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관치금융’의 망령 드리운 KB금융지주사태

자유기업원 / 2010-01-11 / 조회: 1,877       독립신문

힘이 남용되면 시장의 분노를 초래


조동근 교수 ⓒ 자유기업원 홈페이지

KB금융지주회사사태가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회장 선임 문제와 금융당국의 압박, 그리고 일련의 사건들은 또 다시 ‘관치금융’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번 KB금융지주 사태는 단순한 금융 감독만의 문제가 아니다. KB금융지주회사가 사기업이므로, 사기업에 대한 금융당국의 개입은 한국 금융시스템과 금융기관에 대한 해외 신뢰도 추락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금융기관의 경영상의 문제는 시장과 주주들의 판단에 맡겨야 하며, 금융당국은 감독을 이유로 금융기관의 경영에 개입하는 타성을 버리고 규제를 하더라도 사전규제가 아닌 절제되고 정제된 사후규제여야 한다.

금융당국의 ‘의중’을 살피지 않은 괘씸죄

2009년 세밑 KB금융지주의 회장후보로 내정된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돌연 사퇴함으로써 파장을 일으켰다. 회장추천위원회에 의해 2009. 12. 3. KB금융지주 회장후보로 선정된 그는 2010. 1. 7. 열릴 임시주주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임될 예정이었다. 강 내정자는 ‘자진 사퇴’로 말하지만, 정부 압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시장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정황적인 증거도 이 같은 시각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

KB금융지주 회장공모에 참여했던 여타 경쟁자들이 "회장 선출이 불공정하다"며 KB금융에 직격탄을 날리고 후보를 사퇴하면서 일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경쟁자들이 후보 사퇴한 가운데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단독으로 면접에 참여해 만장일치로 차기 회장 후보에 추천됐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마뜩하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KB금융지주 회장 선임을 오는 3월 정기 주총 이후로 미루어줄 것을 요청했지만 이사회는 이를 거절했다. 이렇게 해서 괘씸죄를 사게 된 것이다. 그러나 KB금융지주 입장에서 볼 때, 황영기 전(前)회장이 물러난 이후 최고경영자(CEO)의 공백을 최소화하려 한 것은 당연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금융당국의 KB금융지주에 대한 압박은 금융감독원의 ‘사전검사’를 통해 노골화되었다. 작년 12월16일부터 23일까지 평소보다 3배가 넘는 인원이 투입된 ‘이례적’인 사전검사가 그 방증이다. 그 과정에서 일부 임원은 동의형식을 취했지만 검사반에 전산자료를 넘겨주었으며, 강 내정자의 운전기사까지 조사를 받았다. 일부 사외이사 주변도 내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전방위 압박으로 결국 강 내정자가 사퇴한 것이다.

이번 KB금융지주 회장후보 사퇴로 정부가 지분을 갖지 않은 민간 금융기관이라 할지라도 “관(官)의 눈 밖에 나면 끝”이라는 세간의 인식이 재차 확인됐다. ‘관치금융’의 망령이 되살아난 것이다. 물론 정부와 금융당국의 입장은 다르다. KB금융 사외이사들이 ‘견제 받지 않는 권력’으로 부상한 것이 문제를 일으킨 연원(淵源)이라는 것이다. 사외이사들끼리만 모여서 회장 내정자를 선출하고, 사외이사들끼리 모여 자기 후임을 뽑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 반론(反論)의 요지이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판단의 기준’일 수는 없다. 금융지주회사의 회장 선임에 절차상의 하자가 있다면 합당한 절차에 따라 당국이 시정을 요구하면 된다. 하지만 당국은 시정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의중을 내비침으로써” 피(被)규제기관이 이에 따르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KB금융지주는 ‘사(私)기업’이며 그 주인은 ‘주주’이다. 따라서 감독당국이 또는 그 어떤 권력기관이라 하더라도, KB금융지주 이사회가 관계 법령과 회사 정관에서 정한 적법 절차에 따라 선출한 회장 후보를 사퇴시킬 수는 없다. 현행 법령을 보자. 은행법(제22조)과 금융지주회사법(제40조)에 의하면, 은행 및 금융지주회사의 이사회와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그 구성원의 1/2 이상을 사외이사로 해야 한다. 그리고 은행장후보추천위원회 구성 등은 ‘정관’에서 자율적으로 정하게 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강정원 행장의 내정은 절차상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일부 사외이사에게 잘못이 있다면 문책하면 된다. ‘회장추전위원회’라는 시스템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금융 당국이 규제와 감독을 강화하는 것과 경영에 개입하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다. 절차와 규정에 따라 정상적으로 선임된 내정자를 낙마시킨 것은 그 자체가 경영에 개입한 것이다. 소유만 민간일 뿐, 즉 민유(民有)일뿐 경영은 관(官)이 한 것이다. ‘관치금융’ 부활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KB 금융지주에 대한 ‘보복성’ 종합검사

KB금융지주 회장 선임을 놓고 촉발된 금융당국과 KB금융지주 간의 갈등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KB금융 이사회가 금융당국의 뜻을 거스르고 강정원 행장을 회장으로 내정한 것이 1라운드, 금융당국이 고강도 ‘사전검사’를 통해 강 회장 내정자를 낙마시킨 것이 2라운드라면, 14일부터 시작될 금융감독원의 KB금융에 대한 ‘종합검사’가 3라운드인 셈이다. 이번 종합검사에는 금감원의 최정예 조사인력 35∼40명이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은 강정원 국민은행장과 일부 사외이사를 ‘정조준’함으로써 ‘낙마’에 대한 명분을 쌓으려 한다. 이번 종합검사 대상은 크게 4가지로 압축된다.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딧뱅크(BCC) 인수건, 커버드(covered bond) 본드 관련 손실, 부적절한 영화 투자에 따른 손실, 금전적 지원을 통한 사외이사 장악 의혹 등이 그것이다.

BCC 인수건은, 2008년 8천억원을 투자해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 지분 30.5%를 인수했지만 경영권을 확보하지 못했고, 주가 폭락으로 2천500억원의 평가손실을 입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합검사를 통해 국민은행이 해외 중소은행에 불리한 조건으로 무리하게 대규모 투자를 했는지 여부를 가리겠다는 것이다. 또한 ‘커버드 본드’ 관련 손실건은, 2009년 5월 10억 달러 규모의 커버드본드(주택담보대출채권 등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하는 채권)를 높은 프리미엄(비싼 수수료)을 주고 발행해 은행에 손실을 끼쳤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종합검사를 통해, 당시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가 회복돼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낮아져 추가담보 없이 국민은행 신용만으로 발행해도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을 비싼 발행비용을 지불했는지 여부를 가리겠다는 것이다.

나머지 2개의 조사대상은 사적(私的)인 것으로 판단된다. 강 행장은 2007년 국민은행 자회사를 동원해 지인이 감독을 맡은 영화에 15억 원을 투자하도록 했고, 흥행부진으로 은행에 손실을 끼쳤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리고 KB금융지주 일부 사외이사의 취임 직전 또는 직후에 용역 의뢰 등의 방식으로 지원해 이사회를 장악하려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의문점에 대해서는 물론 엄정한 검사가 요구된다.

그러나 조사대상 중 투자관련 손실에 대한 검사는 대단히 신중해야 한다. ‘보복검사’ 논란이 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투자 사례를 복기(復棋)해 그 책임을 묻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현재는 과거의 미래로써 투자 당시에는 불확실성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경영상의 판단’(managerial judgement)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BCC 투자는 차익(差益) 목적의 투자가 아닌 ‘해외 진출 차원’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커버드본드 발행건도 유사한 해석이 가능하다. 지금의 잣대가 아닌 당시의 잣대로 보면, 가장 적절한 발행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책임은 주주들이 주주총회에서 판단해야 할 문제이지 금융당국이 판단해야할 문제가 아니다.

금융당국은 또 다른 이유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이미 금융당국은 금융감독과 관련해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황영기 전(前)KB 금융지주회장이 우리금융 회장으로 재직할 당시(2005~2007년)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것을, 사후적(2009년 9월)으로 문제 삼아 황 회장을 물러나게 했다. 2008년 예금보험공사와 금융감독원이 검사했을 당시 문제없다고 결론 낸 것을 다시 문제 삼은 것은 큰 실책이 아닐 수 없다.

금융기관의 경영실태 내지 임원의 적격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권의 발동은 감독당국의 고유권한이다. 하지만 금융 감독의 본연의 업무는 금융기관의 건전성 유지와 금융시장의 안정성 제고이다. 따라서 금융 감독이 상대를 혼내 주거나 자신의 의중을 실현하는 수단으로서의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종합검사 대상으로 지목된 항목들은 ‘보복검사’의 여운을 짙게 드리고 있다. 2007∼2008년도의 일을 새삼 지금 문제 삼는 것이 타당한 지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금융 감독 시스템이 투명하고 일관되지 않으면, 그 자체가 ‘불확실성’으로 작용하게 된다.

역작용을 부를 수 있는 회장 선출과정

금융감독 당국은 금융지주회사의 사외이사제도 개선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사외이사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총 재임기간을 제한하고 자격요건을 엄격히 하는 등 현행 제도를 대폭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금융지주회사의 사외이사후보 및 회장후보 선출 과정에 ‘주주대표’의 참여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외이사제도는 주지하다시피 IMF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목표로 도입되었다. 따라서 사외이사제도의 ‘큰 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미조정(微調整)의 경우, 금융당국이 나설 것이 아니라 이를 해당 기관들이 정관에 반영하도록 하면 된다.

‘회장 선출과정’에의 주주대표의 참여는 오히려 역기능을 발휘할 공산이 크다. 민간 금융지주회사의 주주 분포 상 주주대표로 선임될 만한 주주는 국민연금 등 국내 기관투자자이다. 따라서 이들 주주대표가 감독당국의 의사에 반(反)하는 후보를 추천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주주대표 참여는 주주대표성을 강화하기는커녕 사외이사 및 회장 선출 과정에서 감독당국의 영향력이 전달되는 통로로 전락할 소지가 있다.

감독을 이유로 경영에 개입하려는 타성을 버려야

KB 금융지주사태의 근저에는 정책당국의 민간 금융기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놓여져 있다. “금융은 자유방임으로 두기엔 너무 중요하다”는 것이다. “멋대로 경영하다 공적자금을 받는 작태를 용납할 수 없다”는 식이다. 따라서 아무리 민간 금융기관이라 하더러도 회장이 친정체제를 쌓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인식은 옳지 않다. 금융기관의 자산 건선성이 위협받는 것은, 정치논리와 경제논리가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IMF 외환위기가 그랬고, 최근 미국 발(發) 금융위기의 진앙지인 미국의 금융기관도 예외는 아니다. 정치적인 이유에서 대출부적격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이 권장되었기 때문이다. ‘월가의 탐욕’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그리고 경영권은 정치권력이 아니기 때문에, 친정체제 구축의 시각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 경영은 성과로서 평가를 받는다. 주주와 금융시장이 이를 평가한다.

2004년부터 2008년 중 인구가 ‘1천만 이상’이면서 일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는 국가들을 추출해, 이들의 ‘헤리티지 경제자유도’를 우리나라와 비교해 보면 중요한 정책적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표-1>에 나와 있듯이 고소득국의 평균 인구는 약 7천4백만명으로 우리의 1.5배이며, 일인당 국민소득은 약 3.8만 달러로 우리의 2배를 넘는다. 사전적 예측대로 고(高)소득국과 우리나라 헤리티지 경제자유도 는 “금융산업자유도, 반(反)부패지수, 노동시장자유도”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중 ‘금융산업자유도’는 금융산업의 국가소유 및 중앙은행 독립성을 기준으로 평가된다. 정책당국이 민유관영(民有官營)의 구시대적 사고를 지우지 않는 한, 금융산업자유도는 개선될 수 없다. “금융 당국의 의중”이라는 속어가 사라지지 않는 한 금융산업의 질적 발전을 기할 수는 없다. 더 나아가 이들 하위 경제자유도가 개선되지 않으면, 고소득국으로의 진입은 불가능하다.

이번 KB 금융지주 사태는 한국 금융시스템과 금융기관에 대한 해외의 신뢰도 추락을 가져오기에 충분하다. KB금융은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회사인 바, 당국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CEO를 낙마시키고 이미 공시한 주주총회 일정을 취소한다면 어떤 투자자가 한국 금융기관과 기업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를 자문해 봐야 한다. 금융 감독을 지렛대로 경영에 개입하는 타성을 버려야 한다. 시장의 몫으로 돌려야 할 것은 시장으로 돌려야 한다. 금융 감독 당국의 힘은 단호하되 절제되고 정제된 사후 규제여야 한다. 힘이 남용되면 시장의 분노를 초래할 수 있다. 소리 없는 강물이 더 무서운 법이다. ■

조동근 / 명지대학교 경제학과교수

저자소개: 조동근 교수는 신시내티(Cincinnati)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겸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경제개혁연대의 경제관 비판’, ‘기업의 소유지배구조와 기업가치 간의 관계’ 외 다수가 있다.[기사제공 : 자유기업원(https://www.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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