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개인은 집단보다 위에 있다

자유기업원 / 2007-05-04 / 조회: 5,197       한국경제, A39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신라 사람들은 수 백 년을 으스대며 살았다. 그들이 으스대는 만큼 백제의 유민들은 핍박받으면서 살았을 것임이 분명하고, 그것이 지역감정의 깊은 뿌리를 형성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이 원시의 집단주의다. 우연히 특정 집단의 일원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으스대고, 다른 집단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학살을 당하거나 노예가 되었다.

인간 사회의 집단주의적 성격은 문명사회로 갈수록 옅어진다. 각자를 평가함에 있어 단순히 출생이 어디냐 보다는 무엇을 했느냐, 무엇을 선택했느냐가 중요해진다.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고, 출신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미운 감정이 생기는 것은 문명인의 덕목이 아니다. 그런 감정을 억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권장할만한 것은 못된다.

이번 조승희 사태에서 우리는 한국인과 미국인들의 차이를 잘 봤다. 미국인들은 조승희의 행위를 혈통과는 무관한 것으로 봤다. 국적도 선택하는 것이기에 미국인이 되기로 선택한 조승희는 미국인이다. 아니 어쩌면 미국인이기에 앞서 하나의 개인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가 한 행동은 그의 책임이고 그 행동의 테두리를 제공한 미국 제도의 책임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머리 속에서는 자동적으로 집단주의적 사고가 발동했다. 조승희가 한국의 혈통을 가졌기에 그의 비인간적 행동에 대해서 마치 모든 한국인이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은 당혹감을 느꼈다.

두 나라 사람들 사이의 이같은 차이는 곤혹스럽게도 원시와 문명의 대비를 보여주는 것일수도 있다. 원시집단일수록 집단주의에 함몰된다. 개인은 존재하지 않고 모두가 ‘우리’이다. 아프리카 초원의 누 떼가 그렇듯이 집단이 방향을 잡으면 거기에 속한 개체들은 무조건 거기에 따라야 한다. 집단이 개인 위에 군림하고 집단이 개인보다 앞서는 것이 원시적 집단주의의 특성이다.

문명 사회는 그렇지 않다. 집단보다는 개인이 먼저다. 집단은 개인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 여러 개인이 힘을 모으는 것이 좋다고 합의한 것에 대해서만 힘을 가진다. 집단은 개인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존재일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개인주의이다. 어떤 동호회에 가입할지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자연스럽듯이 국적조차도 개인이 선택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원시에서 멀리 벗어난 사회일수록 개인주의의 색채는 짙어간다.

개인주의를 무분별한 이기주의와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개인주의의 핵심은 집단이 개인보다 우선한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지 집단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가 개인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지 국가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다행히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도 차츰 개인주의를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동료들과 대화 나눌 때도 자기 부인을 ‘우리 집사람’이라고 부르던 사람들이 차츰 ‘내 아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에게도 영어의 ‘my’에 해당하는 단어가 생겨나고 있는 셈이다. 집단 속에서 개인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친구들이 모여서 밥을 먹고 난후 각자 먹은 것을 따로 계산할 때가 많다고 한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7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각자 먹은 만큼씩 밥값을 나누어 내자고 말하는 것은 친구 관계를 끊자는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에 유학가서 그네들이 세금까지 따져서 자기가 먹은 만큼 나누어 내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었는데, 이제 그런 생활방식이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돈을 각자 부담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렇게 하면서도 친구 관계를 유지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건 분명히 ‘능력’이라고 불러야 한다. 네 것 내 것을 따지다 보면 긴장관계가 조성되기 마련이고, 인간 본성은 그런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적대적 감정을 만들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우호적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까다로운 고객에게도 웃음을 잃지 않는 것이 능력이듯이 대단한 능력이다.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더욱 문명사회로 변해갈 것이다.

김정호 / 자유기업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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