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換亂 10년> ③기업, '샌드위치 위기'

자유기업원 / 2007-11-04 / 조회: 4,693       연합뉴스, @
"중국은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가는 샌드위치 신세여서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고생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이 한반도의 위치입니다. 앞으로 20년이 더 걱정입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올 1월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 참석하면서 말한 이 '샌드위치 위기론'은 올해 내내 산업계 화두로 회자됐다.

외환위기 이후 10년 동안 한국 기업은 수익성 위주의 내실경영 체제로 긍정적으로 변모한 반면 그에 따른 경영보수화로 저성장 함정에 빠진 것으로 지적받고 있다.

90년대 중반까지 '몸집 키우기'에 열중했던 기업들은 이른바 'IMF 체제'를 거치면서 내실 경영으로 돌아섰고 소유경영 위주에서 주주이익을 중시하는 경영으로 바뀌면서 기업투명성이 크게 높아졌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기업경영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성장보다는 주주들을 의식한 단기 업적 중심으로 흐르면서 대규모 투자나 공격적인 경영을 꺼리는 부정적인 결과도 초래했다.

재무 건전성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난 반면 산업 측면에서는 성장 동력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초래된 셈이다. 이로 인해 외환위기 10년을 맞은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저성장, 성장동력 감퇴가 꼽히고 있다.

선진국들의 견제가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중국 등 후발 개도국들의 추격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새로운 미래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면 이 회장의 걱정대로 '샌드위치' 신세를 영영 벗어나지 못해 10년전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 기업 체질개선과 경영보수화

90년대 중반까지 외형 경쟁을 벌였던 기업들은 외환위기로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가 깨지면서 한순간에 격심한 시장경쟁과 구조조정에 무방비로 내몰리게 됐다. 외부 충격에 의한 불가항력적인 구조조정이기는 했으나 이는 한국 기업의 체질을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기업들은 부실자산과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견실 경영을 추구했으며 외형이 아닌 수익성과 기업가치를 새로운 전략목표로 설정했다.

그 과정에서 정보통신산업이 새로운 주도 산업으로 자리잡았으며 조선을 제외한 전통주력산업들도 외환위기로 생존위기에까지 몰렸으나 기대 이상의 내수와 중국 시장 개척에 힘입어 빠르게 회복했다.

그러나 혹독한 구조조정과 시장경쟁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은 주주, 수익 중심의 영미식 경영을 도입하면서 사세 확대와 공격적 투자보다는 수익성과 안정성을 중시하는 보수경영 성향을 노출했다.

당장 수익을 내기 어렵더라도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가 선행돼야 하나 단기적인 주주이익을 우선시하다보니 경영진들이 대규모 투자를 기피했고, 이는 한국 산업의 동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때문에 성장동력의 부족이 한국 경제의 최대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자유기업원이 최근 전국 경제학과 교수 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2%가 한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로 저성장을 꼽았다.

한국경제연구원의 허찬국 경제연구본부장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내실경영이라는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났으나 여기에는 보수경영이라는 부정적인 측면이 수반됐다"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규모가 큰 사업은 불안과 위험도가 높아 과감한 투자를 기피하게 됐다"고 말했다.

허 본부장은 "기업이 글로벌 무대를 주도하려면 공격성을 회복해야 한다"며 "철강, 제약, 통신, 금융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들이 인수합병(M&A)에 나서는 등 미래수익 확보를 위한 과감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한국 기업은 자체적인 규모의 성장도 도모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주요 M&A 실적도 없다"고 우려했다.

삼성경제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한국기업경쟁력의 재점검' 보고서에서 "미래 수종사업이 없다는 것은 '미래수익창출력의 불임화'를 뜻한다"며 "미래 수종사업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성공패턴을 따르기보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직관과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글로벌 경쟁력 확보 위해 안간힘

그렇다고 기업들이 손놓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글로벌 역량 구축이 시급하다고 보고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글로벌 역량 강화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오는 2010년까지 총 600만대 생산체제를 구축하고 이중 절반인 300만대를 해외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이는 양적 성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리더로 도약'을 현실화하기 위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2012년까지 연결 기준으로 연간 매출 150조원, 세전이익 2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비전을 내놓고 프린터, 시스템LSI(비메모리), 와이브로, 태양전지ㆍ연료전지 등을 6대 신성장엔진으로 집중 육성키로 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중국의 추격과 일본의 따돌림에 끼여 있는 샌드위치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고객과 시장이 요구하는 틀에서 안주해서는 안된다"며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2009년에는 명실상부한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LG그룹은 미래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 태양광사업에 진출하는가 하면 LG전자의 시스템에어컨사업, LG필립스LCD의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통신분야의 유비쿼터스 사업 등 기존사업의 강화와 새 사업 개척에도 나서고 있다.

현대중공업 등 조선업체들은 세계 조선시장에서 선두권을 유지하기 위한 기술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은 사상 최대의 수주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중국 조선업체들의 추격이 거세기 때문이다.

세계 1위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은 초대형 컨테이너선, 순수 독자기술이 적용된 LNG(액화천연가스)선, 초대형 유조선, 나아가 초호화 유람선 등과 관련한 기술력을 배가해 독보적 위치를 고수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SK에너지는 아시아태평양지역 에너지 메이저사로 도약하겠다는 중장기 목표를 두고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전역으로 영역을 확대해가고 있다.

최태원 SK 회장도 기업의 지속적 성장을 담보해주는 것은 해외시장 진출 밖에 없다는 판단에 따라 "실패를 두려워 말고, 해외사업을 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내수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는 유통업도 예외가 아니어서 롯데그룹은 중국과 러시아 등에 식음료 지주회사와 유통업체를 잇따라 진출시키며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대표' 기업들은 글로벌 브랜드를 창출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글로벌 역량은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강원 연구원은 "대표적인 몇몇 기업들이 품질, 디자인, 브랜드 측면에서 글로벌 제품을 탄생시켰으나 글로벌 전략을 수립, 실행하는 역량은 부족하다"며 "글로벌 수준에서의 최적화 전략 및 경영의 전반적인 글로벌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화려한 '부활의 노래'

외환위기 때 '사경'을 헤매다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쳐 기적적으로 재기에 성공한 기업도 적지 않다. 하이닉스 반도체는 외환위기 10년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회사다.

한때 부채가 15조원을 넘어섰고 2001년 세계적인 반도체 불황의 여파로 존폐 위기에 몰렸던 하이닉스는 기적처럼 회생, 2003년 3.4분기 이후부터 17분기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으며 D램 업계 2위 자리에 올라서 삼성전자와 어깨를 겨루고 있다.

이는 뼈를 깎는 연구개발 및 생산성 향상 활동을 통해 주력 사업인 D램과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옛 대우그룹의 '세계경영' 주연이었던 대우인터내셔널은 외환위기를 거쳐 대우가 해체되면서 수출 역군에서 하루 아침에 죄인 취급을 당하는 참담함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워크아웃에서 졸업했을 뿐 아니라 올해 매출이 7조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되는 등 재기에 성공했다.

1997년 7월 부도처리됐던 기아자동차는 국내 자동차업계 2위 업체로 발돋움했으며, 중국과 슬로바키아에 현지공장을 건설하는 등 해외시장 공략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우자동차의 후신인 GM대우는 GM의 글로벌 네트워크 및 브랜드 활용 등을 통해 2002년 41만대에서 지난해 생산량이 152만대를 돌파하는 등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과거 구조조정에 따른 심한 몸살을 이겨내고 무파업 관행을 정착시켰으며, 2001년 정리해고된 1천725명의 직원 가운데 복직을 희망하는 1천605명을 전원 재입사시키기도 했다.

르노삼성의 전신인 삼성자동차 역시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기업이다. 르노삼성은 이후 SM3, SM5, SM7 등을 선보이며 국내 세단형 자동차 시장에서 독자적 입지를 구축했고 2002년 흑자경영으로 돌아섰다.

현경숙 기자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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