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보위)가 11일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 쿠팡에 역대 최대 규모인 6246억81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쿠팡의 투자 전략과 고용 계획에 비상등이 켜졌다. 과징금 규모가 쿠팡의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6790억 원)에 육박하는 수준인 데다, 올해 1분기에 이미 개인정보 유출 사고 관련 보상금 지급 등으로 3545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터라 올해 실적이 2개 분기 연속 적자로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국민연금 가입자 기준 쿠팡·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합산 직고용 인원이 2024년 말 기준 약 9만 명에 달하는 기업이다. 삼성전자(약 12만5000명)에 이어 국내 전체 기업 중 두 번째로 많은 규모로, 현대자동차(약 6만9000명)와 LG전자(약 3만6000명)를 웃돈다. 전국 30개 지역 100여 개 물류센터에 걸쳐 있는 이 고용의 상당 부분이 지방 중소도시에 집중돼 있어, 쿠팡의 경영 타격이 단순히 한 기업의 수익성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투자 계획 차질도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쿠팡은 2024년부터 2027년까지 3조 원을 추가 투자해 충북 제천, 부산 등 전국 9개 지역에 신규 물류센터를 구축하고 직고용 인력 1만 명을 추가 채용한다는 계획을 밝혀왔다. 업계에서는 이번 과징금 규모로 급격한 수익성 악화를 겪게 되면 쿠팡이 이 같은 중장기 투자 계획을 축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사실 쿠팡은 단순 유통 플랫폼을 넘어 중소기업·소상공인 생태계의 성장 기반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과징금 충격이 더 광범위한 파장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쿠팡이 최근 5년간 자사 플랫폼을 통해 연 매출 30억 원을 돌파한 '소상공인 졸업 업체'가 1만 곳을 넘었다. 입점 당시 연 매출 30억 원 미만의 영세 사업자였던 이들이 쿠팡의 물류·광고·데이터 인프라를 활용해 전국 단위 성장을 이룬 것이다. 이와 별도로 쿠팡이 이달 영남권·호남권 소재 소상공인 100개사를 선발해 AI·빅데이터 기반 온라인 판매 전략을 교육하는 '2026 쿠팡 디지털 점프업 아카데미'를 운영 중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중소 제조사와의 동반성장 구조도 탄탄하게 구축돼 있다. PB상품 사업을 담당하는 자회사 씨피엘비(CPLB)의 협력사는 2024년 기준 630여 곳으로, 이들 협력사의 고용 인원만 2만7000여 명에 달한다. 협력사의 90%가 중소 제조사이며, 이 중 80%가 서울 외 지역에서 생산을 이어가고 있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직결된다. 쿠팡은 올해 초 이들 협력사 중 우수 30개사로 구성된 'CPLB 상생협의체'를 공식 출범시키기도 했다.
해외 판로 지원도 쿠팡이 공을 들여온 영역이다. 쿠팡은 대만 로켓배송 인프라를 활용해 국내 중소기업 제품의 해외 수출 통로를 마련하고 있으며, 상품 등록부터 마케팅·물류·통관·고객 응대는 물론 시험성적서 발급 비용까지 지원해 중소기업의 초기 진출 부담을 줄이고 있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 대표는 지난 4월 충청북도 중소 협력업체 현장 방문에서 "중소기업은 산업과 지역 경제를 움직이는 혈관과 같은 존재"라며 "중소업체가 성장해야 쿠팡도 함께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과징금 충격이 쿠팡의 수익성을 직격하면서 이 같은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의 지속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 신호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쿠팡은 창업 이후 해외 투자자로부터 유치한 자금 6조 원을 국내 물류 인프라에 집중 투자해 온 기업이다. 매출 기준 과징금 산정 방식이 9월부터 최대 10%로 상향되는 상황에서, 이번 전례가 한국 시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 심리에 부정적인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과도한 수준의 제재가 기업 투자와 혁신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과징금이 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른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과징금 산정 구조 자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유출 정보의 민감도나 기업의 사고 이후 대응 노력보다 매출 규모에 기계적으로 연동되는 현행 방식이 실제 피해 규모와의 괴리를 만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자유기업원은 이날 논평을 통해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하지만, 과징금 규모가 지나치게 과도하면 비례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쿠팡 측은 개보위의 이번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