭의 위협을 받을 경우, 미국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정치적·경제적 안정을 위해 개입할 수 있다’는 원칙이다. 이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대(對) 서반구 외교 정책상 불변의 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60년 소련이 쿠바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했을 당시 케네디 대통령이 3차 세계대전조차 불사하고 쿠바 봉쇄령을 내린 일 역시 그 정책적 기반을 먼로 독트린에 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2025년 1월에 2차 임기를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역시 먼로 독트린의 21세기 버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2차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파나마 및 지리적으로 서반구에 속한 그린란드에 대한 중국의 간섭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세계화란 국제환경 속에서 중국은 적극적으로 서반구 국가들에 개입해 왔다. 캐나다의 정치와 경제에 깊숙이 침투했고 파나마 운하에 대한 통제권마저 장악했다. 중국은 세계 제1의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베네수엘라를 남미 진출의 교두보로 삼아 마두로 독재정권을 지지하며 석유를 헐값으로 구입할 수 있었다. 러시아 역시 미국의 턱밑에 있는 공산국가 쿠바에 적극 개입, 서반구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던 중이었다.
트럼프는 2차 임기를 시작한 이래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은 속도로 캐나다, 파나마, 그린란드, 베네수엘라, 쿠바에서는 물론 멕시코와 브라질 등에 대한 중국 및 러시아의 영향력 행사를 청소하듯 쓸어 버리는 등 미국의 영향력을 극대화시키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트럼프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캐나다, 쿠바, 베네수엘라를 미국의 한 주(州)로 편입해 버리겠다는 언급들은 사실 루스벨트·케네디에 의해 확대되어 온 먼로 독트린을 더욱 확대한 정책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의 외교정책은 미국 외교의 역사상 일탈이기보다는 면면히 이어져 온 전통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학자들이 트럼프의 외교정책을 제임스 먼로와 도널드 트럼프의 이름을 합성해서 ‘돈로(Donroe) 독트린’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다.


트루먼 독트린, 닉슨 독트린, 카터 독트린


먼로 독트린만큼 지속적이고 방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들은 아니지만 자신의 이름이 붙은 외교 독트린을 가진 미국의 대통령들이 여러 명 있다.
1947년 소련과의 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무렵 트루먼 대통령은 그리스의 공산주의 반란을 저지하고 자유주의 정권을 지키기 위해 세계의 공산주의 세력에 의한 자유 정권 전복 운동에 적극 저항한다는 반공적 독트린을 선포했다. 미국의 한국전쟁 개입과 1960년대 베트남 전쟁 개입은 당연히 ‘트루먼 독트린’이 적용된 결과였다. 한국과 베트남의 자유주의적 정권들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붕괴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개입 근거였던 것이다.
1960년대에 이르러 공산주의 진영에서 갈등이 야기되고 있음을 감지한 닉슨 대통령과 그의 외교 책사(策士) 키신저 박사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게 되는데, 아시아의 방위는 일차적으로 아시아인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으로서 베트남 전쟁에서 손을 떼기 위한 방책이었다. 미국은 당시 중국과 소련이 거의 전쟁을 해야 할 수준으로 관계가 악화되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차제에 중국을 소련으로부터 완전히 떼어 내어 사실상 미국 편으로 만들고자 시도했다. 중국이 극도로 불안해 하는 남쪽 나라 베트남에 주둔하던 무려 52만 명의 미국군을 철수시킴으로써 중국이 소련과의 싸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주려는 것이 닉슨 독트린의 목표였다. 닉슨 독트린은 발표된 지 약 20년 후 미국이 소련을 붕괴시키는 큰 기반의 역할을 담당했다.


1970년대에 들어와 석유는 결정적인 무기로 부상했고 중동(中東)은 세계 산업국가들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OPEC(석유수출국기구)을 만들어 세계의 석유 흐름을 좌지우지하였다. 지정학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던 소련은 중동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고 미국은 이를 막아야만 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허약한 대통령으로 평가되는 카터 대통령(재임 1977~81년)은 1980년 1월 23일 “어떤 외부 세력일지라도 페르시아만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미국의 사활적(死活적) 이익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미국은 그러한 공격을 군사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활용해서 격퇴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중동의 석유를 미국의 적국이 장악하는 것을 무력을 통해서라도 막겠다는 ‘카터 독트린’은 1980년대 이후 오늘까지 미국의 중동 개입을 정당화시키는 근거가 되었다. ‘아버지’ 부시(41대) 대통령의 걸프 전쟁(1990~91년), ‘아들’ 부시(43대)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2003~12년),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전쟁(2025년, 2026년~) 등은 모두 카터 독트린에 근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민주당 대통령인 카터의 대중동 외교 원칙을 세 명의 공화당 대통령들이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미국과 한반도


미국은 1882년 조선과 수교(修交)한 첫 번째 서양 국가였지만 당시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관심은 주로 상업적인 것이었다.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접근이 본격적으로 전략적·군사적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미국이 초강대국의 지위에 도달한 이후의 일이었다. 1945년 9월 8일 미군은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을 점령하기 위해 인천에 상륙했다. 북위 38도선 이남의 한반도에 주둔하며 대한민국 건국을 지원했던 미국은 1949년 6월 30일 소수의 군사고문단 병력만 남겨 놓은 채 모두 철수했다. 그렇게 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당시 미국에게 한반도가 가지는 전략적 가치가 대수롭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에 따라 참전을 결정했다. 비록 별로 중요하지 않은 한국이었지만, 당시 미국은 소련 공산주의자들의 전투적 팽창주의를 견제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미국은 소련 및 공산 중국과 타협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한국을 냉전의 전초(前哨)기지로 삼기로 했다.
미국의 냉전 정책은 한국 국력 강화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미국은 대한민국을 자신의 표상으로 생각했다. 남한과 북한의 대결을 미국과 소련의 대결에 비유했고 남한이 북한에게 패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대한민국을 지원했다.
소련이 붕괴된 이후 미국은 중국이라는 새로운 대적을 눈앞에 두게 되었고 한반도의 미국에 대한 전략적 가치는 소련과의 냉전 시대보다 훨씬 더 상승하게 되었다. 중국의 부상이 없었더라면 미국은 냉전에서 승리한 이후 한국에 대한 개입을 대폭 축소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의 도움으로 장족의 경제 발전을 이룩한 중국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나라가 되었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철수하는 대신 주요 기지를 의정부·동두천으로부터 남쪽의 평택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북한과 소련을 견제하는 요충이었던 의정부·동두천은 새로운 위협 중국을 상대하는 데 적합하지 못했다.


중국을 겨냥하는 칼’


오늘 평택 기지는 미국 사람들이 말하듯이 ‘해외에 있는 최고, 최신, 최대의 미국 육군 기지’가 되었다. 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미국 육군 기지인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 부근에는 중국과의 대결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군과 해군도 있다. 미아샤이머 교수의 말대로 미국은 중국이 대적으로 존재하는 한 한국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최근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국을 ‘중국을 겨냥하는 칼’이라고 비유한 데 대해 말들이 많다. 그러나 그 같은 비유가 나온 지는 이미 100년도 더 지난 일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역할은 근대 강대국 국제정치가 시작된 이래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중국은 한반도를 중국의 뒤통수를 때릴 수 있는 망치처럼 인식했고, 일본은 한반도를 자신의 심장을 겨누고 있는 단도로 인식했다. 이 같은 지정학적 인식으로부터 연원하는 중국과 일본의 대 한반도 정책은 한반도를 다 차지하든지 혹은 반으로 나누든지 둘 중 하나다. 한반도 전체를 중국이 차지하는 경우 중국은 일본의 심장을 찌르는 칼을 쥐게 된다. 일본이 한반도를 다 차지할 경우 일본은 중국의 뒤통수를 때릴 수 있는 망치를 쥐게 된다. 한반도의 분단은 부러진 단도, 부러진 망치이며 중국과 일본을 위협하지 못하는 당분간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통일된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반드시 미국 편이 된다.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진리는 3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일된 한반도는 미국에게 중국의 뒤통수를 때릴 수 있는 망치, 일본의 심장을 겨누는 단도를 쥐게 되는 일과 마찬가지다. 바로 이것이 미국만이 중국·일본과 달리 한반도 통일을 지지하는 지정학적 이유이며, 브런슨 장군의 언급은 오래된 진실을 가감 없이 말한 것일 뿐이다.


미국 십자군 외교의 표적, 중국과 북한


대한민국은 미국 외교정책의 역사에서 미국의 자유주의와 기독교적 이념이 성공적으로 확산된 지역으로 간주된다. 반면 북한은 미국의 자유주의적 이념이 궁극적으로 침투해 들어가야 할 지역으로 남아 있다. 43대 부시 대통령이 언급했던 ‘악의 축’ 세 나라 중 북한만이 남아 있고,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말했던 북한은 아직도 지옥으로 남아 있다. 북한은 미국 외교의 특징인 자유주의와 기독교적 십자군 외교가 표적으로 삼는 몇 안 되는 지역으로 남아 있다. 이 같은 미국의 외교가 성공하는 경우 우리는 통일된 한국의 꿈을 이루게 된다.
현재 미국 외교의 이상주의적 종점은 중국의 공산당 독재정권을 바꾸는 일이다. 중국인 14억에게 자유를 가져다주는 것은 미국의 궁극적인 목표다. 물론 이 같은 목표는 미중 패권 전쟁에서 승리하고야 말겠다는 미국의 현실적인 목표이기도 하다. 적나라한 현실주의적 목표를 자유의 확산이라는 이상적 목표로 바꾸고 그것을 십자군적 열정으로 수행해 온 것이 미국 외교정책 250년 역사를 관통하는 특징이다. 물론 미국은 자신의 이상적 목표를 달성키 위해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활용하는 데 별로 주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이춘근 국제정치아카데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